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살리자②] 텅빈 벌통들...기후변화가 낳은 비극인가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8-22 11: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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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의 때이른 산란에 기생충 '응애' 기승
기온상승에 동면해야 할 꿀벌들 벌통밖으로

올초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집단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양봉농가 피해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본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고, 꿀벌을 살리기 위한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꿀벌 집단폐사로 버려진 벌집과 벌통들 ©newstree 조인준 기자

<이 기사는 [꿀벌을 살리자 1편: 사라지는 꿀벌들]에서 이어집니다>

올초 전국적으로 꿀벌이 집단폐사한 원인에 대해 역학조사를 진행했던 정부는 '복합적인 요인'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밝혔지만 수십년간 양봉업에 종사해왔던 사람들은 근본원인이 '기후변화'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갑자기 따뜻해진 겨울날씨에 여왕벌이 일찍 산란을 시작하면서 일벌들은 먹이를 찾아 벌통을 나와야 했고, 일찍 산란된 알은 기생충의 먹잇감이 되면서 많은 피해를 낳았다. 제대로 동면을 취하지 못한 꿀벌들은 일교차가 심한 날씨탓에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하면서 '집단실종' 사태에 이르렀다.

지역별로 나타난 피해현상은 달랐지만 양봉업자들은 이 모든 원인이 '기후변화'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미 수년전부터 이같은 이상현상은 서서히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 한꺼번에 피해가 터져나온 것뿐이다. 결국 올해 전국적으로 42만여개의 벌통이 텅 비었다. 약 100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이다.

강원도 양구군에서 50년간 양봉업에 종사하며 한국양봉협회 강원지회장을 지낸 이영기 씨는 올해 꿀벌 집단폐사가 "기후변화로 인한 밀원식물 감소가 근본 원인"이라고 단언했다.


◇ 따뜻한 날씨에 여왕벌 이른 산란

꿀벌은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벌통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몸을 딱 붙이고 둥글게 봉구를 형성하며 벌통의 온도가 따뜻해지도록 날개짓을 한다. 이 시기는 여왕벌도 산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여왕벌이 일찍 산란을 시작했다. 날씨가 따뜻했기 때문이다. 알에서 태어난 애벌레(봉아)들을 키우려면 꿀과 꽃가루, 물이 필요하다. 애벌레가 태어나고 6일간 단백질이 풍부한 꽃가루를 먹어야 건강하게 자라난다. 이 역할은 고스란히 일벌들의 몫이다.

하지만 2020년과 2021년 저온·강풍·강우를 동반한 이상기후로 꿀 채취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꿀벌들은 체력이 떨어졌다. 천연꿀 대신 설탕사료를 먹고 자라 영양이 부실한 상태에서 이상기후까지 겹치다보니 극도의 스트레스가 누적됐다. 겨우내 다 자라지도 못한 일벌들이 따뜻해진 날씨에 계절을 착각해 꿀을 따러 나가기도 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양봉인들을 대상으로 양봉 기술지도 및 상담을 하는 박종규 한국양봉벌침교육중앙회 회장은 "2월초 영하의 기온에도 양지바른 곳에는 버들강아지가 피어있기 때문에 벌들이 꽃가루를 꼭 물어온다"면서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일찍 산란한 봉아를 키우려다보니 꿀벌들 피해가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찍 태어난 애벌레를 위해 성치못한 몸을 이끌고 추운 날씨에 꽃가루를 찾아 먼거리를 이동했다가 귀소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면서 "이런 꿀벌들이 많다보니 이번 월동기간 이후에 벌통이 텅텅 비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박종규 한국양봉벌침교육중앙회 회장은 "이번 겨울에는 일찍 산란한 봉아를 키우려다보니 꿀벌들 피해가 컸던 것같다"고 말했다. ©newstree 조인준 기자

◇ 기생충 '꿀벌응애'의 공격



여왕벌의 이른 산란은 꿀벌만 혹사시킨 게 아니다. 여왕벌이 산란하면 꿀벌의 기생충인 '꿀벌응애'는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애벌레가 고치가 될 때 기생충들은 그 속으로 숨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꿀벌응애의 독은 꿀벌의 날개를 마비시킨다. 꿀벌응애에 당한 꿀벌들은 꽃꿀을 따오거나 벌집 내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등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날개가 펴진 채로 죽는다. 보통 겨울에는 여왕벌이 산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응애가 창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올겨울은 이른 산란에 응애들도 기승을 부렸다.

▲꿀벌에 기생하는 '꿀벌응애'(오른쪽). 바닥에 보이는 갈색 반점(왼쪽)은 방제 후 죽어 떨어진 꿀벌응애들이다.

양봉업자들은 월동하는 꿀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벌통을 밀봉한뒤 관행적으로 방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번 겨울에 응애 피해를 키우고 말았다. 박종규 회장은 "오랫동안 양봉을 해온 베테랑들은 피해가 컸고, 메뉴얼대로 겨울에도 방제를 한 양봉 초보자들은 오히려 피해가 적었다"고 말했다.

기생충이 기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따뜻한 날씨 때문이었다. 박종규 회장은 "2021년 11월 평균기온이 12~13℃였고, 12월에도 0℃ 근처로 내려가는 날이 2~3일에 불과했다"면서 "통상 벌통과 외부온도의 차이는 7℃ 정도인데, 바깥 기온이 5℃면 벌통은 12℃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벌들이 월동을 멈추고 나오려고 한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꿀벌들은 면역증강제없이 버티지 못하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35년째 양봉을 하는 이순철 한국양봉협회 제주특별자치도 지회장은 "9월부터 야생화만 남게 되면 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기 때문에 설탕사료를 줘야 한다"면서 "면역증강제와 설탕사료 등을 주지 않으면 꿀벌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 줄어드는 꽃의 꿀···산불도 문제

기후변화로 밀원식물이 갈수록 감소하는 것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이영기 씨는 "2004년 충청도로 이동양봉을 갔을 때 아까시나무 꽃이 활짝 폈는데도 꿀벌이 굶어죽었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꽃에 맺힌 꿀이 팍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봉농가는 아까시나무 꽃에 70% 의존하고 있다. 이 나무는 뿌리에 '질소 고정 박테리아'가 있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다. 하지만 대지 온도에 비해 대기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강인한 아까시나무도 이를 견디지 못하고 생리장애를 겪고 있다. 생식과 생존 사이에 생존을 선택하다보니 꿀 분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결국 수십년간 영양부족과 스트레스를 겪던 꿀벌들이 올겨울 이상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군집붕괴로 이어졌다. 이영기 씨는 "앞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양봉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경고했다.

밀원식물 감소는 이동양봉을 부추겼다. 양봉업자들은 밀원식물이 많은 곳을 찾아 이동양봉을 하게 되고, 이동양봉은 꿀벌의 체력을 약화시켜 응애의 먹잇감이 돼 버리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박종규 회장은 "기후변화로 밀원식물이 감소하면서 이동양봉이 늘었다"면서 "그 결과는 진드기와 꿀벌응애 피해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까시나무가 개화하는 5~6월 안동과 칠곡, 울진 등 밀원이 풍부한 남쪽지역은 꿀을 따려는 양봉업자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게다가 11월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전국의 양봉업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질병과 기생충 확산의 온상으로 변한다.

그런데 대표적인 밀원식물인 아까시나무 면적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32만헥타르(㏊)에 달했던 이 면적은 2000년대들어 12만㏊로 줄었다. 개화기간도 30일에서 10~15일로 짧아졌다. 아까시나무를 비롯한 전체 밀원자원 면적은 1970~1980년대 47만8000㏊에서 2020년 14만6000㏊로 축소됐다. 반세기도 안돼 3분의 1로 감소한 것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빈도가 잦아진 산불도 아까시나무를 비롯한 밀원자원을 감소시켜 꿀벌의 생태를 위협하고 있다. 올해 3~4월 발생한 산불은 393건으로 지난해 같은기간 196건보다 2배나 많았다. 특히 올 3월에 발생한 산불은 아까시나무가 특히 많은 합천·고령·울진 등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기온상승으로 북반구 봄비가 갈수록 뜸해져 2021년 겨울강수량은 예년의 14.7%에 그치면서 나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산불을 더 키운 까닭이다.

▲제주시 인근에서 양봉업을 하는 한 양봉업자가 벌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newstree 조인준 기자


◇ 꿀벌 죽이는 외래종 '등검은말벌' 기승

꿀벌을 잡아먹는 '등검은말벌'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등검은말벌'은 주로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는 외래 침입종이다. 이 외래종은 한반도 기온이 상승하면서 국내에서 개체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등검은말벌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꿀벌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정철의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말벌의 세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장수말벌이 우세종이었는데 지금은 등검은말벌이 70%를 차지하면서 우세종이 돼 버렸다"면서 "벌의 생태계에서 등검은말벌이 포식자가 되다보니 양봉농가의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등검은말벌에 의한 양봉농가 피해규모는 연간 1700억원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정 교수는 "실제 피해규모는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등검은말벌은 닥치는대로 꿀벌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이로 인한 직접적 피해도 문제지만,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측면에서 경제적 피해로 추산할 수 없는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등검은말벌집(왼쪽)과 등검은말벌이 물어죽인 꿀벌들 ©newstree 조인준 기자

정 교수는 "꿀벌이 말벌에게 반격을 가할 때 말벌을 애워싸서 열을 내는 방식으로 대항한다"면서 "꿀벌이 생활하는 온도는 7~35℃인데 46℃까지 온도를 높여야 말벌을 죽일 수 있어 이 과정에서 꿀벌들이 열상을 많이 입는다"고 말했다. 꿀벌이 날개짓으로 높일 수 있는 온도의 한계점은 47℃이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아직 연구가 진행중이어서 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이번 꿀벌 집단폐사의 원인은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현상을 원인으로 봐야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겨우 느낄 정도의 온도변화가 꿀벌들에게는 치명적인 셈"이라고 밝혔다.

벌의 최상위 포식자 등검은말벌조차 기후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그는 "등검은말벌은 9월말쯤 나무꼭대기에 집을 짓는데, 지난해는 10월에 태풍이 닥치면서 이 집들이 다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그나마 올해는 이 말벌로 인한 꿀벌 피해가 적은 편"이라며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지면서 이로 인한 영향들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양봉농가의 피해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이들은 기후변화로 국내 양봉산업이 벼랑끝으로 내몰리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윤화현 한국양봉협회장은 지난 18일 천안에서 열린 '2022 한국양봉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여러 지역의 양봉지회장들에게 전화해보면 십중팔구 벌이 거의 다 무너져내리고 있다고 말했다"며 "한국양봉 위험한 기로 섰다. 정부 대책이 없으면 살 길이 없다"고 말했다. 

▲ "해마다 반복될까 걱정" 사라진 꿀벌…기후변화가 낳은 비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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