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5억도 부족한 사장...30만원도 흡족한 시인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2-14 18: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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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도 문제지만 과잉소유도 문제다
물질 목적화하면 사람을 도구로 삼아

한 지인이 어느 대기업 사장을 만나 담소를 나눴다. 둘은 친한 친구라 뭐든 숨김없이 대화하는 사이다. 연봉이 5억원을 훨씬 넘는 그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월급이 별로야. 예전에는 한달 월급이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림도 없어."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씁쓸했다. 서민들은 쳐다보기조차 힘든 절벽처럼 까마득히 치솟은 부동산 가격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수입에 만족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상황에 대해 탄식했다.

어디 그 사장 친구만 그럴까? 힘겹게 내집을 마련한 사람들조차 더 많은 자산을 가진 다주택자들을 보면서 자신을 초라하게 느낀다. 강북에 사는 사람들은 강남에 사는 사람들과, 경기도에 사는 사람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수도권에 사는 이들과 비교하며 박탈감을 느낀다. 그리고 대부분 엄청난 부채로 금융 비용의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청년들과 무주택자의 분노와 절망감은 말할 나위 없다. 소외 현상이다. 정착돼 버린 불평등구조도 실로 심각하지만 이로 인한 심리적 상처와 분노는 이루 측정할 수조차 없다.

◇ 물질이 목적이면 사람을 수단 삼아

우리 사회는 산업사회다. 고전적 산업사회가 아니라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이다. '자본'이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과 생각 그리고 가치관까지 좌우해 버린다. 물질 자체를 악하다고 보는 이원론적 가르침은 오래전 낡은 이론이 됐다. 물질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3가지 요소는 절대 궁핍과 신체적 장애와 재난 상황이라고 한다. 아무리 꿋꿋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경제적으로 핍절하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굶어죽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절대적 궁핍을 벗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물질을 숭배하는 일은 아름답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빈곤도 문제지만 과잉소유도 문제다. 물질을 목적으로 하면 사람을 도구로 삼아버리기 때문이다. 돈이 목적이 되면 이를 획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신체와 노동조차 도구화한다. 돈을 위해 일하면 삶 자체가 주는 기쁨을 향유하기도 힘들고 노동이 주는 진정한 희열을 맛볼 수 없다.

반대로 사람을 목적으로 하면 돈이 수단이 된다. 돈을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돈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숭배하지 않는다. 돈에 대해서도 무능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과 공동체를 위해 돈을 유용하게 사용한다.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맘몬(Mammon)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절대신으로 군림하고 있음을. 기업과 금융과 시장은 그 신전이 되고, 국가와 엘리트들은 그들의 사제가 돼버렸다. 이 종교는 탐욕과 광기를 부추기고, 대다수의 사람을 공포와 절망으로 몰아가 결국은 소외 체험을 심화시킬 뿐이다. 

◇ 소유 집착하는 사회구조와 풍토 바꿔야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다고 말했다.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이 그것이다. 전자는 재산,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 및 권력 등의 '소유'에 매달리는 소유 양식이고, 후자는 자신의 역량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며 삶의 희열을 경험하는 존재 양식이다. 소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형의 사람들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 그리고 삶에 진실하게 반응할 용기만 가지면 어떤 새로운 것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의존한다. 프롬이 구분한 이 두 유형의 삶의 방식을 접하면 우리는 깊이 사유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다시금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롬은 '존재' 중심의 삶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예수와 성서, 붓다, 노자, 에크하르트, 마르크스 등의 사상가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doing)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인가'(being)를 생각해야 한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당신의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리고 당신의 생명을 적게 표현하면 할수록, 당신은 그만큼 더 '소유'하려 하고, 당신의 생명은 그만큼 더 소외된다. - 칼 마르크스


우리는 존재의 길이야말로 실로 인간다운 삶이며 당연히 이를 선택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선을 넓혀 개인의 문제에서 공공의 문제로 이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소유 가치와 탐욕만을 부추켜 모든 사람을 소외와 파국으로 몰고가는 이 질서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분배 가치, 평등의 가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 생태 가치가 그래서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존재의 길을 선택하는 힘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맘몬의 질서를 바꾸고 변형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활동, 즉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목도하고 참여하고 있는 정치의 장은 엘리트들의 이익 다툼의 장이 아니라 이러한 '가치' 대결이 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 존재를 선택하는 당당한 자유를 지녀야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자신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를 함께 읽는 수업에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시만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있는가?" 그는 잠시 생각한 후 짧게 대답한다. "많지는 않지만 있다." 그러자 그 학생이 다시 묻는다. "그 시인은 얼마를 버는가?" 질문이 얄궂지만 피하지 않고 대답한다. "시인마다 다르다. 어떤 시인은 시도 쓰고 길지 않은 산문도 써서 한 달에 평균 30만원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한다." 그 학생은 "무슨 농담이 그러냐?"는 얼굴로 황현산 교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고 한다. 황현산은 그 산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시인이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으로 당당하게 사는 것이라고… 그는 구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친구가 많으며, 그와 친분이 있는 것을 영예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일화의 여운이 책을 읽은 후 오래 내 몸을 감쌌다. 잔향이 계속 전해져 왔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2010년도 당시 우리 사회의 시인의 평균 수입이나 문인들의 힘겨운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작가 정신을 말하고 있다. 당당히 존재의 길을 선택한 그 자유로운 정신 말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존재의 길을 선택하면 궁핍을 마냥 받아들이거나 생사는 거는 용기나 내공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어떤 형편에서든지, 재산이 많든지 적든지 그 어떤 종류의 일을 하며 살든지 소유와 존재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는 자유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존재'에 주목하는 이는 삶 자체를 소중히 여긴다. 사람들을 가벼이 대하지 않고 존중한다. 자신의 삶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것을 경외감을 지니고 경험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엄성을 돈 몇 푼에 팔아넘기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소유를 기꺼이 그리고 지혜롭게 나눌 줄 알며 공동체적인 삶을 소중히 여긴다. 맘몬주의의 설교가 날마다 울려퍼지는 세상에서 이교도의 길을 걷고자 하면 약간의 숙고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풍요롭게 아름다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큰 축복은 내 존재가 희미해지지 않고 보다 생생하게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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