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띄어쓰기 만든 한글학자 '주산 신명균'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1-10-29 17: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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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야기]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주시경학파의 맏형으로 '한자음 표기법'도 정리
▲주산 신명균 선생

'주산(珠汕) 신명균' 선생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 시절 한글연구와 보급에 앞장선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1889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1911년 주시경 선생을 만나 조선어강습원에 들어가면서 한글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권덕규, 김두봉, 이병기, 장지연, 최현배가 조선어강습원 고등과 동기생들이고, 이들은 모두 대종교인이었다. 이후 1921년 발족한 조선어연구회에 참여했고, 1926년에 간사을 맡았다. 1927년에는 '한글잡지'의 편집과 발행인을 맡았다.

문화운동 일환으로 이뤄진 그의 글쓰기는 국문의 현대화에 공헌한 바가 크다.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연구결과를 글쓰기에 시험해 일찍이 묵독을 위한 표기를 실천했다. 당시 혼란스럽게 쓰이던 '한자음, 받침, 된소리'의 표기방법을 연구해 되도록 발음에 부합하는 표기를 하도록 했고, 눈으로 읽어서 쉽게 의미가 파악될 수 있도록 '띄어쓰기, 형태소 쓰기'를 선보인다.

또 인쇄하기 쉽게 한글전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어린이와 노동자 대상의 글에서 한글전용을 한다. 한글 연구와 민중의 교육을 위해 쓰인 그의 글은 언중 중심의 실증적 구어문체를 이루고 있다. 쓰기 주체를 객관화하고, 문장과 문단의 연결을 인과적, 체계적으로 구성하며, 예시·도표·표본을 들어 의미를 구체화한다. 한자어를 풀어쓰고 속담을 활용해 어휘의 민중화를 꾀한다. 그의 글쓰기가 이뤄진 1920년대~1930년대는 한문, 일문, 영문 등이 착종된 가운데 국문의 문장 표준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국문의 문장 틀은 마련됐지만 표기와 어휘, 표현법 등이 혼란하던 시절, 신명균의 글쓰기는 국문의 표기와 문체를 세련하여 현대적 문장의 전범을 마련한 의의가 있다.

▲신명균(1927) '漢字音에對하여3' 한글 1(4), 한글학회, 9쪽

위의 '漢字音에 對하여3'에서 모음 'ㅣ, ㅕ, ㅑ, ㅛ, ㅠ, ㅖ' 의 초성에 쓰인 자음이 '두음, 모음 아래, 자음 아래'에서 소리가 변하는 한자음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핵심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를 제시하고 자세히 설명한다. '표에도 보인바와 같이'라는 표지를 사용해 글로 설명하는 내용을 표로 확인하게 한다. '漢字音에 對하여3'에서는 거의 쪽마다 이런 표가 제시되어 복잡한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요컨대, 신명균은 문장의 연결 및 글 전체의 구성을 다양한 인과적 표지와 논리로 전개하고 예시와 도표 등을 활용하여 의미를 실증하고 구체화한다. 이런 방식은 주장하는 글뿐만 아니라 사담, 설명문 등 글 전반에서 나타나 한글 연구에서 보이던 과학주의(합리주의) 정신이 글쓰기에서도 추구됐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한말시기 주시경 선생을 만나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그는 주시경과 동시대를 살면서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강탈하고 한국민족의 언어인 한글의 교육을 줄이며 일본어 보급을 강요하는 현실을 직시했다. 그래서 그도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1929년에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언문철자법회의 참여해 우리의 철자법을 주도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했다. 한글철자법 강연회와 한글강습회를 개최해 한글을 보급화하고자 했다.

1931년에 '조선어연구회'를 '조선어학회'로 바뀌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해 1932년에 간사장, 1933년에 회계감사를 역임했다. 1932년에 다시 '한글'을 복간했고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에 앞장섰다. 그는 한편 교원으로서 역할을 했다. 1914~1922년까지 독도(뚝섬)공립보통학교, 1927년 보성전문학교, 1930~1934년까지 동덕여고에서 조선어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일제의 압제에 맞서 '언론집회압박탄핵회'와 '전조선청년당대회'에도 참여했다. 아울러 '중앙인서관'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서적과 잡지, 신문 발간을 통해 학생과 일반대중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그의 민족의식은 스승인 주시경을 따라 대종교에 입교한 후로 더욱 고취됐다.

신명균은 영고탑(영고탑(寧古塔)은 중국 흑룡강성 영안현성의 청나라 때 지명)에서 열린 대종교 회의에 갔다 와서 '우리의 옛땅을 밝고 와서'(《신소년》, 1924.7)라는 기행문을 발표했다.

"우리들의 선조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문명도 해보셨고 남들이 설설길 만한 위엄도 부려보셨습니다. 이처럼 온갖 자랑과 호령을 부리시던 땅은 이 반도보다도 저 넓고 넓은 남북만주와 시베리아 등이었습니다. 5천년동안이나 되는 오랫동안에 자자손손이 살던 곳이니 끼쳐 놓으신 자췬들 얼마나 많았겠으며 살어진 자췬들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중에 혹은 단군 때의 무엇이니 부여의 무엇이니 발해의 무엇이니 고려의 무엇이니 하여 말로만 남아 있는 것도 잊고 혹은 자취만 겨우 붙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단잠을 못 주무셔 가며 애를 쓰시고 고생하시던 일이며 의리있고 용맹있고 맘씨가 훌륭하시던 것은 백년천년에 눈비를 무릅써 가며 변함없이 우뚝 서 있는 저 백두산이 낱낱이 알 것이요 밤낮 쉬지 않고 철철 흘러가는 저 송화강 흑룡강이 역역히 보았으련마는 답답한 저 산과 강이 말을 못하니 이를 누구더러 물어 볼까요? 그래도 얼마 되지는 않으나마 더러 있지만 있는 옛 자취를 잘 보관하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끼치신 뜻의 만일이라도 엿볼 수 있을 것이요 또 우리 자손된 사람의 도리도 되겠지요."

그는 만주가 단군 이래 우리 땅이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자손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자취를 보관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조선민족이 신덕이 높은 환검을 임금으로 삼고, 단군이 백두산 신목 아래 대궐을 세운 이래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가 조선반도는 물론, 러시아 연해주지방, 만주전역, 동몽고, 중국 본토의 황하연안까지를 조선민족이 밝고 다닌 땅으로 보고 있는 역사관에서 나온다.

1930년대 초반 동덕여고 교원시절에는 사회주의 운동가인 이관술과 함께 학생들의 동맹휴학투쟁을 지원했다. 전시파쇼 체제기에는 사회주의자인 박헌영·김태준과 만나 반제투쟁을 논의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이 평생 관여한 '조선어학회'와 '조선교육협회'를 일제가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현실을 목도했다. 신명균은 일제의 모욕적인 창씨개명에 반항해 스승 나철의 사진을 품은 채 1940년 11월 20일 자택에서 자살했다.

소설가 홍구는 '신건설' 잡지에 기고한 '주산(珠汕) 선생'에서 자신이 그가 자살하기 하루 전날에 만났던 사실을 밝히면서 "그때 선생의 비분은 말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사회주의자 이관술은 그의 죽음에 대해 "일제의 모욕적인 창씨제도에 반항해 자살해버린 신명균 선생이 있었다. 그는 일생을 양심적 민족주의자로서 마쳤거니와 철저한 반일 민족주의자였다"라고 평가했다. 또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은 "창씨개명 문제가 나왔을 무렵 신 선생이 그 스승 나철 선생의 사진을 품은 채로 자결했다"라고 평가했다. 창씨개명에 항거해 자결한 그를 좌우 모두 진정한 민족주의자로 기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한평생을 민족운동에 헌신했다. 그런데 그의 민족운동의 본령은 한글운동에 있었다. 그는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한글운동을 동지들과 전개하였다. 그는 주시경의 직계 제자로서 최현배, 김두봉, 장지영, 권덕규, 정열모 등과 함께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헌신했던 것이다. 1920년대 들어가 그의 한글 연구는 조선어연구회의 조직과 함께 맞춤법과 한자음 표기에 집중했다.

아울러 '조선어사전편찬회'에서 사전편찬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그는 조선어연구회의 월례회에 참여했고, 한글 강연과 동인지 '한글'을 발행하는 등 한글 보급 운동을 적극적으로 했다.

1930년대 들어 신명균은 '조선어학회'에서 한글의 통일과 보급에 중추적인 활동을 했다. 그는 철자법 제정위원으로서 한글 맞춤법통일안 완성에 기여했고, 표준어 사정위원으로 활동해 표준어의 제정에 도움을 주었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 민족의 문법의 통일에 기여하고자 '조선어문법'(1933)을 저술했으며,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조선 민중에게 널리 소개하고자 '조선어철자법'(1934)을 저술했다. 이런 작업은 민족어의 규범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아울러 그도 한글강연과 강습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그는 조선어학회의 기관지 '한글'을 편집하고 간행하는 업적도 남겼다. 이처럼 그는 일제시대에 합법적 공간을 이용해 한글운동이라는 문화투쟁을 전개했다. 신명균의 경우도 스승 주시경과 같이 국권회복의 일환 즉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한글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는 한글운동을 통해 한국민족의 문화수준을 향상시켜 일제를 타도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옛부터 남들이 우리 조선사람을 가르켜서 ‘美人’이라고 하고 우리 조선나라를 가르켜서 ‘군자국’이라고 하며 중국의 공자 같은 성인도 우리 조선에 와서 사시기를 원하신 것은 다 이 까닭이올시다. 인제 다시 우리 조선사람이 세계적으로 ‘미인’이 되고 우리 조선이 세계적으로 ‘군자국’이 되고 안되는 것은 다 여러분 소년에게 있습니다."

신명균은 단군조선이래로 한국이 '미인'이고 '군자국'을 지향하고 있음을 주지하고 청소년에게 다시금 세계적으로 이러한 나라를 만들 사명이 있음을 주장한다. 신명균은 대종교인으로 단군의 정신을 이어서 한글운동을 지켜나갔고 출판운동을 했으며, 좌우를 통합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신명균 선생은 2017년에 이르러서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글/ 민인홍
    법무법인 세종 송무지원실 과장
     대종교 총본사 청년회장
     민주평통 자문위원(종로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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