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중고의류의 N차 순환 생태계
뉴스트리가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을 차례로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뷰티풀펠로우는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로 일상생활 속 긍정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사회혁신리더를 선발해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한해 버려지는 옷들은 얼마나 될까?
윤회의 노힘찬(36)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 버려지는 옷이 1000만벌"이라며 "전세계적으로는 지구 인구의 4배에 달하는 330억벌의 옷이 쏟아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까지만 해도 한해 6만톤 남짓이던 의류폐기물은 2022년 11만톤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의류폐기물의 대부분은 2가지 이상 소재가 섞인 혼합섬유여서 재활용이 불가능에 가깝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패션'이 인기를 끌면서 의류폐기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헌옷만 버려지는 게 아니다. 한번 입지 않은 새옷도 1년에 50~60만톤이나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가의 브랜드들이 제품 관리 차원에서 재고 의류를 그대로 내다버리기 때문이다. 이 옷들은 대부분 무허가 폐기물 사업자들의 손에 넘어가서 소각용 연료로 쓰이거나 해외로 '떨이'로 넘겨지고 있다.
'윤회'는 이렇게 버려지는 옷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류순환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노힘찬 대표는 "재고·중고의류들이 마구 버려지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도 의류폐기물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의류순환 플랫폼을 개발중"이라며 "현재 베타테스트중인 이 플랫폼이 완료되면 의류의 이력관리를 통해 폐의류를 줄이고 탄소도 저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옷이 버려지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해서 재판매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에서 회사명도 '윤회'라고 지었다는 노 대표는 앞으로 의류 재판매 실적을 탄소배출권으로 만들어 의류 브랜드들의 탄소저감까지 지원하고 싶다는 포부도 나타냈다.
◇식품처럼 의류도 유통규제 시작된다
노힘찬 대표는 "요새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식품과 가공식품을 두고 고르라고 하면 비싸더라도 유기농을 택한다"며 "규제에 의해 원산지, 가공자, 영양성분 등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게 됐기 때문"이라며 "패션산업에도 '더 건강한 옷'을 선택하도록 하는 이같은 규제가 해외에서는 이미 마련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세계적으로 생산된 옷은 약 30% 정도만 판매되고 있다. 나머지 70%는 판매되지 못한 재고의류가 된다. 판매된 30% 의류에 대해서도 이력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이렇다보니 대량생산-박리다매 구조의 '패스트패션'이 성행하면서 무분별한 생산과 폐기로 의류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됐다. 패션산업의 탄소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10%를 차지하고, 폐수 발생량도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이에 최근 유럽연합(EU)은 패션산업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오는 2027년부터 의류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디지털 제품 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을 도입한다. DPP를 등록하지 않은 옷은 EU 역내에서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DPP를 도입하더라도 의류 제작 과정에서 인권·환경 문제가 없는지, 의류 자체가 오래 입을 수 있도록 내구성과 수리성이 보장되는 지 등의 여부에 따라 추가적인 제재를 받는 구조다. 노힘찬 대표는 "이같은 규제가 전세계로 확산될 경우 국내 4만여 의류브랜드 가운데 절반 이상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 착안해 윤회는 '한국형 DPP'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의류라벨 '케어 아이디(ID)'를 개발했다. '케어 ID'는 의류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원료 생산과정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다. 암호화 기능을 통해 정품인증 및 정보보안도 보장한다. 의류브랜드 입장에서는 케어 ID가 부착된 의류에 대해 제조와 수송, 폐기단계까지 물과 에너지 사용량 그리고 탄소배출량 등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다.
노힘찬 대표는 "케어 ID가 부착된 의류는 앞으로 의류순환 플랫폼에서 판매할 예정"이라며 "이 플랫폼에서 케어 ID가 부착된 옷을 구매한 소비자는 추후 같은 옷을 이 플랫폼에서 되팔 겨우 보상판매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류가 시스템에 등록돼 있으면 언제든지 N차로 재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판매될 때마다 해당 의류를 제조한 업체는 탄소저감이 실적으로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노 대표는 "현재 윤회는 국내 168개 의류 브랜드들의 재고를 중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해외 판매처로 연결해주는 유통대행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중 일부 물량에 케어 ID를 적용해 시범운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국내 유통되는 의류의 10%에 케어 ID를 부착하고, 국제기관의 제3자 인증을 거쳐 탄소배출권과도 연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헌옷과 새옷의 경계 허물어질 것"
'옷을 반복해서 재판매한다'는 사업 아이디어는 노힘찬 대표의 어린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어릴 때 항상 친형의 옷을 물려받아 입었던 노 대표는 옷에 대한 강한 집착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옷을 왕창 사서 입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하다보니 주로 구제의류 시장에서 싸게 판매하는 옷을 구입해서 입었다"며 "그러다가 입던 옷을 되파는 중고의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여행비로 받은 용돈 50만원으로 구제의류를 구입해 온라인에서 되팔아 쏠쏠한 이득을 보게 된 노 대표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패션의류로 진로를 잡게 됐다고.
하지만 노 대표는 구제시장이나 의류창고를 드나들 때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들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전역 후 별안간 그림그리기에 관심이 생겨 독일 유학길에 오른 노 대표는 유럽 MZ세대가 빈티지에 열광하는 모습과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광경을 몸소 겪게 됐다. 그는 "일상에서 이같은 경험을 하다보니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의류산업이 앞으로 주류가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귀국 후 그가 2020년 중고의류 플랫폼 '민트컬렉션'을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고품 가운데 최상급을 의미하는 '민트'급 제품을 모아놨다는 의미다. 소비자들로부터 보상판매를 통해 최상품 중고의류를 수거하고, 의류 브랜들로부터 재고의류나 친환경 콘셉트의 신제품을 위탁받아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MZ세대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와 상권에 오프라인 매장까지 병행해서 운영했다. 의류 스타일뿐 아니라 최초 구매가의 10~40%를 보상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4개까지 늘었고, 방문객은 월 2만명이 넘을 정도로 사업이 확장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민트컬렉션은 한계에 봉착했다. 수거량과 판매량이 급격히 늘면서 그만큼 인력과 장소, 장비가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노 대표는 "수거된 10벌 가운데 한두벌만 팔릴만한 옷이고, 나머지는 시즌에 안 맞거나 팔리는 데 시간이 걸려 효율성이 너무 많이 떨어졌다"면서 "의류 브랜드들도 브랜드 훼손 등을 이유로 참여가 저조해지면서 의류폐기물 문제는 소비자 단계에서 되돌리기에는 엎질러진 물같다는 생각이 들어 민트컬렉션를 접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그는 사업의 중심축을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옮기기로 하고, 지난해 의류 브랜드의 해외 유통을 지원하는 MNTC를 개설했다. 노 대표는 "현재는 MNTC를 통한 제휴사 확대와 케어 ID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앞으로 중고의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개선되고 의류에 대한 환경규제가 본격화된다면 헌옷과 새옷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는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며 "그 시기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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