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 줘도 벌이 없다…"딸기·참외 수정 못할 판"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12-09 08:50:02
  • -
  • +
  • 인쇄
벌통값 2년만에 두배...농가부담 가중
"기후변화에 질병 취약…예방이 우선"


꿀벌 대여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하우스 농가의 농자재값 부담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성주군에서 딸기와 참외 농사를 짓는 박모 씨는 8일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작년 봄에만 해도 벌통 값이 13만원 선이었는데 내년에는 20만원을 훨씬 웃돌 것 같다"며 "가격도 가격인데 하우스에 넣을 수 있는 벌 자체가 없어서 참 걱정이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내 과채류 생산농가 10곳 중 7곳은 꿀벌을 활용해 꽃가루 매개를 한다.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겨울 꿀벌이 100억 마리 가량 집단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수박 하우스 하나당 5~6만원하던 벌통이 7~8만원으로 올랐고, 참외는 12~13만원에서 17~18만원으로 인상됐다.

문제는 이미 평균적으로 15~20% 오른 꿀벌 대여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예정이라는 점이다. 지난번 월동벌 폐사에 이어 이미 내년 봄 피해가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전조가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남양주시에서 150통 규모의 양봉장을 운영하는 한모 씨는 겨울을 나기 전인데도 벌써 벌통이 50개만 남았다. 한 씨는 "30년된 경력자가 350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경우도 보고, 주변 양봉농가에서도 100통, 200통이 예사로 사라지고 있다"며 우려했다.

대여할 수 있는 꿀벌이 있어도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남아있는 꿀벌의 건강마저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꿀벌들은 무사히 성충이 되더라도 수명이 짧거나 몸집이 왜소해지고 있다. 성치 못한 꿀벌은 식물의 씨방에 골고루 꽃가루를 묻히지 못해 착과율이 떨어지고, 기형과가 생겨날 확률이 높아진다. 농가 입장에서는 생산성과 품질이 떨어지게 되면서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성주군의 박 씨는 "딸기 수정은 어떻게든 끝냈지만, 이제 참외 하우스에 꿀벌을 넣어야 하는데 건강한 꿀벌이 없다"며 "40동(1동=150평) 중 20동만 꿀벌을 동원하고, 나머지 20동은 직접 분무기를 뿌려서 해결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대로 가면 내년에도 꿀벌 대여가격이 안 오른다는 보장이 없는데, 인건비까지 추가될 생각을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기후위기로 지목하며 그에 따른 꿀벌 강화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종규 한국양봉벌침교육중앙회 회장은 "동해안에 쏟아지던 오징어들이 사라지고, 대신 복어나 고등어가 나타나는 것처럼 기후위기로 양봉농가 주변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며 "바뀌지 않은 것은 사람 뿐"이라고 짚었다.

기후위기로 꿀벌의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병해충이 창궐하기 좋은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30~40년간 경기도·강원도 지역의 양봉인들은 여왕벌이 겨울 없이 계속 산란을 하도록 해서 꿀벌 수를 늘리기 위해 따뜻한 해남·고흥·남해로 내려갔지만, 기생충인 꿀벌 응애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추운 곳으로 가서 병해충을 털어내야 월동을 더 잘 할 수 있고, 이듬해에 봄벌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꿀벌에게 설탕물 사료 외에 천연꿀을 남겨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꽃의 꿀에는 효소, 아미노산, 미네랄, 당분 등 총 35종의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다. 박 회장은 "사람이 먹는 채소도 기후위기로 인해 예전보다 영양소 함량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고, 꿀벌이 먹는 꽃꿀과 꽃가루도 마찬가지"라며 "특히 꿀벌은 위장이 없기 때문에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화분떡이나 면역증강제의 흡수율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했다.

꿀벌용 의약품 전문기업 바이오포스 표병수 이사는 앞으로 양봉정책이 질병 '예방'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꿀벌 유충의 크기가 작아지는 등 건강이 악화하면서 꿀벌들이 점차 질병에 취약해지고 있고, 강원도의 한 사례를 보면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해 꿀벌들을 괴롭히고 있다"면서 "위생 검사소에서 해당 균을 분석해보면, 부저도 아니고, 낭충봉아도 아니고, 노제마도 아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라며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새로운 질병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만큼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표 이사는 이어 "현재 양봉인들이 즐겨 구매하는 국내 방제약은 중국에서 생산하는 살충제 성분 그대로 완제품을 유통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고, 꿀벌용 항생제 역시 유럽이나 북미 등 지구촌에서 금지돼있는 경우가 많다"며 "친환경 방제약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꿀벌에 무리가 없도록 하는 연구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BP, 기후전환 실패에 '주주 반발'...주주 24.3%가 회장 연임 반대

BP의 친환경 전환 전략이 실패하면서 투자자들의 반발에 직면했다.가디언, CNBC 등 외신들은 17일(현지시간) 열린 BP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약 4분의 1

포스코 '그린워싱'으로 공정위 제재...허위·과장 광고

객관적인 근거없이 철강 자재를 '친환경 제품'이라고 홍보하는 등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 환경주의)'을 한 포스코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동물성 식재료 쏙 뺐더니...탄소배출 확 줄어든 '지속가능한 한끼'

지속가능한 식단을 직접 먹어보면서 알아보는 특별한 토크콘서트가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열렸다. 기후솔루션 주최로 16일 오후

가나초콜릿에 '지속가능한 카카오' 사용한다

가나초콜릿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재배된 카카오가 사용된다.롯데웰푸드는 대표 제품인 가나초콜릿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재배된 가나산 카카오

셀트리온, 글로벌 ESG평가 생명공학 부문 상위 5%에 선정

셀트리온은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S&P글로벌이 주관하는 '기업지속가능성평가'(Corporate Sustainability Assessment, 이하 CSA) 생명공학 부문에서 국내 바이오

[최남수의 ESG풍향계] 논란의 DEI '한국은 낙제점'

최근 ESG 이슈 중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다. 직장에서 성별, 인종 등 기준에 따른 차별을 없애자는 내용

기후/환경

+

한여름엔 어쩌라고?...4월 중순인데 벌써 49℃ '살인폭염'

몬순 우기를 앞둔 인도와 파키스탄이 벌써부터 살인폭염에 시달리고 있다.보통 5~6월에 폭염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인데 이 지역은 4월에 벌써부터 연일

전세계 농경지 15% '중금속 범벅'...14억명이 위험지역 거주

전세계 농경지의 약 15%가 중금속에 오염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금속 위험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14억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다.17일(현지

[영상] 홍수로 물바다 됐는데...'나홀로' 멀쩡한 집

미국의 한 마을 전체가 홍수로 물에 잠겼는데 나홀로 멀쩡한 집 한채가 화제다. 이 집은 마치 호수에 떠있는 듯했다.미국 남부와 중서부 지역에 지난 2

끝없이 떠밀려오는 '미역 더미'...제주 해수욕장 '날벼락'

제주시 유명 해수욕장인 이호해수욕장이 미역 쓰나미가 덮쳤다.최근 이호해수욕장 해변으로 엄청난 양의 미역더미가 떠밀려오면서 이를 치우는데 고

콜드플레이, 내한공연서 '생수병 반입금지'..."당황했지만 오히려 좋아"

8년만에 국내에서 열린 영국 4인조 록밴드 콜드플레이 내한공연에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 반입이 금지돼 화제다. 콜드플레이는 지난 16일부터 오는 25

산림청, 경북 산불피해 4.5만여ha라더니...9만ha 넘게 '잿더미'

의성에서 시작돼 인근 지역까지 번진 경북 산불로 인한 산림 피해가 9만헥타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당초 산림청이 추산한 피해규모의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