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표대결의 전쟁...선거가 과연 민주주의 꽃인가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1-26 11: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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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가르기식 선거 과열, 공화 깨뜨리고 있어
대의제도의 허상...직접민주주의 귀기울여야

누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했는가. 꽃을 피우기에는 지나치게 진통이 격렬하고, 향기가 아니라 악취가 만연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꽃은커녕 괴물을 탄생시키기도 했던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떠올린다면 선거 예찬은 감상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선거의 풍경은 정원이 아니라 전쟁터로 비유해야 적절해 보인다.

◇ 표 대결이라는 전쟁극

아시다시피 대선 정국이 전개되면서 표 대결이라는 프레임 속에 온 국민이 갇혀버렸다. 지지 후보에 따라 대결심리가 고조되고 'a 아니면 b'라는 이항대립적 구도가 온 사회에 팽팽하다. 거대 양당 중심의 선거판이 지속되면서 시민들의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격렬한 공방이 고조되어 적의가 양산되고 있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과연 선거 과정이 민주주의적 공론의 장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누가 보더라도 변형된 권력 투쟁 즉 전쟁터가 되어버린 듯하다.

특히 선거 이슈가 다른 모든 사회적 의제를 삼켜버리는 현상이 우려된다. 건축 현장 붕괴로 참사가 발생해 노동자들이 죽임을 당해도,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해도, 대통령이 전쟁무기 판매 외교를 하는 상황이 전개되어도 이런 이슈는 진지한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선거 표심을 좌우하거나 당락에 영향을 마치지 않는 다른 모든 것들은 무가치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분류해 버린다. 사회적 정의, 후보자 가족의 범법 행위, 가짜뉴스, 진실과 거짓의 문제, 무속과 주술의 선거판 침투와 연루, 남성 대 여성으로 편 가르기를 겨냥하는 극우 정체성 정치, 법적 도덕적 하자, 증오와 혐오의 재생산 등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들조차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단지 내 편인가 아닌가, 내 편에 유리한가 아닌가가 모든 판단의 준거가 되고 선거에 직결되지 않는 다른 모든 것들을 주변화되고 무화(無化)된다.

◇ 포지티브 No, 네거티브 Yes?

정책 개발과 정책 토론이 중요하다고 다들 입 모아 말한다. 하지만 포퓰리즘적 공약들이 쉬 남발된다. 심지어 그 실현 가능성이나 실천 의지를 물을 가치도 없을 정도로 허황된 공약들을 쉽게 공언해댄다. 놀랍게도 지난 수십 년의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공약들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공약은 공수표가 되고 언제나 부도가 났다. 따라서 시민들은 정신을 차리고 각각의 공약의 정교함과 가능성을 살피고 이를 실천해낼 역량과 진정성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선거판에서 '정책'이란 요소는 그리 주목을 끌지도 않고 공론의 장을 통해 엄밀하게 검증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정책 대결 아닌 다른 것이 선거판을 지배해 버린다.

네거티브가 선거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은 20세기 이후 정치공학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공약 개발과 정책 토론 등 포지티브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보다 상대방의 약점을 드러내어 지지 심리를 이반시키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의혹 만들기, 약점 캐기와 드러내기, 가짜 뉴스들과 날조된 거짓 선동이 겨냥하는 목표는 매우 자명하다. 후보자를 악마화하고 모호한 불안과 불신을 조장해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다. 이러한 네거티브 공방은 온 국민을 구역질나는 진흙탕의 한복판으로 몰아넣는다. 공적인 이익과 관련되는 정보와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정보가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마구 유포된다.

저널리즘조차 쉽게 마비된다. 언론사들도 줄서기와 눈치 보기를 하며 여론 조성에 은근히 혹은 공공연히 가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짜 뉴스콘텐츠를 생산하는 1인 유튜버와 선거 공작팀들이 양지와 음지에서 맹렬히 활동한다. 이 모든 일들은 표심을 공략해 적진을 흩어버리고 내 편으로 점령하기 위해서이다. 유권자들은 전적으로 대상화되고 도구화된다. 열혈 지지층은 점령지이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점령대상이거나 공략 대상으로 간주된다.

선거라는 체스게임에는 다수표를 얻는 자가 승리한다는 한 가지 룰(rule)만이 지배한다. 선거 결과라는 최후의 심판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의혹과 논란과 법적 판단도 저절로 해결되어 버린다. 이기면 그만이다. 표 대결에서 패배하면 끝이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전투구한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민주주의의 종말론적 상황과도 같다.

◇ 대의제도에 대한 근원적 성찰 필요해

선거는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한 방식이다. 하지만 프랑스혁명 이후 지난 200년을 거치면서 서구식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그 한계를 충분히 드러냈다. 선거란 투표를 하는 개인이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라는 인간 이해에 기초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바처럼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그리 합리적이거나 자율적인 방식으로 표를 행사하지 않는다. '쾌·불쾌'의 감정과 모호한 정서적 요소, 소속 집단이나 계층의 이해관계, 각인된 영상 이미지, 우연적 사건이나 정치공작, 정치적 선동과 집단의 광기 등이 작용해 버리면 개인의 자율적 판단은 거의 분해되어 버린다.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탈취한 나치 히틀러의 집권은 선거라는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하는 사례로 회자된다. 나치는 게르만 인종주의에 기반한 유태인 혐오와 이념적 적대성을 이용하는 선거 전략을 구사해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훔쳤다. 독일만이 아니다.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극우 세력이나 각양각색의 정당들이 혐오와 적대를 부추기며 국민들을 쪼개어 자기편으로 삼으려 들고 있다.

◇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국민에게 단지 선거권 하나만이 주어졌다. 물론 투표권은 소중한 권리이다. 그런데 선거 결과를 통해 모든 권력과 권리가 선출된 대표자에게 전적으로 양도되어 버린다. 게다가 선출된 대표자가 공약을 지키지 않거나 불법으로 행하더라도 소환하거나 탄핵을 해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희박하다.

전직 대통령을 탄핵한 한국의 스토리는 현대 정치사에서 매우 희귀한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촛불혁명이라고 언급되기도 한다. 시민의 성숙한 힘으로 권력지도를 바꾼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선거판은 다시 낡은 정치판의 옛 스타일로 회귀해 버렸다. 국민의 정치적 권리가 단지 투표장에 가서 한 표를 행사하는 권리만을 의미한다면 이는 제한된 권리에 불과하다. 더구나 정치인들이 대중 조작을 통해 표의 향배를 움직이기 위해 몰두한다면 선거 절차란 매우 기만적인 정치 게임으로 추락해 버린다.

다행인 것은 직접 민주주의 담론이 전 지구촌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주민자치, 민회(民會), 마을공화국 등 다양한 직접 민주주의적 담론과 시도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 본래의 정신과 가치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을 국민이 직접 결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나 의회가 국민의 의사와 일치하지 않는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경우 국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군구 등 지역 단위에서 시민이 직접 마을운영에 참여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을 말한다.

직접민주주의는 선거라는 대표자 선출제도를 긍정한다. 하지만 선출된 대표자들에게 전적으로 양도해버린 권력과 권한의 폭을 시민들이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그리고 국민이 직접 입법을 제안할 수 있는 국민입법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할 것을 지향한다. 대의제도도 온전하지 않지만 이를 유일의 제도와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대의된 대중(mass)들도 문제다. 따라서 시민들이 백성 마인드를 버리고 자신들이 주권자임을 인식하고 깨어나야 한다.

공화국 제도는 선거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선거의 흐름은 상호 적대적이고 섬멸전의 기운이 강해 오히려 공화(共和)를 깨뜨리는 수준에 가깝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선거 게임을 교양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페어플레이 정신을 아무리 강조해도 소 귀에 경 읽기에 다름없다. 네거티브가 무성해지는 이유가 무얼까? 그것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세력들에게 주어지는 기득권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적대적 경쟁으로 모든 국민들을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젠더 갈등이 아니라 젠더 평화를, 세대 포위가 아니라 세대 통합을 말하여야 마땅하다.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말하는 정치는 영원히 불가능한 걸까?

선거 결과가 한편에는 잔치가 되고 다른 한편에는 죽음의 굿판이 된다면 슬픈 일이다. 선거가 우리 모두의 축제가 되는 희망이 마치 몽상처럼 비춰진다면 이는 더욱 비통한 비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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