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급진 거북이' 절망을 떨쳐내는 나침반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5-01-20 10: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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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 거북이>, 윤정구 교수가 책 제목으로 삼은 은유가 참 신선하다. 이 은유의 생경하고도 역설적인 울림이 내 마음과 감각을 고요히 뒤흔든다. 느리고 둔하기 짝이 없는 거북이가 급진적이라니! '닌자 거북이'와 같은 식의 튀는 제목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려는 출판전략으로 만든 말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거북이의 느림의 미학을 깊이 다루고 있다. 거북이의 스타일과 행보 속에 내재된 급진성을 탐구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의 심층적 표상과 전략을 제시한 책, 이것이 '급진 거북이'다.

◇ 급진 거북이의 급진성

급진 거북은 어떤 사람일까? 저자는 '급진적 거북이'와 '급진적 급진주의자'를 대조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세상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리더들은 안타깝게도 '급진적 급진성'을 보였다. 급진적 급진주의자들도 급진 거북이와 같이 도달해야 할 미래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는 급진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에 도달하는 방법에서는 급진적 거북이와 다른 급진성을 보인 사람들이다."

여기서 '급진적'이라는 어휘는 정치적이라기보다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급진성은 기존 체제나 질서 또는 관행을 완전히 뒤엎거나 급격히 변화시키려는 태도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의미하는 '급진'은 이와 사뭇 다르다. 근원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거북이의 속도와 꾸준함을 지닌 급진성이다. 영어 'Radical'에는 '근원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회복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근원적 변혁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도 느리게 그리고 전략적인 지속성을 견지한다는 면에서 급진적 거북이는 질주하는 치타나 돌진하는 들소 떼와 다르다. 포식자가 아니라 변혁자이고, 맹목적이지 않고 지혜롭다.

저자는 급진적 변화를 점진적 변화와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가속화되고 예측불가능한 환경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변화가 근원적 변화(deep change)다. 점진적 변화는 변화가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지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변화라면 근원적 변화는 …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따라서 '느린 거북'은 깊은 변화와 이를 위한 꾸준함과 지속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이는 가시적 이익과 속도 및 '효율성'에 치우친 현대적 가치에 도전한다는 면에서 가치 전도(顚倒)적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급진은 단순히 빠르고 극단적인 변화가 아니라, 깊고 체계적인 전환을 지향한다. 아울러 표피적 혁신이 아니라 뿌리(radix)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 방식으로 움직인다.

◇ 진성 리더십의 전략 '거북이 모델'

윤정구 교수는 한국사회에 '진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을 소개하고 전파하는 예언자이자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학자다. 그가 쓴 <진성리더십 ; 21세기 한국 리더십의 새로운 표준>은 한국형 진성리더십론의 바이블처럼 읽히고 있다. 알다시피 경영학 및 리더십이론에서 진성리더십이 등장한 것은 20년 전의 일이다. 그간의 리더십 이론들이 카리스마, 변화, 의사소통, 전략, 관계, 조직개발, 효율성, 팀 빌딩, 서번트 리더십 등등 온갖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면서 발전했지만 결국은 성공지향성과 수익 중심의 시장주의의 도구가 되어버린 점을 통렬하게 반성하며 시작된 새로운 리더십 흐름이다.

진성리더십은 잃어버렸던 리더십의 본질을 복원하여 선한 영향력을 통해 정당한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조직 본래의 가치와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리더십이다. 그 정신은 기존의 구차하고 파렴치한 자본주의 방식을 택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경영과 리더십 실행을 통해 조직경영과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리더의 방황을 끝내고 정직하고 진정성 있는 리더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건강한 기업 윤리나 경영 철학이 빈곤하여 직원과 노동자를 도구화하고 거짓과 갈취 및 투기적 이익 추구로 길을 잃은 버린 우리 사회에 생수와 나침반 같은 담론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기본 메시지는 거북의 느림은 단순한 느림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으로 궁극적인 변화를 달성하는 전략적 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2부와 3부에서 급진 거북이의 미시전략과 거시전략을 상세하게 다룬다. 그런 면에서 <급진 거북이>는 진정 리더십의 각론서이며 그 실천 전략과 지침을 담은 교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미시전략들은 '조용한 반역, 지렛대 전략, 뒤집기 전략, 스파링 파트너 전략' 등이다. 저자는 이러한 미시적 전략 감각들을 지닐 때 조직의 관성이나 권력에 의해 제거당하지 않고 생존해낼 뿐 아니라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아울러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많은 사례를 제시한다. 거북이의 거시전략들은 '선승구전 전략, 베이스캠프 전략, 비밀결사대 전략, 동적 역량 전략'이다. 이들은 근원적 변화와 혁신을 마침내 이루어내기 위한 지혜와 기술들이다. 히말라야 등반, 파레토의 법칙, 그람시의 진지전 이론, 여러 리더들과 기업들의 생생한 사례 등을 통해 독자들을 지혜로운 전략가가 되도록 돕는다. 요체는 전략을 짜는 것이 아니라 전략가가 되는 데 있지 않은가!

진성 리더는 사이비 리더의 넓은 길을 벗어나 좁은 길을 간다. 화려한 연기나 구호로 구성원들을 조종하고 동원하려는 거짓을 내던지고 진정성 있는 삶의 목적과 조직 경영을 추구한다. 이러한 길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적어보이지만 담쟁이 넝쿨이 벽을 넘듯, 거북이가 결국은 고지에 오르듯 마침내 진정한 리더의 여정을 완성해내고 만다.

급진 거북이는 전략적이고 지혜롭다. 급진 거북이의 길은 비즈니스를 하는 경영자들만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새롭게 하고, 자신의 공동체와 활동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모든 이가 진성 변화의 에이전트가 되어야 한다. 조직 및 회사의 임원 및 구성원, 공익 활동가, 정치인, 개인사업자, 지식인, 노동자와 농민, 예술가, 기술자 등 모든 이들이 그 주체가 될 수 있다.

◇ 느리고 고요하게 그러나 근원적으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진성리더가 마음씨만 착해서 개인적 이득만 추구하는 야수적 인간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통념을 마구 깨뜨린다. 아울러 급진거북이가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개량주의자나 체제 보호를 고수하는 순응적인 리더가 결코 아님을 힘주어 강조한다. 진성 리더는 급진적일 뿐 아니라 고도의 전략적 감각을 지닌 전략가라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가 교훈하듯이 눈에 띄는 질주보다 고요하고 지속적인 나아감이 최후의 승부를 가른다. 윤정구 교수가 말하는 리더십은 진성 리더십일 뿐 아니라 느림의 미학과 근원적 변혁이라는 가치를 고집하는 느린 리더십slow leadership이다. 이는 조셉 바다라코(Joseph L. Badaracco)의 '고요하게 이끌기'Leading Quietly와 카를 위크(Karl Weick)의 '작은 승리들'Small Wins에서 강조하는 바들과 잘 조응된다. 이들 아이디어는 강력한 영도력으로 선명한 비전과 과제를 추동하여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전통적 지도자상을 일거에 뒤집는다. 느리고 조용한 방식으로 조직과 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미쳐 단기적이고 급속한 혁신보다는 근원적인 변화를 이루는 상생의 길을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리더십 책을 좀처럼 집어들지 않고, 혹 읽게 되어도 끝까지 읽지 않던 내가 단숨에 이 책을 정독 완독했다. 가치의 빈곤, 지나친 과장과 논리적 비약, 속 보이는 상업성과 뻔뻔한 자기 미화로 채색된 항간의 리더십론이나 처세술 및 경영서들과는 차원이 전혀 달랐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단지 학자가 아니라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구도자이자 자기 성찰적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아울러 저자 '스스로 급진 거북이의 길을 걷고 있구나' 하고 직감했다. 변화와 생성의 철학을 역설한 니체, 베르그송, 헤라클레이토스 등의 금언을 인용하고 있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고 '환대'를 제목으로 한 책이 있다는 점도 특이했다.

하나의 은유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관통할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급진 거북이'는 가치있는 삶을 향한 몸부림과 인문학적 사색이 담긴 혁신적 작품이다. 급진 거북이는 딱딱한 등껍질로 무장하고 느린 걸음으로 끝까지 완주하는 놀라운 내공이 있다. 아울러 비둘기 같은 순수함과 여우같은 지혜와 사자 같은 강렬함도 지니고 있다. 늑대 무리와 맹수들이 판을 치고 모두가 양떼처럼 웅크리고 모여 살아가는 초원에서 우리는 급진 거북이에게 배워야 한다.

초원과 숲을 변화시키는 힘은 야수들의 이빨과 발톱이 아니라 거북이의 급진적 느림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가치 나침반을 진북(true north)을 향하게 하고, 절망을 떨치고 삶에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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