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가 자본시장 뇌관 될 수도"
유럽발 에너지 대란으로 또 다시 불거진 한국전력공사 적자 문제가 개별 기업의 부차적인 문제가 아닌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어 대책 마련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최한수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27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열린 '에너지 시장 정상화를 위한 긴급 토론회'에서 "한전채 문제는 자본시장의 블랙홀이 될 공산이 크다"며 "언제나 그렇듯 정공법은 인기가 없지만, 결국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2022년 한전의 영업적자는 3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2021년 한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기준 한전의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액은 45조9000억원이다. 올해 적자가 반영되면 한전 자본금과 적립금은 순식간에 12조원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적자가 계속되면 조만간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에 한전은 지난 11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액의 2배로 제한된 한전채 발행 한도를 5배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개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줘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전 회사채 발행은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며,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 교수도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달리 '공마불사' 믿음이 존재한다"면서 "부실의 크기가 얼마인지간에 정부가 메워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적자 규모가 큰 한전의 회사채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마불사'의 믿음으로 한전은 낮은 이자비용으로 특수채를 발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채권 발행으로 1억원 조달한다고 쳤을 때 민간기업보다 150만원 정도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담은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되고, 심하면 자본시장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금리 특수채를 과도하게 발행하면 투자자들의 쏠림현상이 발생하고, 재무적 곤경상태에 있는 한계기업들은 파산하게 된다. 이에 따라 시장 불안이 고조되면서 다시 특수채 쏠림현상으로 이어지고, 재차 한계기업들을 솎아내면서 시장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전이 경영부실에 빠진 근본원인은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전기요금에 대한 권한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물가관리 관점에서만 전기요금을 다루다보니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는 시장논리를 무시한 결과라는 얘기다.
이어 최 교수는 "결국 용산 대통령실이 풀어야 할 문제"라며 "전기료 인상 로드맵을 밝히고 국민에게 고통 감내가 불가피하다는 설명과 함께 에너지를 아끼자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값싼 전기에 익숙해진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고, 이는 결국 정치권의 숙제"라고 덧붙였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전기요금뿐만 아니라 가스요금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정할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에 맞게 원가와 수요를 관리했더라면 한전의 적자폭이 단기간에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전이 가스공사 비용을 부담하면서 결국 적자폭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또 석 전문위원은 "공기업이 전기와 도시가스를 독점운영하는 방식에서는 에너지 요금을 정상화할 수 없다"며 "장기적으로 송배전을 제외한 한전과 가스공사의 판매시장을 개방하고 단기적으로는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망에 민간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전제 하에 한전채나 가스공사채 발행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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