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칼럼] 외모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04-23 0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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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의 차이보다 외모로 편견과 차별을 키우는 외모지상주의가 문제
자기 이해와 수평적 만남의 내공 길러야

해외에서 온 지인을 만나러 강남의 한 호텔을 찾았다. 로비에서 기다리는 20분간 몇몇 외국인들이 내 앞으로 지나쳤는데 대부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두 여성 중 한 사람은 눈과 코뼈 주위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다른 한 여성은 부상 정도가 심했다. 턱과 머리 전체를 붕대로 감싸고 있었다. 잠시 후 로비를 지나가는 한 여성은 이마와 눈 부위를 포함해 얼굴 상당부분을 붕대로 가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들은 강남으로 성형수술을 하러 온 중국인들이었다. 성형 관광을 하러 온 것이다. 호텔에 묵으면서 성형수술을 하고 회복기간에 쇼핑도 하고 관광도 한다고 한다. 성형외과에서는 수술한 고객들에게 수술 증명서를 발급해 주기도 한다. 여권 사진과 너무 다른 얼굴이어서 공항에서 신원확인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성형, 이는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외모에 대한 갈망 혹은 집착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 외모는 힘이 있다

우리는 외모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미남, 미녀를 보면 눈길이 자꾸 가고, 특정한 신체 스폿을 보면 눈동자가 마구 커진다. 게다가 너도 나도 자기 몸을 꾸미기 위해 애쓴다. 엄청난 규모의 화장품, 패션, 미용, 보석 및 장신구 시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피부과 의원, 얼굴 및 피부관리 서비스, 헬스케어, 미용실 등도 외모꾸미기와 직접 관련돼 있다.

인류학적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진화를 통해 번식 잠재력이 높은 개체를 평가하는 회로를 발달시켰다. 특히 인간의 사회적 교류는 얼굴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첫인상만이 아니라 외모 호감도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인간은 외모에 대한 감각(미추 판단 감각)을 지니게 됐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그러한 외모 평가 및 짝짓기 선호 경향은 공통되는 패턴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매끄러운 피부와 빛깔, 좌우 대칭적인 얼굴과 신체, 얼굴과 이목구비의 균형이 있으면 '아름답다' 혹은 '건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이나 사회심리학의 연구는 남성과 여성은 각각 짝짓기 대상의 선호도에서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통계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대방의 신체적 매력, 건강, 경제력과 능력, 지식 등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은 여성의 외모에, 여성은 남성의 능력과 외모를 우선시한다고 한다. 더구나 이러한 경향은 북극에서 남극까지, 정글에서 대도시까지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이다. 외모 혹은 신체적 호감은 인간의 일차적 접촉과 끌림에서 가장 강력한 것임에 틀림이 없어보인다.

외모는 힘이 있다. 이제 외모는 단지 신체적 특성이 아니라 삶의 자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도발적인 명제까지 등장했다. '외모는 자본이다', '외모는 권력이다'. 그렇다. 우리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외모는 우리의 심리 역동과 자존감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우월감을 가지는 이도 있고,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도 있다. 때로는 상처입기도 하고 선망과 질시의 감정을 지니며 타인을 대하기도 한다. 외모주의의 중력장이 모든 사람을 장악해 버린 듯하다. 그 누가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외모 차별 vs 외모 평등

테드 창의 단편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는 외모주의가 지배하는 우리네 질서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사회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칼리'라는 시스템 사용을 둘러싼 논쟁을 다큐 형식으로 담았다. 칼리(Calliagnosia)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느끼는 뇌의 기능을 임의로 차단시키는 장치다. 칼리가 상용화되자 센세이션한 반응이 일어난다.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칼리 착용을 생활화하는 이상주의적 공동체가 생겨나기도 한다.

진보적인 대학인 팸플턴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칼리 착용 의무화 투표를 진행한다. 학생회의 마리아 데수사는 칼리 의무화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철저한 평등'을 위해서라고 설득한다. 이를 지지하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다. 리처드 해밀이란 사람은 '겉모습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세이브 룰(Save Rule) 학교를 설립한 자인데, 칼리를 모두가 사용하는 경우의 유익과 행복을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다. 여러 학자들도 이를 지지한다. '모든 사람이 칼리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별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사용하면 자신도 참가하겠다'는 학생들도 적잖다.

칼리 사용화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제프 인스럽은 '칼리는 좋은 것까지 제거해 버린다, 아름다움 자체를 인식할 수 없게 만든다, 전문가 시스템에 내맡기는 그런 변화는 진정한 성숙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반대한다. 조지프 와인가트너 교수는 '칼리는 부작용 가능성이 있다, 예술작품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생 캐시 미나미의 주장은 압권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칼리 운동이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킨다는 것은 허구다. 칼리 사용은 복종 행위이며,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전략에 불과하다. 의무사용이라는 발상은 다분히 전체주의적이다. 필요한 것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움의 개념이다.'

사회적 논란으로 확대되며 칼리 착용 의무화에 대한 찬반 토론이 격렬하게 전개된다. 투표는 부결되어 팸플턴 대학의 외모 평등을 위한 제도적 실험은 결국 실행되지 못하게 된다. 테드 창의 이 소설이 유의미한 것은 외모를 둘러싼 우리의 가치인식을 깊게 성찰하게 한다는 점이다. '외모'라는 요소가 얼마나 중요하고 핫한 이슈인가를, 외모로 인한 차별에 대한 반대 감정과 평등주의적 열망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새삼 인식하게 된다. 심지어 기술적 제도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외모로 인한 차별과 심리적 불편함을 제거하는 기발한 상품과 별난 이상주의가 등장할 수도 있으리라는 상상력의 세계를 엿보게 한다.

외모의 차이는 우리 삶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를 미/추, 장애/비장애로 구분하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다.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은 없애거나 제한할 수는 있겠지만, 개인들의 '외모를 둘러싼 차별적인 경향 자체가 노출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이란 사실상 없다. 겉모습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내면의 성숙을 기대하는 것과 공적인 차별 행위를 제재하는 방법 외엔 없을 것이다.

◇ 하얀 가면을 벗고 맨 얼굴로

사람의 얼굴 윤곽과 피부 색깔로 '미남·미녀 vs 추남·추녀'를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코드다. 오늘날 지구촌에 통용되는 미(美, beauty)의 코드가 있다. 그 표준은 서구 백인의 외모다. 그런 가치와 이미지를 생산하고 퍼트리는 매체는 헐리우드 영화와 상업 광고다. 가끔 아프리카계나 동양계 배우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백인 스타들의 신체와 얼굴 이미지를 반영하거나 모사함으로써 그 표준을 강화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탤런트와 모델과 같은 얼굴과 몸매, 패션을 지닌 사람을 잘 생긴 사람 혹은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흉내 낸다. 피부는 하얗게, 몸매는 날씬하게 하려 애쓰고, 섹시(sexy)라는 말을 아름다움(beauty) 혹은 '매력'과 동의어로 생각한다.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는 '백색신화'(la mythologie blanche=white mythology)라는 말로 그 허구성을 드러낸다. 하얀 피부를 지닌 백인의 얼굴과 외모를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보는 인식의 기저에는 어떤 기호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 코드다. 프란츠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하얀 가면을 쓰고자 몸부림치는 식민지 유색인종의 열망을 흥미롭게 해부한 바 있다. 식민지 지배를 받는 흑인이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수록 자신이 점점 더 백인에, 곧 진정한 인간에 다가가리란 생각을 하는데, 이는 허상으로 끝나고 만다고 지적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잘 하고, 유럽계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백인 부유층 및 부르조아 문화를 향유하면 스스로 고급스럽다고 여기는 태도 역시 일종의 가면 쓰기가 아닐까. AI가 저장된 데이터에 의해 코드화되어 있듯이, 우리의 인식과 가치 판단 역시 상당히 길들여지고 코드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일이다.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나 외모를 평가하는 감각은 결코 투명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런던에서 열린 스피드 데이트 행사가 큰 화제가 되었다. 남녀 참가자들이 종이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대화를 한 후, 서로가 마음에 들면 얼굴을 공개하고 대화하고 데이트를 하는 행사다. 일명 '종이봉투 스피드 데이팅'이다. 반응이 좋아 뉴욕 등 북미 큰 도시에서도 이벤트가 진행됐다. 여러 참가자들이 피드백을 남겼다. '얼굴을 가리고 대화를 할 때 얼굴이나 외모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리고 소통해 상대방의 다른 측면들을 보다 눈여겨보고 귀 기울이게 됐다'는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서도 편견을 버리고 서로를 깊이 바라보는 시선을 지니면 더 좋지 않을까?

자유로운 영혼과 단단한 내공을 지닌 이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슬퍼하거나 기죽지 않는다. 외모를 기준으로 남과 비교하며 부푼 자긍심과 오만을 키우지도 않을 것이다. 아울러 외모로 다른 사람을 섣불리 평가하거나 차별하지도 않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는 결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심판하는 현장이 아니다. 그 자리는 만남의 공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과 이어지는 숭고한 연결의 자리여야 할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는 수평적 만남의 배치에서 해체된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을 만난다. 우리는 꿈꾼다. 가면을 내던지고 맨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를. 우리는 그리워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그 누군가의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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