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언론 "성적인 행위 위해 마사지숍 갔다" 지인들 인터뷰
미국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연쇄총격 사건의 범행동기를 놓고 미국 경찰과 언론들이 인종혐오에 따른 증오범죄가 아닌 성중독 문제로 몰아가자, 미국 사회에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20대 백인남성이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8명이 희생되면서 '인종혐오에 따른 증오범죄'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건발생 직후 미국 수사당국은 체포된 용의자가 자신을 성중독자라고 진술했다는 이유로 범행동기를 '성범죄에 의한 문제'로 몰아가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수사당국은 아직 범행동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이르다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경찰의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비판과 함께 범행동기를 밝힌 경찰의 의도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인종혐오에 따른 증오범죄가 명확한데도 아시아계의 반발을 의식해 경찰이 의도적으로 성중독 문제로 몰아가는 느낌이라는 지적이다.
◇사건 재구성···사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
이번 총격 사건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5시께 미국 애틀랜타 시내에서 48km 떨어진 체로키 카운티의 마사지숍 한 곳과 애틀랜타 시내 스파 두 곳에서 발생했다. 무차별 총격으로 8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사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인이고 이 중 4명이 한국계다. 전체 사망자 중 7명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다.
용의자는 오후 5시 직전에 이곳에 위치한 '영스 아시안 마사지'(Young's Asian Massage)에서 총격을 벌였다. 체로키 카운티 경찰이 여러 건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지만 이미 2명이 사망한 상태였다. 또 다른 2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고, 추가로 1명이 다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자는 이 마사지숍의 주인으로 알려진 시아오지 얀(Xiaojie Yan·49)을 비롯한 30∼50대였다.
용의자는 약 한 시간 뒤인 오후 5시47분께 애틀랜타 피드몬트가에 위치한 '골드 마사지 스파'에 가서 또다시 총질했다. 이로 인해 3명이 희생됐다. 경찰이 강도 신고를 받고 골드 스파에 출동했지만 희생자들만 발견했다. 이때 다시 길 건너 '아로마세라피 스파'에서 총격사건 발생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한 명의 사망자 시신만 발견했다.
범행 장소 인근 약 1.6km 이내에는 스파만 10곳 넘게 있는 곳이다. 경찰은 애틀랜타 스파에서 사망한 4명의 신원을 아직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외교부는 이들이 한국계라고 확인했다.
애틀랜타에서 약 240km 떨어진 고속도로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9mm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이 권총은 이번주 구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경찰에 체포되기 전 플로리다로 향하던 중이었으며, 추가 범행을 실행할 의도가 있었다고 경찰조사에서 밝혔다.
◇美경찰·현지언론, 범행동기를 성중독으로 선회
애틀랜타 경찰과 시 당국은 17일(현지시간) 총격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이 이번 사건은 인종적 동기가 아니라면서 자신이 성 중독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롱은 자신이 성중독 가능성을 포함해 몇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당국은 설명했다. 용의자가 스파와 마사지숍들이 자신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으로 여겨 이를 제거하려 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다만, 경찰은 이 진술 외에 범행동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 충분히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CNN방송은 롱의 이런 범행동기의 가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인터뷰를 보도했다. 롱과 2019~2020년 한 재활시설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타일러 베일리스는 롱이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성중독 문제로 괴로워했다고 CNN을 통해 말했다. 그는 롱이 재활시설 입소기간에 성중독 문제가 여러 차례 재발했고 성적인 행위를 위해 마사지숍에 갔다고 자신에게 털어놨다고 전했다.
아울러 작년 섹스중독자를 위한 재활센터에서 롱의 룸메이트였다는 한 남자는 CNN과 인터뷰에서 "롱이 인종에 대해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용의자에게 성중독 문제가 있었다 해도 이를 유력한 범행동기로 보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케이샤 랜스 보텀스 애틀랜타 시장도 이와 관련해 용의자가 범행한 스파들은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들이었으며 당국의 단속망에도 올라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인종 혐오에 따른 증오범죄일 가능성을 현재까지 가장 유력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롱이 최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소셜서비스(SNS) 글이다.
이 게시물을 캡처한 네티즌들에 따르면 해당 페이스북 글에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중국을 '최대의 악'으로 규정, 중국에 맞서 싸울 것을 선동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글에는 "중국은 코로나19 은폐에 관여돼 있다. 중국이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며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로 부르며 "그들은 '우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글에는 또 "(중국이) 미국인 50만명을 죽인 것은 21세기에 세계적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한 그들 계획의 일부일 뿐"이라며 ""모든 미국인은 우리 시대 최대의 악인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페이스북 계정은 현재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한인회 "명백한 증오범죄"···오바마 등 인종혐오 규탄
범행동기로 용의자의 성중독 문제가 거론되자 한인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LA) 한인회는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은 "명백한 증오범죄"라며 용의자의 '성 중독'을 사건의 동기로 보는 것은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LA 한인회는 특히 "증오범죄 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미국 미디어들이 (경찰 발표를 인용해) 용의자가 성 중독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 증오범죄 가능성을 애써 감추는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배경으로 최근 급증하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를 위한 이익단체인 AAPI에 접수된 증오범죄 피해사례만 해도 작년 3월 이후 3800건에 이른다. 지난 2월엔 샌프란시스코에서 84세 태국계 남성이 19세 청년의 공격을 받고 숨졌고, LA 한인타운에서는 20대 한국계 남성이 무차별 폭행과 인종차별 폭언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주요 대도시에서도 2019년과 2020년 사이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 증오범죄가 급증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버나디노캠퍼스 집계에 따르면 아시아인 대상 증오범죄는 이 기간에 뉴욕시에서 3건에서 27건으로 늘고, LA에서는 7건에서 15건으로 늘었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미국의 저명인사들은 이번에도 잇따라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한국계인 매릴린 스트리클런드(민주·워싱턴) 하원의원은 "우리는 인종적 동기에 의한 아시아·태평양계(AAPI)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 사건의 동기를 경제적 불안이나 성 중독으로 변명하거나 다시 이름을 붙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용의자의 동기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희생자들의 면면을 보면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권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폭력 급증은 점점 커지는 위기"라면서 "우리 공동체와 리더들이 이 증오를 멈추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지금으로서 살해범의 동기에 관해 어떤 것도 연결짓지 않겠다"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연방수사국과 법무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가 끝나면 할 말이 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