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금 채굴로 현지 원주민 수은중독 '심각'
아마존 불법채굴현장에 굴착기를 판매한 HD현대건설기계가 단순 제조사를 넘어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현대(HYUNDAI) 중장비 아마존 파괴 동원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건설기계는 아마존 불법채굴에 활용될 수 있는 굴착기 판매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최근 금 가격이 급등하면서 브라질 원주민 보호구역에서도 채굴이 이뤄지고 있다. 원주민 보호구역은 어떤 경제활동도 할 수 없는 지역이지만, 금 채굴업자들이 범죄조직과 결탁하면서 불법 금 채굴 세력이 원주민 보호구역의 심장부까지 침투하고 있다.
지난 36년간 굴착기를 동원한 불법 금 채굴로 서울면적의 3.5배에 달하는 21만2504헥타르(ha)의 아마존 산림이 파괴됐다. 2019~2021년 원주민 보호구역 안에서의 파괴 면적은 지난 10년간의 평균치보다 3배 확대됐다. 지난해말 기준으로는 원주민 보호구역 내 1793km에 달하는 강이 채굴행위로 오염됐다. 한강의 3배가 넘는 길이다.
2010년부터 산업용 유압 굴착기가 도입되면서 문제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굴착기가 헤집어놓은 토양을 제트수압분사기로 털어내고, 수은을 투입하면 모래를 제외한 사금과 수은이 아말감 형태로 굳어진다. 여기서 금을 추출한 뒤 수은은 태워버리는데, 이 과정에서 수은이 공기중에 날아가거나 강물로 유입된다.
이 때문에 브라질 파라주 야노마미 보호구역 내 원주민의 92%가 체내 수은농도 기준치를 초과한 채 살아가고 있다. 수은중독으로 아이를 유산하거나, 강물이 수은에 오염되는 바람에 주식인 민물고기를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시달리는 원주민도 급증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마존 카야포 원주민 지도자 도토 타칵 이레 씨는 "굴착기를 사용한 채굴은 강을 오염시키고 아마존 우림과 원주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며 "급격하게 늘어난 채굴로 수은중독 및 말라리아 감염자가 늘어 우리는 심각한 건강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외부에서 유입된 인부들이 말라리아를 옮기면서 어린아이 570명이 숨진 것이다.
다니클레이 디 아기아르 그린피스 브라질 아마존 선임 캠페이너는 "중장비가 도입되면서 원주민 땅에서 불법채굴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중장비는 아마존 원주민뿐 아니라 거대한 생태 보고인 아마존을 파괴해, 지구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린피스가 지난 3년간 아마존 금 채굴의 95%가 집중된 야노마미, 문두루쿠, 카야포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항공촬영을 통해 채굴현장을 조사한 결과, 포착된 굴착기 176대 가운데 HD현대건설기계 로고가 부착된 굴착기는 75대나 됐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1.2%에 불과한 HD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점유율 43%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린피스는 HD현대건설기계가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HD현대건설기계의 현지 중장비 판매업체인 BMG는 경쟁 브랜드에 비해 불법 채굴 현장과 가까운 곳에 대리점을 집중적으로 설치하고, 불법 채굴업자들에게 금융지원까지 하면서 점유율을 높였다. BMG 대표 로베르토 가츠다는 지방의회 공청회에서 "2013~2019년까지 이타이투바(Itaituba, 불법 금 채굴의 중심도시) 지역에서만 HD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 600대를 채굴업자들에게 팔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2021년 10월 배포된 HD현대건설기계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1년 7월 HD현대건설기계 브라질 공장의 굴착기 누적 생산대수가 1000대를 기록했다. 브라질 생산대수 가운데 최소 60% 이상이 이타이투바 채굴업자들에게 팔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게다가 가츠다 대표는 현지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타이투바의 가림포(Garimpo, 비공식 영세 채굴업자)에 투자하도록 '한국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며 "현재 HD현대건설기계의 판매실적은 처음 사업을 시작한 8년전 미래의 채굴확대를 예상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HD현대건설기계는 브라질 현지법에 의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 환경법률은 "환경파괴를 유발하는 활동에 대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공공 또는 민간영역의 모든 자연인 또는 법인"을 '오염자'로 정의하고 있다. 오염자는 환경 복구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브라질 대법원은 해당 원칙이 "알고도 개의치 않은 자, 행위를 하도록 자금을 조달한 자, 다른 이들의 행위로 이익을 얻은 자"도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이같은 행위자는 금을 비롯한 기타 광물의 불법 채굴 공급망을 구성하는 모든 직·간접적 행위자를 포함하기 때문에 여러 기본권 훼손 및 피해 증가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장비의 제조기업도 포함한다는 게 그린피스의 해석이다.
실제로 2020년 이미 이타이투바 지역연방 검찰청은 HD현대건설기계의 유압 굴착기가 불법 채굴 규모를 급격히 확대시키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고, 우리와 달리 직접적인 수사권한이 없어 탐문적 정보수취 성격의 행정 수사절차인 '민사수사'를 시작했다. 당국은 HD현대건설기계를 비롯한 굴착기 제조 및 공급업체의 책임범위를 판단하기 위해 효과적인 통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또 불법 현장 투입을 감시할 수 있는 GPS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지 물었으나 HD현대건설기계 측은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답변을 거부했다.
HD현대건설기계는 2008년부터 하이메이트(Hi Mate)라는 원격관리시스템을 갖춰 GPS로 자사 장비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사용자는 디지털 지도로 자신의 장비 위치를 확인하고, 장비의 작업 영역에 가상 경계를 설정할 수 있다. 현존하는 기술을 활성화만 시킬 수 있다면 굴착기 위치 좌표를 보호구역의 외곽 경계와 대조해 출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HD현대건설기계가 브라질 불법 금 채굴에 자사 굴착기가 사용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경영방침으로 내건 'ESG경영'과도 정면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HD현대건설기계는 2021년 탄소중립 실현과 자연생태계 보존 등을 위한 지속가능경영 실천의지을 담은 'ESG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또 HD현대건설기계는 환경문제에 대한 예방적 접근을 지지하고 인권경영을 다짐하는 유엔글로벌콤팩트에 2021년 12월 가입했다. 올초 열린 CES 2023에서는 HD현대건설기계 정기선 대표는 "그동안 인류가 너무 오랫동안 지구환경에 지속 불가능한 압력을 가해 왔다며, 지금의 환경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에 대한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고 연설하며 친환경 경영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그린피스는 HD현대건설기계를 상대로 GPS-연동장치 도입을 비롯 자사의 장비가 원주민의 땅, 보호구역, 보전 가치가 높은 생태계 구역에서 파괴적인 활동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을 때까지 고위험 지역의 사업을 중단하고, 최종적으로는 생태계를 복원 및 원주민 피해 복구 지원을 요구했다.
끝으로 카야포 원주민 지도자 이레 씨는 "카야포 부족에게 강은 피와 같고, 숲은 살과 같고, 땅은 뼈와 같아 중장비가 우리의 강을 오염시키는 것은 우리 피와 살과 뼈를 오염시켜 죽이는 행위"라며 "가림포가 우리를 죽이는 행위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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