배터리 교환소, 무선충전도로에 과감히 투자필요
전기자동차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현재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1일(현지시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이동수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달하는만큼 전기자동차를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전기자동차 보급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하루빨리 해소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전기자동차 시장은 지난 10년 사이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2012년 한해 판매량이 13만대에 불과하던 전기자동차는 2021년 한해동안 660만대가 팔렸다. 시장점유율도 덩달아 늘었다. 2019년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자동차 비중은 2.5%였지만 지난해는 9%까지 늘었다. 자동차업체들의 지난해 매출성장은 모두 전기자동차 판매를 통해 일궈낸 성과다.
지난 2015년에 코로나19 팬데믹 위기가 닥칠 것을 예견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도 전기자동차를 더 많이 보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전기자동차가 앞으로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대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술적 대안"이라며 "기후위기가 초래할 고통은 코로나19를 아주 오랜기간 늘려놓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자연과 경제에 가해지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촉구했다.
전기자동차는 빌 게이츠가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해결책'의 하나다. 경제활동을 하려면 사람들은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 배출량의 16%에 달하는만큼, 이 문제를 전기자동차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비롯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고작 8% 줄었다. 지난달 28일 발간된 IPCC 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환경문제로 조만간 전세계 인구 79억명 가운데 33억명의 목숨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탄소저감을 위해서라도 전기자동차 보급에 속도를 내야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WEF가 분석한 전기자동차 보급을 가로막는 첫번째 요소가 '주행거리'이고, 두번째가 '부족한 인프라'다.
우선 '주행거리'를 살펴보면, 2025년에 이르면 한번 충전했을 때 적어도 250마일(약 402km)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 차종이 500여개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는 평균적으로 400마일(약 644km)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전기자동차 구매를 주저하고 있다. '부족한 제반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문제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충전소도 부족한데 충전속도까지 느리다. 택시, 버스, 배송업체 등 지체없이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업종 역시 전기자동차 도입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WEF는 이런 문제해결 방안으로 '배터리 교환'과 '무선충전도로'에 주목했다. 배터리 교환은 충전하려고 오래 기다릴 필요없이 배터리만 갈아끼우면 된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내연기관차 주유시간과 비슷하다. 급속충전으로 배터리에 과부하가 걸리면 연비가 줄어드는 문제도 해결된다. 중국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니오는 700여개가 넘는 배터리 교환소를 설치했고, 누적 배터리 교체 횟수는 530만회를 넘어섰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일렉트리온(Electreon)은 스웨덴 고틀랜드섬에 1.65km에 달하는 무선충전도로를 설치했다. 무선충전도로는 기존 도로 아래에 구리 송전 코일을 설치하고, 전기를 흘려보내 전기자동차가 주행하는 도중에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일렉트리온에 따르면 무선충전도로 1km를 설치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하룻밤이면 충분하다. 또 도로에서 충전이 가능하면 전기자동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크기를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WEF는 다만 이같은 시도들이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민간기업이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고 짚었다. 또 배터리 교환의 경우 표준 규격을 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무선충전도로의 경우 날씨나 누전 문제 등 넘어야 할 기술적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WEF는 전기자동차 관련 제도 마련과 투자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권고했다.
국내 전기자동차 시장도 세계 추세에 발맞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0년 4만6909대에 머물던 국내 전기자동차 판매량은 2021년 10만681대로 2배 이상 커졌다. 현대차그룹의 내수 전기자동차 판매량은 연 2만대 수준이었지만 2021년 현대 아이오닉5(4월), 기아 EV6(8월), 제네시스 eG80(7월)·GV60(9월) 등을 연달아 내놓으며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전기자동차 시장은 기업간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며, 국가별로 구매보조금 정책이 변화함에 따라 지역별 판매량 증가세는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기자동차 1대당 국고보조금이 8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줄었고, 보조금 100% 지급을 위한 차량 가격 상한선이 60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낮아졌다.
오는 9일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도 관련 공약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전기자동차 보조금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보조금이 바닥나 전기자동차를 사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 예산을 더 풀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전기자동차 충전요금을 5년간 동결하고, 기존 주유소·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 내 전기자동차 충전 설비를 늘릴 수 있도록 안전규제를 풀겠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오는 2030년까지 국내에 전기자동차 1000만대를 보급하고 충전 인프라 구축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게 뼈대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수소 에너지를 정부가 확보할 '5대 초격차 기술'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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