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독점이 위기 초래…전력거래소 독립 필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으로 에너지가격이 급등하면서 '만성적자' 한국전력의 올해 적자폭은 3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전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한편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경영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 소속 김정호, 박용진, 양이원영, 진선미, 진성준 의원 주최로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한 공정한 전력시장'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한전의 전력산업구조를 바꾸고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한전의 불합리한 지배구조도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는 화력발전 논란, 지배구조, 전력시장의 모순 등 한전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발제를 맡은 기후솔루션 최명균 연구원은 화력발전 중심 전력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한전은 세계 에너지 가격상승에 직격탄을 맞았다"며 "이로 인해 한전의 영업손실은 올해말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그는 "한전은 화력발전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면서 대표적으로 '총괄원가보상제도'를 사례로 들었다. 한전은 '총괄원가보상제도'를 통해 발전자회사들의 손실을 보상해주고 수익까지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에 발전자회사 입장에서는 화석연료를 퇴출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퇴출시켜야 할 화석연료를 우대해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화력발전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한전 전력산업의 지배구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최 연구원은 "화력발전 자산 비중이 높은 한전의 독점적 지위로 인해 에너지 안보위기가 일어나고 있다"며 "현재 6개의 한전발전자회사가 국내 소비전력의 약 70%를 생산하고 있고, 한전은 송배전망을 모두 보유함과 동시에 전력시장 내 유일한 판매사업자라는 엄청난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계통 운영을 담당하는 전력거래소 지배구조의 독립성이 필요하다고 최 연구원은 제시했다. 그는 "전력거래소 총회 의결권은 전력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동등하게 배분해야 한다"며 "또 전력시장과 계통 운영에 관한 주요 정책이 협의되는 전력거래소 산하 전력시장운영협의체의 회원대표 구성을 다각화시켜 모든 이해관계자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 애널리스트 크리스티나 응은 '한국 녹색채권과 K택소노미 그린워싱 문제'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전력산업 지배구조 내 화력발전 자산에 대한 이해상충이 사라지지 않으면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전력거래소 지배구조의 '독립성'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0%대 이상을 유지하는 한전의 석탄화력발전자산에 대한 투자 문제도 제기됐다. 그는 "10년 넘게 한전의 석탄화력발전자산에 대한 투자가 40%대 이상 유지되는 것은 한전의 탈석탄 공약과 정면 배치된다"면서 "친환경에 대한 설비투자는 겨우 5%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 애널리스트는 한전의 과도한 채권발행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한전은 정부가 구제금융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에 부채상환능력이 떨어짐에도 계속해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한전은 청정에너지 조달을 위한 '신규투자'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솔루션 김주진 대표는 '우리나라 전력시장 안팎에서 재생에너지는 공정한 취급을 받는가?'라는 주제발제에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은 한전 입장에서는 발전소를 몇개 끌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꺼리게 된다"며 "그래서 2020년 기준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12.5% 밖에 되지 않고 이마저도 거의 민간이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제주도의 사례를 들며 한전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그는 "제주도는 석탄발전소 1개반 정도(600MW)의 전력을 사용하는데 반해 900메가와트(MW)의 화력발전소와 800MW의 풍력·태양광 발전시설이 있다"면서 "재생에너지로 전기가 충분히 조달 가능함에도 재생에너지 출력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전이 화석발전소 용량을 늘려 자회사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제주도처럼 전국에서 기형적인 구조가 계속된다면 향후 기업들의 RE100 달성을 위한 재생에너지가 부족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현재 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소비량의 99%는 녹색프리미엄으로 조달되고 있다"며 "녹색프리미엄으로 들어오는 추가요금이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에 쓰이는지도 확인이 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녹색프리미엄은 기업이 기존에 내던 전기요금에 추가 요금을 내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간주해주는 제도다.
김 대표는 또 "현재 국내에서 기업들이 RE100을 인정받는 방법은 △녹색프리미엄(59곳) △REC구매(20곳) △제3자 PPA(0곳) △직접 PPA(1곳) 등 4개다"라면서 "하지만 제3자 PPA와 직접 PPA의 경우 한전이 부과하는 망이용료가 상당히 비싸서 활용이 안되고 그린워싱 논란이 있는 녹색프리미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지 않는다면 그린프리미엄과 같은 제도들은 향후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박사는 "한전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모두 갖추지 않은 기구"라며 "산업부, 기재부, 환경부 등 국가기관들이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한전의 기형적인 전력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한수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전은 천문학적인 빚을 내며 현재의 산업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며 "정부는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이지호 기획재정부 민생경제정책관은 "저희가 이런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향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한전을 둘러싼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은 "전력구조의 독립성을 마련하는 방안을 생각중"이라며 "하지만 구체적인 것은 향후에 더 논의할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 김문식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구조개선과장, 노종화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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