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원전수주 사실상 확정?..."곳곳이 허점투성이"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11-01 16: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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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수 끌어올 강물·바다 없어 원전부지 부적격
무리한 수출전략...한수원-웨스팅하우스 관계악화
▲한국형 원전 APR1400 건설이 추진되는 퐁트누프 석탄화력발전소 부지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윤석열 정부가 '원전 10기 수출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무리하게 수출을 시도하다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폴란드 전력 기업들과 원전개발계획 수립 추진 협력의향서(LOI)를 지난달 31일 체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폴란드 국유재산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정보공유를 확대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정부와 한수원은 폴란드 민간사업자 제팍(ZE PAK)과 추진하는 퐁트누프(Pątnów) 원전사업에 대한 LOI 서명을 통해 폴란드 정부의 공식 원전개발사업(PPEJ) 탈락을 만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수원이 수주 경쟁을 벌여왔던 PPEJ는 최근 한수원이 아닌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낙점했다.

이날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원전 수출 의지와 정책이 뒷받침된 성과"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최종 계약시 한국이 유럽 원전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마치 수주가 사실상 확정된 것처럼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LOI와 MOU는 모두 계약 초기단계에 체결되는 것으로, 이를 원전 수주로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LOI(Letter of Intent)는 협력에 대한 의사를 표시한 문서이고, MOU(Memorendum of Understanding)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내용을 기록한 문서다.

실제로 지난 1년여간 폴란드에서 원전 관련 LOI를 체결한 건수는 5건에 달한다. 모두 시제품조차 없는 소형모듈원전(SMR) 사업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한수원이 원전건설을 기대하는 퐁트누프 부지는 GE-히타치와 폴란드 화학업체 SGE가 이곳에 SMR 건설사업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한 상황이라 이번 LOI 체결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폴란드에서 남발하는 원전 계획들의 실체에 대해 폴란드 현지 전문가들은 '총선용 공수표'라며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 폴란드 우치기술대학교(Lodz University of Technology) 브와디슬라프 미엘차스키(W. Mielczarski) 교수는 지난 28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폴란드 전문가들 대부분은 현재 거론되는 원전계획들을 사실상 정부의 사전선거 캠페인 정도로 여긴다"고 밝혔다.

폴란드 총선일정은 2023년 10월 13일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지난 2021년부터 석탄연료 조달문제로 비난여론이 일자 단기적으로 여론을 잠재울 홍보수단으로 원전을 들먹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LOI를 주도해온 야체크 사신 부총리겸 국가자산부 장관의 허울뿐인 치적쌓기에 우리 정부와 한수원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한수원-제팍간의 LOI가 실제 원전건설로 이어진다 해도 퐁트누프 부지에는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있다. 우리나라가 개발한 3세대 신형 경수로 원전 APR1400을 가동하려면 초당 50~60톤의 바닷물 또는 강물을 냉각수로 공급해야 하는데, 이 부지에서는 대량의 냉각수를 확보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부지가 바다나 강에 인접해 있지 않다보니, 대량으로 배출되는 온배수를 방류할 곳도 없다.

퐁트누프 부지 인근에 있는 5개의 작은 호수들은 소규모 화력발전을 가동하기 적합한 수량만 갖추고 있다. 부족한 냉각수를 조달하기 위해 냉각탑을 별도로 마련한다고 해도 한수원은 내륙에 원전을 건설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막대한 위험손실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LOI가 홍보될수록 폴란드 원전사업에서 한국업체들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적재산권 문제와 국제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웨스팅하우스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09년 한수원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주 낙찰 이후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의 수출을 제한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했다. APR1400에 자사 기술이 적용됐다며 이를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에너지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은 기술자문료, 증기터빈 제작참여 등을 통해 지적재산권 문제를 임시 봉합한 상태다.

UAE 수주경쟁 당시 한수원이 낙찰될 것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웨스팅하우스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난달 21일 한수원을 또다시 미국 수출통제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달 19일 한수원이 제팍과 퐁트누프 원전 관련 LOI를 서명할 예정이라는 폴란드 언론보도 직후의 조치였다. 실제로 웨스팅하우스는 소장에서 이번 LOI가 고소의 직접적인 계기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국내 원자력계는 웨스팅하우스가 따낸 폴란드의 루비아토프-코팔리노 원전사업이 시공과 기자재 공급을 한국에 의존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말고도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유지해온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강소 등 일본의 원전사업 파트너들이 있다. 일본제강소만 하더라도 원자로압력용기 등 원전용 대형단조제품 분야에서 세계 최대 공급사로, 최근 준공된 핀란드의 올킬루토-3호 원전의 원자로압력용기도 공급한 바 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1일 논평을 통해 "웨스팅하우스 고소의 발단이 된 한수원의 퐁트누프 원전 LOI가 홍보되면 홍보될수록, 웨스팅하우스의 폴란드 원전사업에서 한국은 완전히 배제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한수원과 정부기관 등이 타당성이 매우 낮은 원전사업의 수주에 매달리게 만듦으로써 공적 자원을 허투루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에너지전환포럼은 "정부는 이제라도 무리한 원전 수출 정책을 폐기하고, 사양길로 접어든 원전시장을 넘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서 국내 에너지 기업들 모두가 해외시장 진출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종합적이고 균형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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