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자기변화 통해 좋은 노동주체 되어야
노동이 살아야 사회가 산다. 일터가 행복할 때 노동과 일상을 향유할 수 있다.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균형잡힌 노동정책이 이뤄질 때 함께 공존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노동은 권리이기도 하다. 서구 국가들은 '국민 100%의 노동'을 정책적 목표로 삼는 편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이는 것이 정책의 기본방향이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동등한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서다. 이런 관점과 정책의 기반 위에서 좋은 노동이 춤추는 사회가 되어 보다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 노동철학이 빈곤한 우리사회
그런데 우리 사회는 노동철학이 빈곤하다. 조선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 전통이 우리 문화에 여전히 남아있다. 직업과 노동의 성격에 따라 신분과 계급을 나누고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한다. 경제개발 시절, 고도성장을 위해 노동자에게 희생이 강요됐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등. 여기에 극단적 이념대결로 노동영역을 합당하게 보기보다 색안경을 끼고 단죄하는 분위기가 짙다. 이를 위해 '파업-경제마비-반사회적' 혹은 '노동운동-사회혼란-좌파'라는 조악한 삼단논법이 적용되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서 제법 교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왜곡된 노동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이미지는 사회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주류 세력의 이익과 시대 담론, 이념적 지형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즉 노동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어떤 해석'의 프레임이 우리의 인식과 이미지에 입체적으로 심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경제 정책이 모호한 상태에서 노동을 개혁의 표적으로 삼는 정책은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 노동정책, 사회적 공감대 필요해
2017년 독일에서 <노동4.0 백서>가 발간됐다. 이 백서는 독일의 사용자와 노동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2년에 걸쳐 대화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특히 이 백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대격변의 기류에 대응해 노동시장에서 일어날 변화와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뤘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다. 백서는 디지털 및 인공지능(AI) 기술이 미래사회에 미칠 전망과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일을 정부가 주도했다는 것이며, 노동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해 정교한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독일 정부가 국민에게 던진 화두는 '디지털화되는 사회변동 속에서 '좋은 노동'이라는 이상은 어떻게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을까?'다. 독일 정부는 <미래(futurale)>라는 영화를 독일 전역의 극장에서 상영하면서 국민토론 주제로 상정했다. 2015년 4월부터 2016년말까지 2년에 걸쳐 독일 각지에서는 여러 계층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기업, 협회, 노조, 학자, 시민들이 토론에 참가했고, 그 결과물이 <노동4.0>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는 독일과 여러모로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노동정책을 펼치기에 앞서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친 대목은 사례로 삼을 만하다. 사회적 공감대없이 마련된 노동정책은 호소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을 쏙 빼놓고 노동개혁을 천명하며 반노동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비칠 수 있다. 정부가 대화와 소통의 태도를 버리면 사회적 합의는 사라지고 대결과 적의만 남게 된다.
◇ 노동의 자기변화도 필요해
노동의 자기변화도 필요하다. 덧씌워진 이미지에 대해 불평하거나 정부와 기업과 미디어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현재의 노동 및 경제구조의 변화추이를 예견하고 면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노동자의 권익을 넘어 보편적 인권문제에 좀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약자 및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해 손잡아야 하고, 다양한 복지활동을 펼쳐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권익과 지위를 위해서도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노동자 우선주의와 계급이익을 넘어서는 열린 태도를 지닐 때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질 수 있다. 서구의 경우, 생태주의와 노동자주의는 서로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밀접하다는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생태와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노동자다. 그 노동이 신체노동이든 지식노동이든, 기술노동이든 단순노동이든, 예술 활동이든 돌봄 노동이든, 일터에서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공무원이든 교사이든 노동하는 모든 이들이 노동자다. 노동자가 더 나은 미래와 보다 좋은 노동을 꿈꿀 때 세상이 밝아진다. 정부와 기업은 이를 지원하고 도울 일이다. 좋은 노동은 노동자들이 만든다. 좋은 세상은 변화된 노동자들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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