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미국 핵심동맹국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정상회담 후 양국 합의내용을 정리해 공개한 '한미 파트너십 설명자료'(fact sheet)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4개 공동과제를 통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으로서 주요 사안을 함께 주도하게 된다.
4개 공동과제는 △기술혁신 △코로나19 대응, 글로벌 보건 및 보건안보 협력 심화 △기후 및 청정에너지 공동목표 진전 △한미 파트너십 확대 등이다. 각각의 협력분야들은 미국이 글로벌 리더 역할을 공고히 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들인데, 여기에 한국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한미동맹이 지정학적 정치·군사동맹, 수직적이고 시혜적인 동맹관계에서 포괄적 복합동맹, 상호 호혜적인 동맹관계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한미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의 미래가치를 공유하고, 나아가 한국은 미국의 굳건한 동맹으로서의 중요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역량을 검증받은 셈이다.
◇ '반도체' 분야 양국 워킹그룹 설치
먼저 '기술혁신' 분야에서는 한국의 반도체 역량이 두드러졌다. 앞으로 한미 양국은 반도체 핵심제품의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소재·부품·장비 등 전부문에 걸쳐 상호보완적 투자를 약속했다. 청와대와 백악관은 태스크포스와 관련 부처간 투자협력 워킹그룹을 설치할 예정이다.
최근 불거진 반도체 대란으로 반도체 공급망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한국이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칩이 과거 원유와 같은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며 한국과 대만을 '새로운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로 평가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0년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점유율은 43%에 달했으며 계속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한국은 2030년까지 반도체 생산기지에 10년간 510조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한다.
◇우주탐사 '아르테미스' 韓참여···KPS 개발지원
우주개발 및 디지털 첨단분야와 관련한 사안도 조명을 받았다. 한미 양국은 조만간 '아르테미스 계획' 약정을 체결하고, 우주탐사에 대한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2024년까지 달에 인간이 상주하는 지속가능한 거점을 구축한 뒤, 점차 그 영역을 화성과 그 너머로 확장해나가는 매우 중요한 국제협력사업이다. 현재 미국 포함 △일본 △영국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아랍에미리트(UAE) △우크라이나 등 9개 국가가 참여중이다. 여기에 한국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산업은 핵심 미래산업 분야다. 모건스탠리는 우주산업 시장이 2040년 1조1000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게 되면 이번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로 가능해진 우주로켓 개발과 함께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된다. 핵심 성장산업을 선점하고 아르테미스 계획의 행동강령인 인류의 "안전하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미래"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또 미국은 그동안 4조원 예산 압박에 지지부진했던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개발을 지원한다. KPS의 개발은 GPS 기반이 되는 PNT(Positioning·Navigation·Timing, 위치·항법·시각) 정보를 cm 단위로 초정밀화한다. PNT 정보는 앞으로 교통, 통신, 금융, 국방, 농업, 재난대응 등 4차 산업혁명에 꼭 필요한 핵심 인프라다. 특히 미국의 군사용 GPS나 일본의 위성항법시스템인 QZSS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 자주국방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
◇ 코로나19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구축
'코로나19 대응' 분야에서 한미 양국은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KORUS Global Vaccine Partnership)을 구축한다. 세계 2위 의약품 생산능력을 갖춘 한국과 세계 최고 백신기술을 보유한 미국이 협력해 빠른 생산과 공급을 통한 신속한 코로나19 극복을 추진한다.
한국은 미국과의 단순한 '백신 스와프'를 넘어 '백신 허브'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많은 백신을 조기에 생산해 전세계에 빠르게 보급하자고 제의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제가 문 대통령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은 한·미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세계를 이야기하는 비전을 가지고 계시다"고 화답했다.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는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기술을 이전할 것"이라고 밝혔고, 글로벌 코로나19 백신 제조를 확대하기 위해 과학자, 전문가, 양국 정부 공무원으로 구성된 고위급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전문가 그룹(KORUS Global Vaccine Partnership Experts Group)이 출범할 예정이다.
◇ "한국, 더는 일본의 하급 대체품 아니다"
그간 '기후악당', '환경운동가들을 실망시킨 국가'라는 오명을 씻을 기회도 찾아왔다. 한미 양국은 '기후 및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에너지 정책 대화를 장관급으로 격상할 예정이다. 수소저장관련 연구개발,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 그리드 규모 에너지 저장소, 해상 풍력발전을 비롯한 잠재 재생에너지 보급 등 탈탄소 협력을 확대한다.
이외에도 한미 양국은 '한미 파트너십 확대' 분야에서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의 확대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일례로 양국은 국내외 인권 및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민주주의·거버넌스 협의체(DGC)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인도-태평양이 양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지역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간 연계해 역내 사업에 대한 협력을 진전시킨다.
미국 국토안보부와 한국 국토교통부는 양국 정부간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최초의 환적 수하물 검색 면제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위탁 수하물이 미국에 도착하기전 검색하고 선별해 환승시간을 단축하는 것으로, 이는 자원을 극대화하고, 대면 접촉을 제한하며, 여행객에게 더 효율적인 수속으로 이어진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한국은 더는 일본의 하급 대체품이 아니다"면서 "미국의 향후 수십년 주요 과제는 중국이 될 것이며 미국은 그 수십년동안 한국을 곁에 두고 유럽 동맹국과 동일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논평했다. 이어 "이번 정상회담을 올바르게 접근한다면 미국이 21세기를 얻은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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