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크·키토산 등 플라스틱프리 가죽도 있어
식물성 가죽이 천연가죽과 합성피혁을 대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식물성 가죽의 대부분은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우레탄(PU)을 함유하고 있어 미세섬유 유출 및 매립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발제조업체 RM윌리엄스(RM Williams) 안젤라 윙클(Angela Winkle) 지속가능성책임자는 "대체가죽이 실제 가죽만큼 질이 좋고 수명이 긴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제품 수명이 낮아 생산 및 소비량을 늘려야 한다면 낮은 탄소발자국의 이점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앨든 위커(Alden Wicker) 에코컬트(EcoCult) 편집장은 "시판되고 있는 많은 인조가죽은 합성 마감처리가 돼 있다"며 "식물성 가죽브랜드들은 자사의 제품에 플라스틱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플라스틱 및 플라스틱-식물성 혼방소재, 플라스틱프리(Plastic-Free) 소재까지 다양한 종류의 인조가죽과 이들의 친환경성 여부를 짚어봤다.
◇플라스틱 가죽 'PU와 PVC'
시장에 나온 최초의 인조가죽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폴리우레탄(PU)과 폴리염화비닐(PVC) 두 종류다. PVC와 PU 모두 화석연료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동물에 의존하지 않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더 심각하다.
PVC 가죽은 생산과정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배출하고 재활용이 불가능하며 썩지도 않는다. PU는 안전성이 비교적 높으나 PVC와 다르지 않다.
◇식물-PU 혼방가죽
인조가죽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시도로, 식물과 균류를 활용한 식물-PU 혼방가죽이 주목되기 시작했다. 사용되는 소재도 버섯, 파인애플 잎, 선인장, 포도 등 다양하다. 그러나 PU가 들어간 이상, 특히 혼방소재가 쓰인 이상 생분해 및 재활용이 어렵다는 문제는 여전하다.
혼방 인조가죽은 보통 식물성 물질을 직물로 가공하고 그 위에 PU를 코팅해 내수성 및 내구성을 갖추는 공정을 거친다. 일부는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가능자원에서 추출한 바이오플라스틱을 쓰지만 여전히 플라스틱이기는 마찬가지다. 제품에 들어가는 합성수지 비중은 직물 소재 및 사용된 PU의 전체 양에 따라 다르지만 50%를 초과하기도 한다.
버섯으로 만든 가죽도 있다. 대표적인 버섯가죽 제품은 볼트 스레즈(Bolt Threads)의 마일로(Mylo)와 마이코웍스(Mycoworks)의 레이시(Reishi)다. 마일로는 아디다스, 가니, 스텔라매카트니 등의 의류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 농업폐기물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수직농장에서 재배한 균사체를 쓴다.
거품같이 생긴 균사체를 가죽처럼 보이게 무두질하고 얇은 수성 PU 코팅으로 마감하는 과정을 거친다. 위커 편집장은 마일로에 대해 수많은 과대 광고가 있지만 "결국 식물-PU 혼방소재"라며 순수 폴리우레탄보다 낫지만 여타 식물-PU 혼합물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미국 생명공학회사 마이코웍스에서 제조하는 레이시는 플라스틱 함량이 1% 미만으로 식물-PU 혼방소재 중 가장 낮게 나타났다. 레이시는 면과 같은 직물에 직접 균사체를 성장시킨 후 석유 또는 식물 기반 코팅으로 마무리해 제조한다.
전과정평가(LCA)에 따르면 레이시의 탄소발자국은 제곱미터당 2.76kg으로 실제 가죽 평균 발자국의 8%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인조가죽보다도 적다. 실제 가죽에 가까운 고급스러운 느낌도 준다.
단점은 가격이다. 위커 편집장은 "제조공정이 너무 까다로워 현재로서는 명품브랜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초호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레이시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에르메스가 있다.
피넥스(Pinatex)는 파인애플 잎 섬유로 가죽을 만든다.
파인애플 잎을 기계로 가공해 햇볕이나 오븐에서 건조한 후 섬유질을 추출하고, 이를 바이오플라스틱의 일종인 옥수수 기반 폴리유산을 사용해 정제한다. 여기에 마찬가지로 안료와 수성 PU 수지를 코팅한다. 피넥스 1제곱미터를 만드는 데는 파인애플 잎 480장이 필요하다.
피넥스는 투옵스(Twoobs), 보헤마(Bohema)를 포함한 소규모 브랜드에서 쓰인다. 전과정평가(LCA)에 따르면 탄소발자국도 레이시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커 편집장은 "사회적으로 유익한 방식으로 업사이클링하고 농업 폐기물을 활용하는 점은 대단하지만 여전히 합성성분을 쓴다는 점은 유감"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데저토(Desserto)는 H&M과 에버레인이 사용하는 인조가죽 제조사로 멕시코의 목장에서 화학약품이나 관계없이 자란 선인장 잎을 이용한다. 선인장 잎을 분쇄한 후 단백질과 무독성 액체중합체를 넣어 만드는 것이다. 데저토의 제품은 핸드백, 신발, 자동차에도 사용되며 소재에 따라 식물성 함량이 90%에서 30%까지 다양하다.
데저토 측은 지적재산권 문제를 이유로 액체폴리머의 소재는 밝히지 않고 바이오폴리머라고만 설명했다. 그러나 2021년 발표된 독일 FILK프라이베르크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데저토 제품에서 PU 및 제한된 화학물질 5가지가 검출됐다.
이에 관해 데저토 측은 해당 화학물질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교차오염 탓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베지아(Vegea)에서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껍질과 씨로 포도 가죽을 만든다. 포도찌꺼기와 식물성 기름, 수성 PU의 혼합물을 면 안감에 코팅한 다음 방수 코팅을 입혀 만들어지는 제품으로 여타 혼방소재 가죽처럼 PU가 들어간다. 스텔라매카트니, 판가이아 등의 브랜드에서 사용된다.
◇ 플라스틱프리 가죽
식물성 가죽 미룸(Mirum)은 스타트업 내추럴파이버웰딩(Natural Fiber Welding)에서 제조한 100% 식물성 플라스틱프리 제품으로 캠퍼, 스텔라매카트니 및 벨로이가 사용한다.
미룸은 천연고무, 쌀, 코르크, 코코넛 등 여러 재료를 쓰고 신발, 액세서리 등 다양하게 활용가능하며 색상, 윤기, 질감, 두께, 결, 향까지 맞춤 조절할 수 있다. 또 특허받은 물질로 내구성을 갖추는데 이는 식물 기반 물질로 재생가능한 원료에서 공급된다.
제조업체 측은 재료를 온전히 재활용해 100% 원형 제품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실제 재활용 수준은 달라질 수 있다. 위커 편집장은 미룸이 "생분해성에 재활용 가능하고 합성물도 전혀 없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런가 하면 톰텍스(TômTex)는 새우껍질과 버섯찌꺼기에서 나오는 키토산으로 가죽을 만든다. 따지자면 식물성 가죽은 아니지만 플라스틱프리 제품으로,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식품산업의 부산물을 이용한다. 즉 공급과 비용이 문제인 일부 인조가죽과 달리 톰텍스는 상용화될 잠재력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뉴욕패션위크에서는 디자이너 피터 도(Peter Do)가 톰텍스 가죽으로 만든 바지와 상의를 선보이기도 했다. 톰텍스 설립자는 해당 제품이 2023년 말까지 대규모 상용화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위커 편집장은 "톰텍스 제품이 실제 약속대로 나온다면 100% 바이오 기반에 생분해성, 무독성, 가죽과 같은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저렴한 재활용 제품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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