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년간 전세계 폭염으로 인한 피해에서 국내 10대 기업들이 차지하는 책임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161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161조원 가운데 남동발전, 동서발전 등 한국전력 산하 발전 자회사 5곳의 비중이 약 93조원으로 58%에 달한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은 11일 발간한 '기후위기, 누가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가: 한국 10대 배출 기업의 폭염 손실기여액 분석'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기업의 기후변화 책임을 최신의 과학적 방법론으로 이같이 산출했다고 밝혔다.
최근 '네이처(Nature)'에 올라온 한 연구는 전세계 111개 화석연료 기업별 온실가스 누적 기여도를 바탕으로, 1991년부터 2020년까지 170년간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손실 중 어느 정도가 각 기업의 책임인지 환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의 1%당 폭염으로 인한 세계 GDP 손실액은 약 5000억달러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1톤당 약 29.07달러의 손실 책임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기후솔루션은 이 방법론을 한국에 적용해, 국내 주요 배출기업 10곳이 폭염으로 인한 전세계 경제손실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정량화했다. 2011~2023년 누적 배출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별 손실기여액을 산출하고, 널리 쓰이는 시뮬레이션 모형인 GCAM(Global Change Analysis Model)을 활용해 2050년까지의 배출 시나리오에 따른 미래 손실 전망도 제시했다. 국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과 과거, 미래의 기후재난 간 인과관계를 구체적인 수치로 연결한 첫 시도다.
분석 결과, 국내 10대 배출 기업은 2011년~2023년까지 총 41.2억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이 전세계 폭염 손실에 기여한 경제적 책임은 약 1196억달러(약 161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한국전력 산하 발전 자회사 5곳(남동·남부·동서·중부·서부)의 총 배출량은 25억톤으로, 약 729억달러(약 93조원) 규모의 손실 책임을 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일 기업 단위로 배출량 1위를 기록한 포스코(9.6억톤, 약 281억달러)보다 2.6배 많은 수준이다.
이는 석탄·LNG 등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 생산 구조와, 공공 부문이 전력 수급을 담당하는 한국 특유의 에너지 체제를 반영한다. 발전 부문은 다른 산업의 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Scope 2)까지 연쇄적으로 유발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책임 범위는 더욱 넓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배출 구조에서 발전 부문은 중간 공급자가 아니라 핵심 배출 책임자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이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는 탄소중립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과거 배출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미래 배출이 야기할 사회경제적 피해 규모도 제시했다.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을 충실히 이행할 경우, 같은 10개 기업이 2025년부터 2050년까지 지게 될 손실기여액은 300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반면 전환없이 현행 정책을 유지할 경우 손실 규모는 720조원으로 2배 이상 증가한다.
보고서는 이번 피해액 산정 범위는 폭염에만 한정돼 있으며, 폭우와 홍수, 산불, 태풍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다른 재난 유형까지 분석할 경우 손실 규모는 훨씬 커질 전망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기후솔루션 임소연 연구원은 "이번 분석은 정책과 소송, 투자 판단의 기준으로서 손실기여 계산이 활용될 수 있는 출발점"이라며 "이제는 배출량뿐 아니라 배출로 인해 발생한 피해도 기업 책임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께 보고서를 쓴 기후솔루션 조정호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특정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폭염 등 기후피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이는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에게도 배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처음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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