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3억5000만톤 넘게 버려지는 플라스틱병으로 해열진통제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생수병이나 포장재로 쓰인 폐플라스틱이 고온과 고압없이 대장균 발효만으로 타이레놀 성분으로 바뀌는 기술이 개발됐다.
영국 에든버러대 연구진은 음료병으로 흔히 사용되는 페트(PET)에서 얻은 테레프탈산(TPA)을 유전자 조작 대장균으로 발효해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핵심은 세균 내부에서 자연에는 없는 화학반응 '로센 재배열(Lossen rearrangement)'을 실현한 점이다. 기존에는 유기합성 실험실에서만 가능한 반응이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인산염이 촉매 역할을 해 박테리아 안에서도 반응이 일어났다.
연구팀은 페트병에서 테레프탈산을 추출하고, 이를 특수한 하이드록사메이트 화합물로 전환했다. 이 기질은 대장균 세포 내에서 파라아미노벤조산(PABA)으로 바뀌고, 여기에 추가적인 대사 과정을 통해 24시간 이내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완성된다.
이 전환 반응은 실온에서 진행됐고, 고비용 장비나 고온 공정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 과정을 "사실상 탄소배출이 없는 생물 기반 업사이클링"이라고 표현했다. 수율은 92%에 달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버려지는 플라스틱병이 약 공장의 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아세트아미노펜은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해열·진통제 성분으로, 연간 수요가 수십억정에 이른다. 연구진은 "페트병이 단지 재활용이 아니라 치료제로도 탈바꿈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싱가포르국립대 매튜 욱 장 교수는 "합성화학과 생물공학은 원래 분리된 영역이었지만, 이번 연구는 그 경계를 무너뜨렸다"며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유용한 화합물로 바꾸는 시대가 왔다"고 평가했다.
향후 과제는 공정 최적화와 산업적 규모 확장이다. 연구진은 "생분해 효소와의 결합, 페트 자동분해 기술과의 연계 등을 통해 실제 공장 적용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술이 상용화가 된다면, 버려지는 플라스틱 병으로 감기약을 만든다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에 6월 23일자 온라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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