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태풍' 배후는 석유기업?..."소송으로 기후책임 묻는다"

김나윤 기자 / 기사승인 : 2025-10-24 18: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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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태풍 오데트에 피해 입은 필리핀 민간주택 (사진=피플스페어트레이드협동조합)

석유화학 기업들이 기후변화를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소송을 당하거나 패소하는 등의 사회적 책임이 가해지고 있다.

필리핀의 슈퍼태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태풍의 책임을 쉘에게 물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 탄소중립 목표와 가스 생산량 증대를 목표로 내세운 토탈에너지는 '그린워싱' 판결을 받아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민사법원은 토탈에너지가 그린워싱을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토탈에너지가 마치 기후정책을 시행하는 것처럼 주장해 소비자를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토탈에너지는 2022년 '토탈'로 사명을 바꾸고 자사 웹사이트에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에너지 전환의 큰 역할을 하고 싶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전략의 핵심에 두고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에 따라 인구의 복지에 기여했다" 등의 메시지를 내걸었다. 그런 기업이 최근 "가스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것이다.

재판부는 토탈의 해당 문구들을 한달 내로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1만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 법원의 판결을 웹사이트에 게재하고, NGO 3곳에 각각 8000유로, 총 1만5000유로의 소송 부담금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토탈에너지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였다.

그린피스와 지구의 친구들 등 비정부기구(NGO)들이 제기한 이 소송은 석유화학기업에 프랑스의 그린워싱법이 적용된 첫 사례다. 토탈에너지의 경우 이미 네덜란드와 독일의 법원에서도 모호한 환경 주장으로 소비자를 오도했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소송을 제기한 NGO 중 하나인 '노트르 아페어 아 투스'의 저스틴 리폴 캠페인 매니저는 "프랑스 사법 제도가 마침내 토탈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화석연료 그린워싱을 해결하고 있다"라며 "이는 기후 허위정보는 용납할 수 있는 비즈니스 전략이 아니라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다만 천연가스와 바이오연료가 친환경이라는 사측 주장이 그린워싱이라는 의혹은 기각됐다. 법원은 기업 진술에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 포함돼 있지만 상업적 목적이 아닌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토탈에너지는 이번 판결이 모회사인 토탈에너지 SE의 웹사이트에 게재된 문구만 대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 기업은 현재 재생에너지를 35GW 설치하고 2030년까지 100GW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화석연료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소송에서 NGO 측을 지원한 클라이언트어스의 조나단 화이트 변호사는 토탈에너지가 기후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석유·가스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전세계 석유기업들로 하여금 화석연료를 전환의 일부라고 주장하다간 법적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라고 말했다.

또다른 석유대기업 쉘도 기소를 당됐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다름 아닌 필리핀의 슈퍼태풍 피해자 66명이다.

22일 원고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하는 법무법인 하우스펠트는 쉘에 소송 전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원고 측은 12월까지 당사자 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영국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원고 측은 쉘의 석유사업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쳐 태풍의 위력을 심화시켰다며, 필리핀 법률에 따라 기업이 건강한 환경에 대한 청구인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으며 배출량을 완화하지 않고 기후 허위정보 및 기후과학의 난독화에 관여해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태풍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며, 추가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자 기업을 제재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영국은 물론 전세계에서도 유례없는 것으로, 석유기업을 이미 일어난 기후 피해의 원인으로 직접 지목한 최초의 민사소송이다. 그간 다른 기후소송들은 미래의 피해와 위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필리핀은 지난 2021년 태풍 오데트가 상륙해 사망자 400명, 이재민 320만명, 100만채 이상의 가옥 파괴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 태풍은 필리핀에 온 태풍 중 가장 강력한 슈퍼태풍으로 꼽힌다.

원고 측은 유출된 문서를 인용해, 쉘이 최소 60년전부터 화석연료가 미칠 피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수익을 챙겨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쉘 대변인은 "쉘이 기후변화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한편 이번 소송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기됐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셰필드대학, 그랜섬 연구소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태풍 오데트와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또 필리핀 인권위원회는 쉘을 포함한 세계 최대 석유·가스·시멘트 생산업체 47개사를 대상으로 기후위기 관련 인권 침해의 책임 여부를 조사한 결과, 기업에 기후피해를 해결해야 할 도덕적·법적 의무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법무팀을 이끄는 그렉 라셀레스 하우스펠트 변호사는 "기업이 야기할 피해를 알면서도 그러한 행위를 계속했다는 사실과 대중에게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필리핀 법률에 위배되는 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은 전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런던 정경대학에 따르면 2024년에는 오염기업이 부담금을 지는 소송이 11건 접수됐다. 올해 독일 에너지회사인 RWE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오염자가 탄소배출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판결이 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후위기와 관련된 손실과 손해에 대해 배상 의무를 진 회사는 아직 없다.

기후변화 변호사인 테사 칸 업리프트 전무이사는 "기후피해가 증가하면서 법원은 책임을 묻는 기후 생존자들의 새로운 전쟁터가 되고 있다"며 "기업과 정부가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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