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정상은 내리막길의 시작이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5-10 15:18:45
  • -
  • +
  • 인쇄
많은 지도자와 기업들 치명적인 실수로 몰락해
지속가능성과 아름다운 마무리가 진정한 성공


1999년 5월 3일, 에베레스트산 북쪽 능선 8400미터 지점에서 한 등산가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그 미라는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됐던 말로리(George Mallory)의 유해였기 때문이다.

'말로리는 정상을 오르던 중에 죽었는가? 아니면 내려오던 중에 목숨을 잃었는가?' 그 논쟁의 핵심은 말로리가 과연 정상을 정복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1953년 그 산을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경과 텐징 노르게이(Tenzing Norgay)다. 그런데 만일 말로리가 산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면 최초의 정복자는 말로리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카메라가 발견되지 않아 그는 초등자로 공인될 수 없었다.


말로리가 오르는 길이었는지 하산하는 길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논쟁에 대해 힐러리 경은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 등정의 핵심은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데 있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하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나는 이 말을 내 가슴에 새겼다. 그렇다.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한 하산도 중요하다. 일을 성취하거나 정점을 찍는 일 못지않게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이는 사회활동이나 직업영역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내면의 세계를 가꾸는 일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파멸에 이르는 치명적인 실수들

우리는 하산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촉망받던 리더나 정치지도자들이 부정부패와 스캔들로 하루아침에 몰락하기도 한다. 대기업 경영자 가족들의 갑질로 사회적 지탄을 받아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기업 소유권이 위협받는 사례도 있다. 신뢰받던 단체나 공동체가 추문이나 내분에 휩싸여 단숨에 분열되기도 한다. 성실한 삶을 살던 시민이 과도한 욕심으로 그릇된 선택을 해 파산하는 경우도 많다. 고결한 정신을 추구해 추앙받던 사람이 주화입마(走火入魔)를 입듯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몰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리더십 연구자들에 의하면 리더가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일거에 몰락하게 되거나 리더십의 근간을 상실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실수들이 있다고 한다. 재정비리, 권력의 남용, 교만, 성범죄, 가족 비리, 자기만족과 안주(安住)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 문화권이나 그 조직 또는 공동체의 가치에 따라 갖가지 치명적인 장애물들이 있을 수 있다. 대개 사람들은 성과 부족이나 사소한 실수에 대해 용납하고 크게 시비를 다투지 않는다.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는 단 한 번의 행위로 모든 것을 잃게 한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있다.

이런 실수들은 대개 탐욕, 오만과 관련이 있다. 처음에는 성실하고 겸손하고 신중하던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권력을 쥐게 되면 이내 초심을 잃어버리고 오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정상에 오른 자는 추락을 조심해야 하고, 성취를 이룬 자는 자신감이라는 옷을 입고 내면에 꽈리를 트는 독선과 교만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함정을 식별해야 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자신을 진단해 봐야 한다.

◇ 위대한 기업들의 몰락 '공통점'

경영학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한 때 잘나가던 기업이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왜 몰락했을까를 연구했다. 원제는 'How the mighty fall?'(위대한 기업은 어떻게 망하는가)이다. 실패와 몰락 사례를 살피는 것은 성공 사례를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가치가 크다. 그에 의하면 기업, 공동체, 조직이 몰락할 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첫번째 단계는 교만이다. 이는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다.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오만하고 우쭐대며,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두번째 단계는 원칙없는 과욕이다.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욕심을 부리는 단계다. 그래서 과도하게 사업을 확장하거나 무모한 사업에 뛰어들거나 준비없이 새로운 분야에 지나치게 투자한다. 이 과정에서 초기의 핵심가치를 망각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고대의 잠언과 지혜서에서도 교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교만은 '몰락의 지름길'이라고.

세번째는 위험과 위기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다. 즉 긍정적인 측면은 크게 보고 부정적인 측면은 숨기고 감춘다. 실증적 증거없이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배팅을 하듯 투자하거나 모호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위험부담이 큰일을 단행해 버린다. 그리고 거듭 노출되는 여러 위기의 징조를 애써 무시한다. 네번째는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다. 위기가 심각해져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지만 모두가 외면한다. 마지막 단계는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다. 기업이 몰락해 생명력과 재기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다.

어디 기업만 그럴까?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권력형 성범죄로 퇴출당한 정치인들을 기억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불법과 비도덕적인 일들이 드러나 곤경에 처하는 이들을 목격하고 있다. 나 자신이 큰 사업가나 유명인이나 스타가 아니라고 해서 짐 콜린스의 경고와 무관할까? 아니다. 우리의 삶이나 활동 역시 위대한 기업이 몰락하듯이 무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끝내기 잘하는 지혜 필요해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희망과 열정으로 부푼다. 하지만 이내 치명적인 실수로 전진을 멈추게 된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때는 허니문을 지나며 한동안 감동과 즐거움을 경험한다. 하지만 관계가 좋아지고 확고해질수록 예기치 않게 갈등과 균열이 생겨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가 높아질수록 자기중심성과 독선의 독초가 무성해진다. 자신이 하는 활동과 사업이 술술 풀리게 되면 존재감이 극대화되고 더욱 힘써 내달린다. 정상에 이르면 만세를 부르고 축포를 터뜨린다. 하지만 그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이제 내리막길이 시작될 수도 있다.

프로들의 바둑게임을 보면, 포석과 중반전의 전투를 잘 치르고서도 끝내기 단계에서 작은 실수로 패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대마를 잡거나 형세가 유리해 완승이 확실한데 오히려 방심해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묘수를 잘 두는 것보다 악수나 패착을 두지 않는 것이 승부를 좌우한다. 나에게 힘이 있고 일이 잘 풀릴 때일수록 주의하는 것이 지혜다. 끝내기를 잘하는 자가 진정한 달인이다.

모든 성장의 극점은 쇠락의 시작점이 되는 법이다. 따라서 큰 성취를 이루는 일 못지않게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잘 마무리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완주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 지혜로운 사람은 오름과 내림의 이치를 알고 신중하게 하산할 줄 안다. 어쩌면 하산이 등정의 가장 중요한 단계일 것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ESG

Video

+

ESG

+

"ESG공시 로드맵, 정책 일관성 흔들려...전면 재검토해야"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ESG 공시 로드맵 초안을 놓고 국회와 기후·ESG 싱크탱크가 "글로벌 기준에 뒤처질 뿐 아니라 정부 정책과도 충돌한다"며 전면

[ESG;스코어] 롯데칠성·CJ제일제당 '재생용기' 적용 1·2위...꼴찌는?

중동 전쟁으로 나프타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생 플라스틱 전환율이 기업의 원가구조를 좌우하는 경쟁력이 되고 있다. ESG 대응차원에서 시작됐던

서울시, 1000명 넘는 행사 '폐기물 감량계획' 의무화 추진

서울시가 하루 1000명 이상 참여하는 행사에 대해 폐기물 감량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서울시는 25개 자치구가 대규모 행사

'생산적 금융' 물꼬 틔우는 시중은행들…투자전략은 '각양각색'

금융당국이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총 1240조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 지원계획을 제시하면서, 금융권 자금이 부동산이나 가계대출이 아닌 산업과 기업의

'카카오 AI 돛' 출범…"2030년까지 100개 AI 혁신기업 육성"

카카오그룹이 4대 과학기술원과 손잡고 지역 인공지능(AI) 인재와 혁신기업 육성 추진기구인 '카카오 AI 돛'을 설립한다. 카카오는 2030년까지 5년간 500억

포스코 '사고다발 기업' 오명 벗나...올들어 중대재해 'O건'

지난해 6명의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포스코가 올해 들어 단 한 건의 산업재해도 발생하지 않으면서 그 비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포스코는 올

기후/환경

+

폭염과 폭우·가뭄이 '동시에'...2025년 한반도 이상기후 더 심해져

2025년은 산업화 이전대비 기온이 1.44℃ 상승한 역대 가장 더웠던 해 3위를 기록한만큼 우리나라도 6월부터 시작된 폭염이 10월까지 이어지는 등 역대급

'빌 게이츠·제프 베이조스' 전용기 기후피해 유발 1·2위...일론 머스크는?

전용기 이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피해를 가장 많이 유발하는 인물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인 것으로 드러났다.미국 스탠포

美 36년간 내뿜은 온실가스 1경5000조 피해유발...한국 기후손실액은?

1990년 이후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전세계가 약 10조달러(약 1경5000조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피해는 미국뿐 아니라

서부는 41℃ 폭염, 동부는 눈폭풍…美대륙 '극과 극' 이상기후

미국 서부는 기록적인 폭염을 겪고 있는데 동부는 폭우·폭설·한파가 동시에 나타나는 '극과극' 이상기후가 일어나고 있다. 서부의 이상고온

바닥 드러나는 댐과 하천들...평년 밑도는 강수에 봄 가뭄 '비상'

예년보다 비가 턱없이 적게 내리면서 봄철 가뭄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특히 도서지역과 서해안, 경남 등 지리적 특성상 외부 수자원 의존도가 높은

"EU, 탄소중립 목표 완화해야"...합의해놓고 뒷말하는 獨 장관

지난해 온실가스를 겨우 0.1% 감축한 독일이 유럽연합(EU)을 향해 탄소중립 목표를 완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카테리나 라이헤 독일 연방경제에너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