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전력생산의 60%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이유가 철강과 조선 등 에너지 집약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데다, 전력시장의 독점 구조와 재생에너지의 높은 규제장벽 그리고 부족한 전력망 등이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영국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간) '한국은 화석연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이 기후계획에 실패하는 원인은 하향식 탄소집약적 개발과 관료주의적·중앙독점형 에너지 모델에 있다"고 짚었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연간 총 5억7742만톤으로 전세계 배출량 10위 수준이다. 1인당 탄소배출량도 11.16톤으로 전세계 평균 4.7톤을 훨씬 웃돈다. 이에 비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갱신 연도는 2021년에 멈춰있고, 기후계획도 매우 부실하다. 가디언은 "한국은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으로 유명한 경제대국 12위인 동시에 기후오염국 10위권 안에 드는 모순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의 40%를 감축하겠다는 '2030 NDC'를 수립했다. 또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국가의 목표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구성은 여전히 화석연료가 60%를 차지하고 있다. 석탄과 가스로 생산하는 전기가 전체의 60%에 이른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의 비중은 9~10%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재생에너지 평균 비중 34%의 약 4분의1 수준이다.
재생에너지에 걸린 수많은 규제 장벽도 에너지 전환의 걸림돌이다. 한국에서 풍력발전단지 하나를 설치하려면 여러 부처에서 받아야 하는 허가만 28건이고, 이로 인해 기간 및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재정적으로 실현불가능해진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올초 승인 과정을 간소화하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이 법안은 2026년에나 발효된다.
부족한 송전망도 문제로 꼽힌다. 전력 수요 자체는 지난 20년간 98% 증가했지만 송전망은 26%밖에 확장되지 못했다. 문제는 송전망 설치 지역에서의 반발과 갈등이다. 정부는 경남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려는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부지 매각을 강요했고, 정부와 지역간 갈등은 6년간 지속됐다. 이런 이유로 국내서 중단된 프로젝트만 12건이다.
올해 2월 국회는 송전망 확대를 목표로 하는 전력망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시민단체들은 이 법안이 하향식 인프라 개발모델을 강화해 공개협의 등 남아있는 보호장치마저 제거한다는 우려를 내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전력이 지역에 환원되지도 않고, 개발 과정에서 지역 목소리를 고려않고 지역에 피해를 입히고 있어 갈등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배출권 거래제도(K-ETS) 등 한국의 시장 기반 기후정책도 효과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정치적 변동성도 이 문제를 키우는 데 일조한다는 평가다. 대통령이 바뀌는 5년마다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다보니 재생에너지 관련 장기계획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국정 기조로 내세웠지만 이후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이를 전면 백지화했다.
그 결과 한국전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급증한 에너지 가격파동을 그대로 맞았다. 2022년 국내 LNG 전력 비용이 22조원이 들었고, 여기에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면서 2024년까지 한전의 부채는 205조원으로 급증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독점시스템에 의해 청정에너지가 원천 차단돼 있어 개혁이 어려운 상태라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에너지집약적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 조선, 반도체에 의존해온 점도 에너지 전환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박상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막대한 양의 전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들이 국가의 경제 구조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며 "중공업과 화학공업에 대한 구조적 의존은 에너지 전환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포스코, 삼성, 현대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국내 시장·정책뿐만 아니라 전세계 화석연료 사업에 자금 및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조선소들은 세계 LNG 운반선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공공 금융기관들도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고 있다.
가디언은 국민연금공단이 2021년 '석탄프리'를 선언했음에도 여전히 화석연료 프로젝트의 주요 투자자로 남아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국민연금은 이 발표 이후 3년 반이 지난 2024년 12월에야 2030년까지 국내 석탄 자본을 매각하는 전략을 확정했다.
한국 정부는 기후목표에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불안정한 계산에 의존해 순 배출량과 총 배출량을 혼동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런 비판에 직면하자 환경부는 "탄소감축 목표 산정방법은 국제 규정과 주요 국가사례를 고려한다"며 "일본과 캐나다와 같은 국가가 2030년 NDC에 대해 유사한 계산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부터 국가 온실가스 통계에 2006년 표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