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에 필요비용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포함시켰다. 국제동향과 국내여건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환경부 입장표명에 환경단체들은 "국내 원전건설 명분 쌓기용"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20일 환경부는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기 위해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 △원전 신규건설 △원전 계속운전 등으로 구성된 'K-택소노미 원전 경제활동' 초안을 공개했다. 녹색분류체계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등 6대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는 지침서로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30일 69개 경제활동으로 구성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69개 경제활동 가운데 재생에너지 등 탄소중립 및 환경개선에 필수적인 64개 경제활동은 '녹색부문'에,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5개 경제활동은 '전환부문'에 각각 포함됐다. 원전의 경우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은 녹색부문에, '원전 신규건설 및 계속운전'은 전환부문에 포함됐다.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은 원전의 안전성 향상과 국가 원자력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장기적 연구·개발이 필요한 핵심기술을 포함한다. 소형모듈원자로(SMR), 차세대 원전, 핵융합과 같은 미래 원자력 기술은 물론,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사용, 방사성폐기물관리 등 안전성 향상을 위한 기술을 반영했다. '원전 신규건설'과 '원전 계속운전'은 환경피해 방지와 안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2045년까지 신규건설 허가 또는 계속운전 허가를 받은 설비를 대상으로 한다.
환경부는 "유럽연합은 원전이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력원이라는 측면을 반영하여 최근 '유럽연합 녹색분류체계(EU Taxonomy)'에 원전을 포함시켰다"면서 "최근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국내외에서 원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각국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졌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에너지전환포럼은 이날 논평을 통해 "원전 포함 조건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유럽연합의 그린 택소노미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국내 원전건설의 명분 쌓기용 지원제도로 전락시킬 것으로 보인다"며 "고준위방폐물 처리나 처분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 건설과 운영에만 관심을 둠으로써 미래세대에 필요 비용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일례로 유럽연합은 원전의 심각한 손상 및 대량의 방사성 물질 누출량을 최소화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2025년부터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2025년까지 새로이 건설허가를 받을만한 신규원전 사업이 없어 사실상 향후 모든 신규원전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적용해야 할 전망이다. 반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조항에는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을 2031년까지 유예하고 있어 정부가 추진중인 신규원전(신한울 3,4)과 수명연장을 추진중인 노후원전 10기가 별도의 안전조처없이 그대로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돼 버리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고준위방폐물 처분 부지 및 건설의 시점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제2차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법제화할 경우 이를 방폐물 처분의 세부계획으로 인정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37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기술할 뿐 언제 어떤 부지에서 추진할 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이는 2050년 전까지 고준위방폐물 처분부지를 확보하고 건설, 운영할 세부계획을 조건으로 제시한 유럽연합의 녹색분류체계와 대비된다. 에너지전환포럼은 "환경부는 자신들이 감당해야할 책임을 새로운 법률의 제정으로 떠넘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번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는 지속가능성 기여도와 무관한 원자력연구개발 사업 포함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럽연합의 경우 핵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기술에 국한해 원자력 연구개발사업을 지원한다는 규정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녹색금융의 지원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모든 원자력연구개발 사업 전체를 녹색금융으로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애초 녹색분류체계의 취지가 무색하게 또 다른 원자력 지원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린피스 장다울 전문위원은 "2030년까지 과감하고 조속한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지만, 원전은 이 조건을 절대 충족할 수 없다. 원전 건설에는 터무니없이 긴 시간(10~15년)과 값비싼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등을 계획한 것은 기후위기 대응보다는 원자력 산업계 먹거리 확보가 그 속내다. 결국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더욱 정체시킬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장 전문위원은 이어 정부가 '유럽연합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이 포함된 사실에 따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도 원전 포함에 대한 검토 필요성이 커졌다고 밝힌 데 대해 "유럽연합에서 보완 기후위임법안(Complementary Climate Delegated Act)을 통해 가스와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킨 것은 상급법인 기후위임법(Climate Delegated Act)의 '심각한 환경피해가 없을 것'(Do No Significant Harm·DNSH)이라는 원칙에 위배된 결정"이라며 "그린피스는 지난 9월 8일 EU 집행위원회에 가스와 원자력을 포함시킨 것을 재검토할 것을 요청했으며(Request for an Internal Review·RIR),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유럽사법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ECJ)에 이 문제를 정식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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