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없이 주사기로 약물을 옮기거나 혼합 가능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인큐베이터에 있던 신생아 4명이 시트로박터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적이 있다. 당시 간호사들은 '1인 1병'이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1병을 여러 신생아에게 나눠 주사한 것이 화근이었다. 소독하지 않은 손으로 동일한 수액병에 주사바늘을 여러번 꽂았다뺐다 하는 과정에서 세균이 감염됐던 것이다.
2009년~2010년 제주의료원에서는 임신한 간호사 27명 가운데 9명이 유산하는 사건이 있었다. 출산한 아이 가운데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도 있었는데 이 아이는 나중에 국가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고위험 약물을 취급하는 간호사들의 대부분은 유산, 불임, 백혈병 등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고위험 약물을 취급하는 간호사들은 그렇지 않은 간호사들보다 유산율이 7.2%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약물은 217종에 달한다. 항암제를 비롯해 난임치료제(생식독성약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위험한 약물을 주사기로 옮기는 과정에서 소량이라도 누출되면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누군가의 암이나 난임을 치료하는 약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난임이나 질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약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고위험 약물'은 처방과 조제, 보관, 이송, 투여, 폐기시 특별한 주의를 요해야 한다.
문제는 국내 대부분의 병원들이 이런 고위험 약물을 조제하거나 투여하는 의료진들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폐기물을 수거하고 청소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 이처럼 병원들이 고위험 약물을 취급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다보니,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사건이나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줄유산같은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고위험 약물의 노출방지를 위해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폐쇄형 약물전달장치'(CSTD) 사용을 권고하거나 의무화하고 있다. '폐쇄형 약물전달장치'는 약병에 주사바늘을 직접 꽂지 않아도 약물을 주사기로 옮길 수 있는 도구를 말한다.
국내에서도 폐쇄형 약물전달장치를 개발하는 바이오벤처기업이 있다. 바로 에스티에스바이오(STS바이오). 인천테크노파크(ITP)에서 개관한 인천스타트업파크센터 '인스타1관'에 입주해 있는 STS바이오는 자체 개발한 '폐쇄형 약물전달장치'를 현재 동산의료원 등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의 박정건 대표는 17일 뉴스트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 장치를 사용하면 약물 누출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들을 약물 오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TS바이오는 1병에 1개의 주사기를 꽂을 수 있는 '단일바이알(병) 전달장치' 국산화에 성공한데 이어, 얼마전 세계 최초로 여러 병에 담긴 약물을 한꺼번에 1개의 주사기로 옮겨담을 수 있는 '멀티바이알(병) 전달장치'까지 개발완료했다. 멀티바이알 제품은 한번에 최대 4개의 약병을 1개의 주사기로 옮겨담을 수 있다. STS바이오는 현재 멀티바이알 제품에 대해 국제특허출원(PCT)까지 마친 상태다.
박정건 대표는 "2019년 항암제의 한 종류인 화학요법제 투약 횟수는 230만건 이상이었다"면서 "이는 주사바늘로 투약한 횟수가 230만건에 이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대표는 "멀티바이알 제품을 사용하면 약물이 누출되지 않기 때문에 조제자와 투여자 모두 고위험 약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위험 약물을 조제하거나 투여할 때 기포나 증기 누출이 발생할 수 있고, 주사바늘을 통해 약물이 미세하게 새어나올 수 있다.
그런데도 국내 대부분의 병원들이 이 장치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의료보험급여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박정건 대표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때도 폐쇄형 약물전달장치를 이용하면 백신을 최대한 아낄 수 있다"면서 "지금은 간호사의 숙련도에 따라 1병당 7명까지 접종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장치를 이용하면 숙련 안된 간호사도 7명분의 백신을 추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STS바이오는 앞으로 산부인과, 안과 등 전문의별로 최적화된 제품을 개발해나갈 예정이다. 박 대표는 "국내에서는 폐쇄형 약물전달장치를 소모품 취급하며 경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라며 "특히 우리 회사의 멀티바이알 제품은 세계에서 유일하기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 경쟁력도 있어 수출도 계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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