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진정한 애도와 위험한 애도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11-01 15: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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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적 애도와 인지적 애도가 함께 필요해
감상적 슬픔 넘어 문제해결 노력 병행해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 (사진=연합뉴스)

애도한다. 애도의 한 방법으로 글을 쓴다. 애도의 물결에 참여하며 애도를 말한다. 핼러윈 이태원 참사로 다 피어나지 못하고 진 꽃다운 청년들에게 흰 꽃을 바친다. 지금은 애도할 때다. 아울러 우리의 애도를 고요히 성찰한다.

◇ 애도 방식을 강요하지 말라

우리는 애도한다. 집단적 애도가 진행 중이다. 이 참극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이 우리의 자녀, 이웃, 친구, 공동체의 일원들이기 때문이다. 온 국민들이 충격을 받고 이 슬픔에 참여하고 있다. 혹자는 모든 국민에게 트라우마적 쇼크를 안겨다준 국가적 트라우마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 일어난 참사인데다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대형 사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도한다. 애도는 자연스럽다. 애도는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정부가 국가애도기간을 선언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들의 애도의 정서에 정부가 개입해 의례적 형식을 더해준 셈이다. 따라서 애도를 통제하거나 시민들의 다양한 애도의 방식들을 제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공공의 안전에 대한 공공기관의 책임을 묻거나 참사의 근원적인 이유를 알고자 하는 국민들의 바람을 잠재우려거나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애도의 특성에 대한 무지에 가깝다. 자칫 자신들이 바라는 특정 방식의 애도만을 강요하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애도의 흐름은 근원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애도다.

애도는 큰 비극적 슬픔에 대한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 과정 역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열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들은 헌화를 한다. 작가는 글을 쓰고 화가는 작품에 담아내고 언론은 진실을 규명한다. 대부분 비통해한다. 더러는 분노하고 더러는 원인과 책임 규명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 모든 것이 애도의 한 방식들이다. 애도는 끝이 없다. 공동체적 애도는 더더욱 그러하다.

◇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는 애도한다. 애도함으로써 희생자 가족과 유족의 슬픔에 함께 하고 연대한다. 아울러 우리의 슬픔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이를 통해 아픔을 함께 극복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애도는 참여적 연대이자 슬픔을 넘어서는 몸짓이기도 하다.

강남순 교수는 <데리다와의 데이트 ;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책에서 애도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강 교수는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는 그 사람과 내가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경우에 애도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강 교수는 진정한 애도와 위험한 애도를 구분한다.

그녀는 위험한 애도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고 본다. 그 첫째는 애도 대상에 대한 이상화, 둘째는 낭만적 애도, 셋째는 내면화이다. 이상화란 그 존재와 삶의 자취를 지나치게 높이고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존재로 미화하고 승격시키는 것을 말한다. 낭만화란 밝고 좋은 것만을 부각시키는 일이다. 내면화란 '죽음 자체'를 하나의 늪으로 기능하게끔 무기력감이나 낭패감이나 냉소성에 마냥 빠지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강 교수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대체 불가능한 생명 상실에 대한 아픔에서 진정한 애도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한 인간으로서 그·그녀가 해온 일들의 의미를 되짚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나친 이상화와 낭만화의 오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애도하는 이들이 '나의 삶의 정황에서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강 교수가 말하는 이 애도는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지만, 넓게는 참사에 대한 공동체적 애도와 모든 종류의 애도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원리들을 담고 있다.

우리는 애도한다. 진정한 애도란 낭만적인 애도나 단지 슬픔이라는 감상적인 정서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애도와 함께 성찰하는 일이 필요하다. 애도는 그저 슬퍼하며 초상을 조용히 치르는 것 이상이다. 공동체를 성찰하고, 우리 사회의 공공 안전을 해부하고, 시민들의 안전이 가능한 장치와 제도를 만드는 일로 나아가야 한다. 반성적 성찰은 애도 이후의 작업이 아니라 애도와 함께 진행되어야 하고 그 자체가 진정한 애도의 실천이기도 하다.

◇ 애도는 슬픔을 극복하는 동행

우리는 애도하고 있다. 사람으로서, 이웃으로서, 부모와 가족과 친구로서, 동료와 벗, 공동체 일원으로서 못다핀 꽃들의 낙화와 유족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애도가 슬픔의 늪이나 우울과 무기력의 수렁으로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옳다>를 쓴 정신분석가 정혜신 작가는 공감을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으로 나눈다. 정서적 공감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결합된 성숙한 공감력을 뜻한다. 하지만 정혜신은 인지적 공감이 필수적일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서적 공감에만 머물지 않고 그 고통과 상처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도록 돕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혜신 작가는 진정한 공감에서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의 비율은 2대8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정서적 애도와 인지적 애도가 함께 필요하다. 원인과 책임을 명료하게 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민들의 거센 목소리와 여론 역시 인지적 애도의 한 과정이다.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나 법률 전문가들은 입 모아 말한다. 개인이나 국가의 범죄의 경우, 처벌 및 공개적인 사과가 피해자의 치유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그러면 특정의 범죄행위가 없는 참사의 경우는 예외일까. 그렇지 않다. 공공의 안전에 책임을 지는 정부 기관의 공적인 사과가 필수적이다.

참사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책임을 규명하는 일과 별개의 일이 아니다. 애도에만 집중하고 입 다물고 초상부터 치르자는 정부의 태도는 미숙하고도 관료적이다. 특정한 애도의 형식만을 강요하고 시민들의 성숙한 인지적 애도의 흐름과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도한다. 애도함으로써 함께 동행한다. 애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은 슬픔을 극복하는 다양한 몸짓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애도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를 보다 행복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희극으로 써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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