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타인은 지옥?...나도 타인에겐 지옥이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1-18 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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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관계는 판단하지 않는 시선과 말에서 시작
우정과 환대 출발점...열린 마음과 대화 필요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한결같지 않다. 타인은 유쾌하고 유익하며 충만한 행복감을 안겨주기도 하고, 반대로 불편이나 소외감이나 불쾌한 정서를 일으키게도 한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 있다. '타자는 나의 지옥이다.' 끔찍한 명제다. 2년 전 프랑스현대철학 강좌에서 이 주제로 토론을 했다. 이 말에 대한 공감 혹은 비공감을 물었다. 찬반을 물은 것이나 다름없다. 흥미롭게도 정확하게 50대 50으로 찬반이 나뉘었다.

◇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말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는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거나, 자신은 사람들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거나, 타인이 언제나 지옥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수사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다. '타인을 지옥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허무하고 슬퍼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타인이 지옥이 아닌 이유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고, 때로는 타인이 천사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타인과 친밀한 우정과 사랑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르트르의 언술에 동의하는 이들은 보다 깊이 파고들었다. 자신들의 경험보다는 그 말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즉 사르트르의 말은 '지옥'의 고통을 의미하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 결코 아니란 것이다. 그 말은 '우리의 많은 갈등과 고통은 타인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자는 것이다. 오히려 타인이 지옥임을 받아들이면 보다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고, 관계를 창조적으로 열어나갈 힘이 생긴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지옥'은 다분히 문학적인 표현을 빌린 철학적 진술이다. 이 말을 공포스럽거나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우리는 엇박자를 내는 관계

사르트르의 말의 핵심이 무엇일까? 우리는 근본적으로 타인과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일상과 관계 속에서 우리는 늘상 엇박자와 갈등을 수반한다. 실존적으로 우리에게 타인은 실로 나의 지옥이다. 나 역시 타인에게 지옥이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나의 시선을 통해 다른 이를 바라보고 판단한다. 그리고 나의 에너지장 안으로 그 사람을 끌어들이려 한다. 내가 그 관계 속에서 주인이 되려 하고 주도권자가 되려 한다. 다른 사람 역시 그런 방식으로 나와 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나와 너는 보이지 않는 투쟁의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상호적인 관계나 모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공동체주택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모임에서 한 여성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나로서, 있는 그대로서의 내가 이 모임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비판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고 그냥 수용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 말 속에서 한 가지 진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긍정적 경험을 더하는 일보다 부정적 경험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념이 같거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관계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목표나 이익을 공유하고 서로의 견해나 가치관이 같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관계가 발전하지 않는다. 유쾌한 경험을 많이 한다고 절로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경험을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불쾌감이나 소외감, 정죄 혹은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발생하면 그 관계는 근저에서 균열되기 시작한다. 나 자신이 온전히 수용되어 있는 그대로 존중된다는 것을 경험하면 누구든 그 관계 혹은 공동체를 신뢰하게 된다.

◇ 신뢰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을 쓴 파커 J. 파머는 '신뢰 써클'(Circle of trust)이라는 모임을 실험했다. 파커가 관찰해보았더니 대부분의 모임과 공동체와 집단에서 서로 경쟁하고 비방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언어가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며 간혹 세련된 매너로 위장하더라도 무언가 긴장감이 흐르는 모임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뢰의 써클이라는 이름으로 특이한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가입 조건은 단 한가지였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이를 판단하지 않고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기.

신뢰의 써클은 주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모여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대화하고 어울리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친교하였다. 놀라운 것은 2~3년이 지나자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사람들로 변해있었고, 모두가 관계가 친밀하고 따스한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가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 시선이 타인을 나의 관점에서 마구 판단하고 대상화하지 않는 눈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서로를 대하면 서로 고요하게 응시하게 된다. 우리는 말을 하고 대화를 한다. 그 말 속에 신뢰와 따스함의 온도가 담겨 있으며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상호간의 대화가 시작되고 진정한 소통이 시작될 것이다. 서로 경쟁하고 비판·정죄하고 상대방을 내 기준에 따라 바꾸려고 하는 모임은 언젠가 깨어지게 되어있다. 설사 표면적으로 잘 운영된다고 할지라고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평화로운 정글로 번성할 뿐이다.

◇ 우정과 환대···출발점은 '나'

친교를 목적으로 하거나 비영리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상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관계에서도 이러한 시민적 교양이 필요할 것이다. 진심으로 상생하고자 하는 태도를 지니면 대화와 협의 및 계약관계가 매끄럽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콜라보와 협업은 열린 마음과 열린 대화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에게 지옥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 타인에게 지옥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우리는 다들 관계에 지쳐있다. 다른 사람이 그 원인을 촉발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그 이유일 수도 있다. 상대방을 수용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지니고 자연적인 삶의 평면에서 수평적으로 만나는 이웃관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지옥은 벗어나야 하는 공간이 아니다. 지옥을 지옥 아닌 것으로 변형시키는 기술, 그것은 서로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변함없는 신뢰의 태도를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우정과 환대의 확산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이를 실천할 때, 이 지점에서부터 나에게서부터 번져나간다. From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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