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포화상태 전력망인데 "적자라 투자 힘들다"
한국전력공사는 7년전부터 재생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동안 부족한 송변전설비를 확충하지 않고 여태 미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추가 전력을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포화상태에 이른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된 변전소가 205개에 달하게 된 것이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이 늘어나면 송변전설비를 확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2018년에 인지하고 있었다. 2017년 수립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는 2031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 목표치를 58.6기가와트(GW)로 잡았던 것이다. 당시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은 9.2GW였다. 정부는 2018~2023년까지 6년동안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26.4GW로 17.2GW늘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전은 2018년 수립한 '제8차 장기 송변전설비 계획'에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 목표치에 부합하는 송변전설비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당시 한전은 기존 전력계통 연계가 확정된 발전설비 용량 14.8GW만 보강하기로 했다. 부족한 43.8GW에 대해서는 차기 계획에서 재검토하기로 미뤄버렸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부와 한전의 엇박자는 이후에도 계속 됐다. 정부는 2020년 수립한 제9차 전기본에서 2034년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 목표치를 77.8GW로 늘려 잡았다. 하지만 한전은 '9차 송변전설비 계획'에서도 이미 확정된 사업을 기존 전력계통에 연계하는 46GW에 대한 보강사업만 수립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많이 들어설 곳으로 예상된 지역에 선제적으로 신규 송변전설비를 확충하는 계획은 '잠정사업'으로 분류해버렸다.
결국 신재생에너지 목표달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감사원은 지난 2022년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실태' 감사를 통해 한전의 송변전설비 계획을 지적했다. 이에 한전은 2023년 수립된 '제10차 전기본'에서 2036년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 목표치로 삼은 108.3GW에 대해서 56조5150억원을 들여 송변전설비를 제때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한전이 지난 7년동안 송변전설비에 대한 확충을 미루면서 재생에너지 전력계통은 더이상 전력을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의 60.9%를 차지하는 전라도와 동해안, 제주 등지의 변전소 대부분은 발전소를 더이상 연결할 수 없는 '계통관리변전소'가 돼 버렸다. 2036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108.3GW 달성하려면 12년 이내에 75.7GW를 늘려야 하지만 2032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연결한 변전소가 없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도 "당장 송배전 확충공사를 진행한다고 해도 2030년이나 돼야 전력계통의 여유가 풀린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8차 전기본'이 수립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년 사이에 23.4GW 늘어나면서 32.6GW가 됐다. 하지만 한전은 2018년부터 5년간 6504km 송전선로를 확충하겠다고 계획을 세워놓고 2023년까지 실제로 건설한 선로는 1641km에 그쳤다. 계획 이행률이 25%에 불과했던 것이다.
설비용량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나 RE100에서는 설비용량이 아닌 발전설비들이 실제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비중을 따진다. 하지만 전력계통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미 접속된 발전소들조차 출력제어를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2%이지만, 발전비중은 10.1%에 그치고 있다.
한전은 송변전설비를 제때 확충하지 못한 것을 '적자'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8차 전기본이 수립됐던 2017년 한전의 영업이익은 4조9531억원이었다. 부채도 지금의 절반 수준인 108조8243억원이었다. 당시 투자를 미룬 것이 한전의 상황을 더 악화시킨 꼴이 됐다. 이후 한전은 2022년 상반기 14조30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화석연료 비용급등으로 상승한 전력비용이 13조814억원에 달한 결과였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향후 첨단산업 전력수요 증가로 전력망 투자액이 10차 전기본에서 제시된 56조5150억원에서 20조원가량 늘어날 전망인데, 총부채가 200조원에 달하는 상황이어서 적자폭이 줄지 않으면 전력망 투자를 늘리기 어렵다"면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어디로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입지가 확실히 정해지기 전에는 섣불리 송전선로를 늘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한전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독일은 전력생산과 전력소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기별·지역별 전력망 최적화 시나리오를 수립해 재생에너지 확장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미리 송전선로를 구축한다"면서 "아울러 독일은 송전선로 구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민 갈등을 중재하는 전문기관인 '자연보호와 에너지전환 역량강화센터'(KNE)를 갖추고 있어 인허가 절차, 주민반대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전선로 확충 계획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전력망은 앞으로 20~30년 계속 건설해야 하는 상황인데 계획만 수립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을 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서 "계획이 발표됐으면 그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 어떤 방법을 논의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환류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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