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친환경 관련기준이 아직 없다"며 뒷짐
"종이테이프도 다 떼셔야 해요."
한 구석에 종이상자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 재활용품 분리장에서 마주친 경비원은 종이상자를 버리러 나온 주민들에게 일일이 상자에 붙어있는 종이테이프를 제거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종이로 만든 테이프는 친환경 소재인줄 알았는데 경비원은 왜 분리해달라고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이상자를 버릴 때 비닐테이프는 제거하지만 종이테이프가 붙어있으면 그냥 버린다. 종이로 만든 재질이기 때문에 상자에 붙어있어도 재활용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이테이프는 재활용이 안된다. 이유는 종이 뒷면에 접착제가 붙어있어서다.
분리수거장에서 상자에 붙어있는 종이테이프를 떼고 있던 주부 김미연(50)씨는 "종이테이프는 당연히 종이상자와 함께 재활용되는 줄 알았다"며 "비닐테이프랑 마찬가지로 어차피 제거해야 하는 것이라면 굳이 왜 종이테이프를 붙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닐테이프는 한번에 쫙 떼어지지만 종이테이프는 떼다보면 중간에 찢어지기 일쑤여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종이테이프 때문에 귀찮은 것은 주민들만이 아니다. 10년째 아파트 경비업무를 하고 있는 김광용(55)씨는 "아파트 주민들이 상자에 붙어있는 일반테이프는 떼지만 종이테이프는 그대로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재활용되지 않는다고 매번 말해야 하고 떼지 않고 그냥두면 재활용 수거업체들이 항의하기 때문에 일이 2배로 많아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종이테이프가 그대로 붙은 채 폐기물처리장으로 들어간 종이상자들은 종이테이프 분리작업을 별도로 해야 한다. 폐기물처리 전문기업인 수정환경산업 관계자는 "종이테이프가 붙은 상자는 아예 재활용하지 않는다"며 "종이테이프가 붙은 상자들은 따로 분리해놨다가 나중에 직원들이 일일이 제거한 다음에 재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재활용센터도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종이테이프가 붙은 상자들을 그대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기껏 분리배출했는데 테이프를 제거하지 못해 그대로 소각되거나 매립돼버리는 것이다. 종이테이프가 붙어있지 않았다면 충분히 재활용될 수 있는 종이상자들이지만 일반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다. 상자를 소각하는 과정에서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이산화탄소도 발생한다.
재활용업계는 종이테이프가 부착된 종이상자를 재활용했을 경우에 접착제 때문에 재활용 종이의 품질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한다. 종이를 재활용하려면 물에 풀어서 펄프로 만드는데, 펄프 사이에 이물질들이 끼어있으면 종이에 얼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종이테이프는 여전히 '친환경'으로 포장돼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종이테이프 제품설명서는 '종이와 함께 배출해도 되는 친환경적인 소재'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이런 탓에 소비자들은 종이테이프가 친환경인 것으로 착각해 종이상자에 붙어있으면 떼어내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다. 종이테이프가 재활용 가능한 종이상자를 되레 일반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꼴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환경부는 "종이테이프 관련 친환경 기준은 아직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렇다면 종이테이프 분리배출시 권고사항은 있냐는 질문에 환경부는 "그것 관련해서도 어떠한 기준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활용이 되지 않으니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하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관련 제도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그린피스 플라스틱팀 리더 차윤탁은 "상자를 포장할 때 사용하는 종이테이프에 화학첨가제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처럼 조립식으로 테이프없이 포장하는 종이상자 개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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