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로 인한 홍수, 수질 오염 등 '물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이 22조원에 달하는 재무피해를 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21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공개한 '2024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 응답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3개 기업 중 65%가 물 리스크로 인해 사업전략과 재무계획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들이 직면한 잠재적 단기 재무영향은 21조959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물 리스크는 물 부족, 수질 오염, 홍수 및 가뭄 등으로 인해 기업의 운영과 재무 안정성이 위협받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세계 물경제위원회(GCEW)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물 수요가 공급을 40% 초과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2050년에는 이로 인해 세계 GDP가 8%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산업군별로 보면, 특히 물 의존도가 높은 전력, 수도 등 유틸리티 산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냉각수 부족이나 공업용수 공급 불안정 등으로 전력생산 차질이 발생하면 운영비용 증가, 벌금 및 정화 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또 반도체 생산과 데이터센터 냉각 등에 대량의 물을 소비하는 IT산업도 물 리스크에 취약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산업 확대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필요한 물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물 스트레스 지역에서 취수하는 비율도 위험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 스트레스란 특정 지역에서 물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태로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국내 산업별 물 스트레스 노출도는 통신 87.5%, 산업재 70.3%, IT 69.8%, 에너지·유틸리티 53.7%로 높은 수준이다.

KoSIF는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대응 수준은 기대에 못미친다고 지적했다. 물 리스크에 노출된 기업 운영시설 수는 241곳으로 전년대비 32% 증가했지만, 대응 비용은 오히려 11% 줄어든 2조8666억원에 그쳤다.
남나현 KoSIF 선임연구원은 "기업들이 물 리스크를 단기 비용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물 정보 공개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CDP에 따르면 2024년에 투자자들이 물 관련 데이터를 요청한 기업은 1029개로 전년 대비 122% 증가했다. 물 리스크 관리가 단순한 친환경 경영 요구가 아닌 '투자 판단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은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한 물보다 많은 물을 정화해 자연에 환원하는 '워터 포지티브' 전략을 시행하는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물 사용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 물 사용 정보 공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남 연구원은 "정부도 기업 차원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마련과 인프라 개선, 물 사용 정보 공개 의무화 등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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