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식민지배가 불법 아니라고?...강제징용 피해자 울리는 법원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1-06-08 15:41:27
  • -
  • +
  • 인쇄
강제징용 손배소 각하 판결문 살펴보니 '기막혀'
민변 "법관으로서 독립과 양심을 저버린 판단"


우리나라 법원이 일제에 강제징용 당한 피해자가 아닌 일본 기업의 편에 서서 판결을 내려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판결문 내용이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을 상대로 배상을 강제로 집행하면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관계까지 훼손된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소송을 각하한다고 밝혀 공분을 사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가족 85명이 일본제철과 닛산화학,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5가합13718)에 대해 각하했다. 한마디로, 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없다'며 손해배상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판결문 내용이다. '소송 각하' 이유를 설명한 판결문의 상당부분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들어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법원이 사법부 판단을 넘어선 정치적 판단으로 판결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식민지배가 불법이 아니라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일본 정부가 주장해왔던 내용과 맥락이 똑같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재판부는 "국제법적으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자료가 없어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징용의 불법성은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하며,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통해 일본이 한국에 '독립축하금' 3억달러를 보낸 것으로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했다.

이는 일본이 불법으로 우리나라를 점령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말이다. 자칫 일본이 한국을 강제점령한 것이 정당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은 "한국 판사가 맞나" "한국 법원이 맞나"라며 판결문 내용에 분노했다.

무엇보다 이날 중앙지법의 판결내용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대법원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의 청구권협정에 식민지배 불법성 언급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 지급된 금액은 '배상금'이 아니며, 국가가 외교적 보호를 포기했을 뿐 개인의 청구권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개인의 손배소가 가능하다고 판결한 사안인데 중앙지법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오늘날 국제법 논의의 커다른 흐름은 식민주의와 관련된 조약 등에 대해 법적 유효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법은 '평등과 보편주의'를 전제로 하는 반면 식민주의는 불평등과 예속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국제법이라면 한 국가가 국력이 약한 국가에게 자국의 가치를 강요할 수 없다는 논리다.

특히 일본은 1932년 11월21일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 29호를 비준한 바 있다. 협약 29호는 '노예노동'을 폐지하고 '자유로운 임금노동'으로 대체할 것을 명시한 국제협약이다. ILO는 이미 수차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있는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무시한 처사라는 점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를 계승하며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연결성을 인정한다. 따라서 일본 식민지배를 소급적 무효로 간주한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강제력도 없는 국제법을 들어 국내법에 우선해 판결을 내린 것이다.


◇ 일본 원조로 한강의 기적 이뤘다고?

재판부는 또 일본 원조로 우리나라가 경제부흥을 이룬 것처럼 오도했다. 판결문은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적었다.

이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린 내용이다. 1962년 이후 박정희 정부의 해외 공공차관은 총 11억9300만달러다. 이 가운데 미국과 국제금융기구의 원조가 75%를 차지했다. 일본자금 비중은 22%에 불과했다. 그것도 무상차관이 아니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유상차관 2억달러를 포함해서 그렇다. 일본은 한국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챙겼으니 '원조'라고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서울지하철공사를 진행하던 때에 납품가를 2배나 부풀렸다. 일본은 4% 금리에 8000만달러를 빌려주는 대가로 일본 기업이 만든 객차와 부품을 비싼 값에 강매시킨 것이다. 패전국으로서 식민지 수탈에 대한 책임을 '배상'해야 할 일본에게 재판부는 되레 면죄부를 쥐어준 셈이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고 임정규씨의 아들 임철호(85)옹이 7일 재판 후 법정 앞에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日 전범기업 배상 강행하면 한일관계 훼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또 판결문에서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배상 집행을 강행할 경우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한미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돼 있는 미국과의 관계 훼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삼권분립을 지켜야 할 법원이 정부에 맡겨야 할 외교적 견해를 들어 판결의 근거로 활용했다. 이쯤되면 법원인지 외교부인지 헛갈릴 정도다.

이번 재판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논평에서 "재판부가 일본의 보복과 이로 인한 나라 걱정에 법관으로서의 독립과 양심을 저버린 판단을 했다"면서 "민사소송 원고의 권리를 인정하면 '대한민국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가 위태로워진다는 금시초문의 법리를 설시하면서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이라는 논리를 별다른 부끄러움 없이 판결문에 명시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아버지가 강제징용을 당한 임철호(85)옹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며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으면 이런 수치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 대리인인 강길(56·사법연수원 36기) 법률사무소 한세 변호사는 "현 재판부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결과 정반대로 대비되고, 기존 대법원은 소송물로서 심판 대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현 재판부는 매우 부당하다"며 항소 방침을 밝혔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신한은행' 지난해 ESG경영 관심도 1위...KB국민·하나은행 순

지난해 1금융권 은행 가운데 ESG경영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은 곳은 신한은행으로 조사됐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뒤를 이었다.1일 데이터앤리서치

"AI시대 전력시장...독점보다 경쟁체제 도입해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전력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전력수요처에 발전설비를 구축하는 분산형 시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상공

KCC그룹, 산불 피해복구 위해 3억5000만원 기부

KCC그룹이 산불 피해복구를 위해 3억5000만원을 기부했다고 31일 밝혔다.KCC는 2억원, KCC글라스는 1억원 그리고 KCC실리콘은 5000만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를

8년만에 바뀐 '맥심 모카골드' 스틱...친환경 디자인으로 변경

맥심 '모카골드'와 '슈프림골드' 스틱이 8년만에 친환경 디자인으로 바뀌었다.동서식품은 커피믹스의 주요제품인 '맥심 모카골드'와 '맥심 슈프림골드'

LG U+, CDP 기후변화대응 부문 최고등급 '리더십A' 획득

LG유플러스는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의 2024년 기후변화대응 부문 평가에서 최고등급인 '리더십 A등급'을 획득했다고 31일 밝혔다.CDP는 매년 전세계

코오롱ENP, 에코바디스 ESG 평가서 '상위 1%'

산업용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전문기업 코오롱ENP가 세계적 권위의 ESG 평가에서 '상위 1%' 등급을 획득했다. 코오롱ENP는 글로벌 ESG 평가기관 에코바디스(E

기후/환경

+

산불이 끝이 아니다...비오면 산사태 위험 200배

경북 대형산불이 지나간 자리에 산사태라는 또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2∼3개월 뒤 장마철과 겹치면 나무가 사라진 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작년 이상고온 103일 '열흘 중 사흘'..."기후위기 실감"

지난해 열흘 중 사흘가량이 '이상고온'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9월은 절반 이상이 이상고온 상태였다.정부가 1일 공개한 '2024년 이상기후 보고서'

경북산불 연기 200㎞ 이동했다...독도 지나 먼바다까지

경상북도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가 강풍을 타고 최초 발화지에서 최소 200㎞ 넘게 떨어진 동해 먼바다까지 퍼졌다.1일 기상청 국가기상위성센터와 대구

경북산불 피해 '눈덩이'...3700여채 불타고 3300명 터전 잃어

경상북도 북부에서 발생한 산불로 주택 3700여채가 불에 타고 주민 3300여명이 귀가하지 못하는 등 산불 피해규모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1

벌써 나타난 '빨간집모기'...전국에 '일본뇌염' 주의보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빨간집모기'(Culex tritaeniorhynchus)가 벌써 나타났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지난 27일 제3급 법정 감염병인 일본뇌염 주의보를 전국

잿더미로 변한 산…"생태계 복원까지 100년 이상 걸릴 것"

이번 산불로 잿더미로 변한 산림이 원상태로 복귀되는데 10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이영근 국립산림과학원 연구관은 31일 "올해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