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무차입 공매도에 업틱룰 위반까지...피해는 개미몫
'2조6000억원' 지난해 3월 16일부터 12월말까지 국내 증시의 공매도 거래대금이다. 해당 기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증시 하락 우려로 공매도가 금지된 기간이다. 그럼에도 2조원이 넘는 공매도 거래가 발생했다.
지난해 3월 16일, 금융당국은 6개월 기한으로 주식시장 공매도를 금지했다. 코로나19 악재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증시를 안정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였다. 이후 당국은 금지기간을 올 3월15일까지 6개월 더 연장했다. 그러나 3월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개인투자자들과 정치권에서 '공매도 금지'를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하자, 공매도를 재개하려고 했던 금융당국은 한발 물러선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3일 오후 임시 금융위 회의를 열어 공매도 금지 조치의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매도 금지가 시작된 지난해 3월 16일부터 12월말까지 공매도 거래금액은 모두 2조6000억원이었다. 금지 첫날 거래액은 4408억원에 달했다. 공매도가 금지됐는데도 공매도 거래가 버젓이 이뤄졌던 것이다.
이는 공매도 금지 조치에 '시장조성자'를 예외로 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성자는 한국거래소와 계약을 체결하고, 매수·매도 지정가호가를 유동성이 필요한 상품에 제출해 투자자들의 원활한 거래 체결을 돕는 역할을 한다. 현재 842개의 상장주식과 206개 파생상품에 대해 국내외 22개 증권사가 시장조성자로 지정돼 있다.
이 시장조성자들은 공매도 금지기간에도 공매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매도를 했던 것이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없는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이 시장조성자들이 불법 공매도를 자행했다는 사실이다. 시장조성자들의 불법 공매도 행위가 드러나자 개인투자자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시장조성자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가 22개 전체 시장조성자의 3년6개월간(2017년 1월~2020년 6월) 거래내역을 점검한 결과, 일부 위반 사례가 드러나 제재 및 재발방지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위법에 대한 구체적인 기관이나 사례 그리고 조치 내용 등에 대해서는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박용진 의원은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발표로) 드러난 시장조성자들의 불법 공매도 행위를 사실상 은폐·축소하고 있다"며 22개 시장조성자 중 3개가 각각 20일·8일·1일에 걸쳐 불법공매도를 했다가 적발됐다"며 한국거래소 감리 결과를 자체 확인해 공개했다. 박 의원은 "금융위는 이번 조사결과의 공매도 수량과 종목 등 구체적 내용을 밝히는 일을 보안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며 "어느 종목에 대해 몇 회에 걸쳐 어느 정도 규모의 불법행위가 저질러졌는지 모른다면 어느 투자자가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그 내용을 알 수 없고, 결국 피해는 개미투자자들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시장조성자들의 불법 행위는 주로 '무차입 공매도'로 예상된다. 무차입 공매도는 해당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일단 매도 주문을 내는 것으로 현행법상 불법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기관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횡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실제로 골드만삭스 사태 등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의 추측이 어느 정도 사실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시장조성자 제도의 문제로 꼽히는 것은 '업틱룰' 예외조항이다. 업틱룰은 공매도를 할 때 직전 체결가격 이하로 매도주문을 내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다. 공매도 세력이 시세를 하향조종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조성자는 업틱룰 예외를 인정받아 왔다.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시장조성자라는 허울뿐인 명분으로 각종 혜택을 받아 공매도로 수익을 늘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이나 거래소에서도 공매도 개선책을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연초 간담회에서 "시장조성자의 업틱룰 예외조항을 없애는 방안에 대해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최근에는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 공매도를 적발하는 실시간 감시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도 했다. 금융위 등 당국도 공매도 제도 개선책을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나 정치권에서는 금융당국의 이같은 행보에 불신하고 있다. 불법공매도는 사전에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지금까지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공매도 재개전 반드시 100% 전산화한 무결점 무차입 공매도 적발시스템을 도입하고 1개월 주기가 아닌 매일 실시간으로 불법을 적발해야 한다"며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공매도 금지는 1년간 연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불법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용진 의원도 "증권사 스스로 불법공매도를 확인하는 사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며 "기본적으로 지금 수준에서는 공매도 금지기간을 연장해야 하고, 금융시장의 공정함이 바로 서도록 구체적인 (제도개선) 계획과 로드맵을 마련해 발표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가 3일 임시회의에서 어떤 개선책을 마련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4월 6일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법은 무차입 공매도 행위가 적발되면 징역형 또는 벌금이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처벌수위가 강화된다. 금융위는 또 개인 대주 통합시스템 개발 등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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