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칼럼]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공한다고?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06-03 10: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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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맞지않는 공허하고 허점 많은 메시지
좋아하지 않은 일도 껴안는 노동철학 지녀야


오늘날 공허한 주문 하나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 주문은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면 성공하게 된다'는 명제다. 온갖 매체들이 앞다퉈 이런 터무니없는 주술을 전파하고 있어 우리는 생각할 틈도 없이 그 말을 믿어버린다.

◇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

좋아하는 일을 하라(Do What You Love)는 말은 듣기에 참 좋은 말이다. 말 자체로는 어디 하나 틀린 데가 없다. 즐기는 일을 하는데, 그 결과 돈까지 벌고 성공까지 하게 된다니 이런 황금길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외침은 우리 삶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직업화하기란 그리 쉽지 않고, 좋아하는 일만 하다가는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고 만다.

알다시피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소위 성공했다는 기업인이나 유명인들 그리고 성공신화를 외치는 강연자들이나 공중파 방송 출연자들이다. 스티븐 잡스나 오프라 윈프리도 그런 말을 했다. 한국의 행복론 강사나 기업 강연자도 그렇게 떠든다. 기업가나 명사의 성공스토리는 별로 믿을 만하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했더니 이렇게 성공했다'는 식으로 각색된 것이다. 그들의 삶이 진정한 성공인가 하는 반론을 던질 수 있고, 그 서사도 우연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온갖 어두운 일들과 많은 이들의 도움과 희생의 바탕에서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즉 이 메시지는 '일을 사랑한 사람'이라는 콘셉트로 꾸민 연출적 치장에 가깝다.

한 번 살펴보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99%의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대다수 시민들은 생활비와 주거 및 교육, 의료 등 기본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기에 급급하다. 갑부나 소수의 특권층, 또는 부모가 모든 자금과 직업 및 사업 기반을 제공해주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직업이란 '임금'과 생존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기실현 활동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진실의 진술이 아니라 주류에 속한 몇몇 명사들이 내뱉는 자기 미화 시나리오라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그런 설법은 서구적 풍요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메시지 자체에서 성공주의와 엘리트주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더구나 이를 성공이라는 약속과 연결시켜 열정을 강요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정상에 서지 못한 것은 열정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규정되어 버린다. 그 마법의 주문은 우리를 더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런 거짓된 가르침에 속아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탓하지 말 것이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자책하지 말 일이다. '게으르지 말라'는 고대의 규범을 변형하고 '신을 섬기듯 일하라'는 청교도적 노동론을 이은 자발적 열정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노동론의 최신 버전인 셈이다.

◇ 우리들의 작업과 노동은 아름답다

자기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한 사람들이 우리들 가까이에 많다. 예술가, 음악가, 작가, 사회활동가, 봉사활동을 하며 사는 이들, 비영리 단체 실무자들. 이들은 최소한의 노동의 댓가나 생계 보장이 주어지지 않지만 자기 일을 사랑한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기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하라, 모든 댓가를 다 감수하고서라도. 그게 더 행복하다.' 이들의 즐거움은 작업과 활동 자체에 있다. 그 삶은 견딤의 과정이자 위협받는 생계를 둘러싼 고통의 연속이기도 하다.

서머싯 모음의 <달과 6펜스>를 알 것이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는 엘리트 직장인이다. 직장과 가정에 충실하던 그는 마흔살인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그는 거기서 가난 속에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다. 이후 그는 타이티로 건너간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을 찾아 파리로 온 소설 속 화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소. …… 나는 그려야 해요. …… 난 그려야 해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달'과 '펜스'는 무엇을 은유할까? 달은 이상, 절대적 자유, 진리, 꿈, 예술을, 은화 단위인 펜스는 돈, 생계, 현실 등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 둘을 동시에 취하며 누릴 수 있을까? 달을 붙잡기 위해 펜스를 버리는 이들도 있고, 펜스를 움켜쥐느라 달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으며, 저 멀리 있는 달을 바라보며 전략적으로 잠시 펜스 벌이를 하며 사는 이들도 있다. 둘 다를 취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삶의 현실은 마치 법칙인 양 이를 거부한다.

또한 우리는 모든 열정을 다해 일하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는 이웃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노동자, 자영업자들, 직장인, 연구자들과 교육자, 청년 학생들, 이들 대부분은 승자독식의 게임의 룰 안에서 원치 않게 패배자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들은 견디며, 버티며, 자기 삶을 계속 살아낸다.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기꺼이 해야 하며, 그리 원치 않아도 생산 라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며 함께 무언가를 이뤄낸다. 이들은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에 코웃음을 친다.

사실 이러한 이들의 노동이 사회를 지탱하고 운행시키는 근원적 힘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이 터무니없는 거짓 주술을 외치는 엘리트나 스타들의 삶보다 훨씬 존경스럽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는 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자 애쓰고,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

◇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해내는 힘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말들이다. 청소년, 청년들도 비슷한 말을 하곤 한다. 젊은이들의 이런 말들은 정당하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우리 삶이란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나이 40이 되어서도 늦지 않다. 아니 50대 60대가 되어서라도 자기 길을 찾는 사람은 참으로 행운아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사랑하는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자기 일에 숙달해 가며 즐김과 성취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대개 신체 노동만이 아니라 지식노동과 예술노동에서도 일하는 과정 자체는 결코 편안하거나 유쾌하지 않다. 단순한 반복과 복잡한 생산 및 유통, 판매의 과정을 통해서 겨우 성과를 얻게 된다. 판매량과 임금, 즉 '돈'으로 모든 것이 환산되는 시스템 안에서 노동은 극도로 소외되어 있고 노동의 댓가는 전혀 공정하지 않다. 가볍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개인 시간이 자유롭게 보장되고 여가를 충분히 즐기고 더 많은 휴식과 놀이와 공동체적 교류가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고 차별 시스템은 굳어져 있다. 그렇다고 그런 이상으로부터 먼 현실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내 몫의 노동을 해야 하고 교전해야 한다. 분배 구조와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는 사회적 실천도 필요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 자체를 껴안는 태도도 소중하다.

하기 싫은 일, 그리 즐겁지 않은 노동조차 기꺼이 선택하는 내공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더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 구조적으로 소외된 노동을 예찬하거나 생존을 위한 직업 선택의 불가피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의 힘겨움을 숙련을 통해 즐김으로 변형하고, 자신이 꺼리는 것을 직면하여 돌파해 내며, 자신이 그리 원치않는 운명조차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지가 우리 삶을 도약시키고 새롭게 열어젖히는 힘과 열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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