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과 아름다운 마무리가 진정한 성공
1999년 5월 3일, 에베레스트산 북쪽 능선 8400미터 지점에서 한 등산가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그 미라는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됐던 말로리(George Mallory)의 유해였기 때문이다.
'말로리는 정상을 오르던 중에 죽었는가? 아니면 내려오던 중에 목숨을 잃었는가?' 그 논쟁의 핵심은 말로리가 과연 정상을 정복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1953년 그 산을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경과 텐징 노르게이(Tenzing Norgay)다. 그런데 만일 말로리가 산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면 최초의 정복자는 말로리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카메라가 발견되지 않아 그는 초등자로 공인될 수 없었다.
말로리가 오르는 길이었는지 하산하는 길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논쟁에 대해 힐러리 경은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 등정의 핵심은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데 있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하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나는 이 말을 내 가슴에 새겼다. 그렇다.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한 하산도 중요하다. 일을 성취하거나 정점을 찍는 일 못지않게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이는 사회활동이나 직업영역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내면의 세계를 가꾸는 일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파멸에 이르는 치명적인 실수들
우리는 하산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촉망받던 리더나 정치지도자들이 부정부패와 스캔들로 하루아침에 몰락하기도 한다. 대기업 경영자 가족들의 갑질로 사회적 지탄을 받아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기업 소유권이 위협받는 사례도 있다. 신뢰받던 단체나 공동체가 추문이나 내분에 휩싸여 단숨에 분열되기도 한다. 성실한 삶을 살던 시민이 과도한 욕심으로 그릇된 선택을 해 파산하는 경우도 많다. 고결한 정신을 추구해 추앙받던 사람이 주화입마(走火入魔)를 입듯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몰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리더십 연구자들에 의하면 리더가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일거에 몰락하게 되거나 리더십의 근간을 상실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실수들이 있다고 한다. 재정비리, 권력의 남용, 교만, 성범죄, 가족 비리, 자기만족과 안주(安住)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 문화권이나 그 조직 또는 공동체의 가치에 따라 갖가지 치명적인 장애물들이 있을 수 있다. 대개 사람들은 성과 부족이나 사소한 실수에 대해 용납하고 크게 시비를 다투지 않는다.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는 단 한 번의 행위로 모든 것을 잃게 한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있다.
이런 실수들은 대개 탐욕, 오만과 관련이 있다. 처음에는 성실하고 겸손하고 신중하던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권력을 쥐게 되면 이내 초심을 잃어버리고 오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정상에 오른 자는 추락을 조심해야 하고, 성취를 이룬 자는 자신감이라는 옷을 입고 내면에 꽈리를 트는 독선과 교만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함정을 식별해야 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자신을 진단해 봐야 한다.
◇ 위대한 기업들의 몰락 '공통점'
경영학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한 때 잘나가던 기업이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왜 몰락했을까를 연구했다. 원제는 'How the mighty fall?'(위대한 기업은 어떻게 망하는가)이다. 실패와 몰락 사례를 살피는 것은 성공 사례를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가치가 크다. 그에 의하면 기업, 공동체, 조직이 몰락할 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첫번째 단계는 교만이다. 이는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다.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오만하고 우쭐대며,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두번째 단계는 원칙없는 과욕이다.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욕심을 부리는 단계다. 그래서 과도하게 사업을 확장하거나 무모한 사업에 뛰어들거나 준비없이 새로운 분야에 지나치게 투자한다. 이 과정에서 초기의 핵심가치를 망각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고대의 잠언과 지혜서에서도 교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교만은 '몰락의 지름길'이라고.
세번째는 위험과 위기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다. 즉 긍정적인 측면은 크게 보고 부정적인 측면은 숨기고 감춘다. 실증적 증거없이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배팅을 하듯 투자하거나 모호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위험부담이 큰일을 단행해 버린다. 그리고 거듭 노출되는 여러 위기의 징조를 애써 무시한다. 네번째는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다. 위기가 심각해져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지만 모두가 외면한다. 마지막 단계는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다. 기업이 몰락해 생명력과 재기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다.
어디 기업만 그럴까?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권력형 성범죄로 퇴출당한 정치인들을 기억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불법과 비도덕적인 일들이 드러나 곤경에 처하는 이들을 목격하고 있다. 나 자신이 큰 사업가나 유명인이나 스타가 아니라고 해서 짐 콜린스의 경고와 무관할까? 아니다. 우리의 삶이나 활동 역시 위대한 기업이 몰락하듯이 무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끝내기 잘하는 지혜 필요해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희망과 열정으로 부푼다. 하지만 이내 치명적인 실수로 전진을 멈추게 된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때는 허니문을 지나며 한동안 감동과 즐거움을 경험한다. 하지만 관계가 좋아지고 확고해질수록 예기치 않게 갈등과 균열이 생겨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가 높아질수록 자기중심성과 독선의 독초가 무성해진다. 자신이 하는 활동과 사업이 술술 풀리게 되면 존재감이 극대화되고 더욱 힘써 내달린다. 정상에 이르면 만세를 부르고 축포를 터뜨린다. 하지만 그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이제 내리막길이 시작될 수도 있다.
프로들의 바둑게임을 보면, 포석과 중반전의 전투를 잘 치르고서도 끝내기 단계에서 작은 실수로 패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대마를 잡거나 형세가 유리해 완승이 확실한데 오히려 방심해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묘수를 잘 두는 것보다 악수나 패착을 두지 않는 것이 승부를 좌우한다. 나에게 힘이 있고 일이 잘 풀릴 때일수록 주의하는 것이 지혜다. 끝내기를 잘하는 자가 진정한 달인이다.
모든 성장의 극점은 쇠락의 시작점이 되는 법이다. 따라서 큰 성취를 이루는 일 못지않게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잘 마무리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완주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 지혜로운 사람은 오름과 내림의 이치를 알고 신중하게 하산할 줄 안다. 어쩌면 하산이 등정의 가장 중요한 단계일 것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