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살리자①] 사라지는 꿀벌들..."양봉업 아예 접었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8-17 11: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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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발생한 '꿀벌 집단폐사 사태'
"이대로가면 양봉업 벼랑끝에 내몰릴 것"

올초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집단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양봉농가 피해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본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고, 꿀벌을 살리기 위한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산록서로 인근 양봉장에서 피해현황을 설명하는 양봉업자들 ©newstree 조인준 기자


"지금도 6개월 전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제주시 애월읍 산록서로 인근에서 벌을 치는 석진천 씨(59)는 날개가 뻣뻣하게 굳은 채 죽어있는 꿀벌들을 바라보며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300개의 벌통으로 양봉을 하던 석 씨는 올초 발생한 꿀벌 집단폐사로 80개의 벌통을 그대로 폐기처분했다. 농가 한편엔 버려진 벌통이 널부러져 있고, 그 주위에서 벌통으로 돌아가려고 버둥거리는 꿀벌이 개미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나마 600m 고지대에 있는 석 씨의 양봉장은 나은 편이다. 해변과 가까운 저지대인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인근의 한 양봉장은 이번 꿀벌들의 집단폐사로 벌통이 9할 이상 텅 비어 버렸다. 이 지역에서 35년동안 양봉업을 해온 이순철(62) 한국양봉협회 제주특별자치도 지회장은 "300개 벌통 중 10개밖에 남지 않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꿀벌이 폐사하면서 양봉업을 포기한 농가도 속출했다. 경상남도 하동에서 몇 해전부터 양봉업을 시작했다는 왕규식(58)씨는 이번에 꿀벌이 집단폐사되면서 아예 양봉업을 접었다. 그는 "지인의 권유로 양봉을 몇해전부터 소규모로 시작했는데 이번에 몽땅 죽어버려서 양봉을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강원도 양구군의 양봉업자 이영기(69) 씨도 "한때 300통 이상 길렀는데 지금은 20통도 안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꽃에서 나는 꿀도 줄고 꿀벌도 줄어드는 현상을 보고 50년 이어오던 양봉업을 접었다"면서 "이제 꿀벌없이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홀씨식물인 파프리카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파프리카 농장을 나선 이 씨의 시선이 머문 곳은 두렁길 반대편 창고였다. 검은 차양막 아래 하얗게 빈 벌통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 씨는 "빈 벌통들을 하나씩 내다버리고 있는데 아직 180통이나 그대로 쌓여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빈 벌통 더미를 두고 생각에 잠긴 강원도 양구군 양봉업자 이영기 씨  ©newstree 조인준 기자



◇ '집단폐사' 해마다 반복될까 걱정



국내 양봉농가들은 지난 2021년 10월~2022년 3월 사이에 발생한 꿀벌 집단폐사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에서 강원까지 전국적으로 고루 발생하면서 피해지역은 역대급으로 넓었다. 농민들은 아직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양봉농가들을 감안하면 그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전망했다.

농촌진흥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 지방자치단체, 한국양봉협회가 전국 전국 9개 도와 34개 시·군에서 실시한 합동조사에 따르면 총 41만6409개의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벌통 1개당 약 2만5000마리의 꿀벌이 산다고 볼 때 약 100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이다. 이는 전국적으로 국내 벌통수의 17~25%에 해당하는 규모다.

워낙 피해가 크다보니 양봉농가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년같았으면 벌들이 월동을 준비하는 처서까지 여름철은 한숨을 돌리는 시기인데 벌써부터 겨울 걱정이 앞선다. 이유는 해마다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석진천 씨는 "통상 2월 4일 즈음해서 벌통을 따뜻한 곳으로 옮겨 벌들을 깨웠지만, 이제는 1월 15일만 돼도 꿀벌들이 알아서 겨울잠에서 깨고 있다"면서 "언제 꿀벌응애를 방제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주시 애월읍 산록서로 부근 양봉장을 운영하는 석진천 씨는 "벌통 80개를 폐기처분했다"고 밝혔다. ©newstree 조인준 기자


사실 꿀벌 집단폐사의 전조는 2021년부터 시작됐다. 한반도의 최남단인 제주도는 지난해 벌꿀 수확량이 예년의 반토막이 나면서 양봉농가의 소득은 40% 급감했다. 당시는 지역적 특이사항으로 묻히면서 큰 이슈가 되지 않은 탓에 그 피해는 올해까지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석진천 씨는 "2021년 피해를 당하고 나서 벌통을 스티로폼 재질로 바꿨다"면서 "스티로폼 벌통은 나무에 비해 내부온도가 2℃ 정도 높기 때문에 그나마 올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꿀벌은 날씨가 추워지면 날개짓으로 벌통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한다. 벌통의 온도가 높으면 날개짓을 그만큼 하지 않아도 되니 꿀벌의 피로도가 낮아지고 면역력은 높아지는 것이다.


◇ 기후변화로 생태계 변화···꿀벌에겐 치명타



양봉업을 오랫동안 해왔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태의 원인은 '기후변화'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상고온으로 꿀벌들이 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꿀벌응애와 같은 기생충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현상은 이미 수년전부터 서서히 발생하고 있었는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았다.

석진천 씨는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여왕벌이 예년보다 일찍 산란을 시작해 늦게까지 계속했고, 애벌레(봉아)가 만든 고치 속에 숨어사는 기생충인 '꿀벌응애'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며 "꿀벌응애는 꿀벌들의 체액을 빨아먹으면서 날개를 마비시키는 독을 뿜고,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이순철 한국양봉협회 제주특별자치도 지회장도 "기후변화로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채밀량이 줄었다"면서 "이에 꿀벌의 군세가 약해졌고, 부족한 꿀을 충당하러 육지의 아까시나무를 찾아 이동양봉을 하다보니 내륙지역의 꿀벌응애까지 옮겨와 피해가 겹친 탓"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지회장은 "면역증강제와 화분떡, 설탕사료 등을 지원받는 꿀벌들은 이번 겨울에 살아남았다"면서 "이제 꿀벌은 인위적 도움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됐다는 의미"라고 우려했다.

▲이순철 한국양봉협회 제주특별자치도 지회장은 "300개 벌통 중 10개밖에 남지 않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newstree 조인준 기자


이 지회장은 이어 "특히 연초 동백꽃 개화를 시작으로 8월까지 메밀꽃이 핀 뒤 9월부터 야생화만 남게 되면 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기 때문에 설탕사료가 꼭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1포당 1만3000원이던 설탕이 올해 1만6900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비용이 계속 올라가면 양봉장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양구군의 이영기 씨도 꿀벌 집단폐사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인한 밀원식물 감소라고 단언했다. 그는 "양봉농가의 70%가 의존하는 대표 밀원식물 아까시나무는 '질소 고정 박테리아'가 있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면서 "하지만 이렇게 강한 아까시나무조차 기후변화로 대지 온도에 비해 대기 온도가 빠르게 오르면서 생리장애가 왔고, 결국 생식보다 생존을 택하면서 더는 꽃꿀을 맺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꿀벌은 식물과 함께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에 있는 상징적인 동물"이라며 "이대로 가면 양봉산업은 물론이고 생태계 전반이 벼랑끝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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