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혁과 제도개선 통해 인프라 갖춰야
'기본소득'을 놓고 찬반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서 기본소득 재원마련과 제도개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주관으로 23일 열린 '2022년 사회대전환을 위한 충분한 기본소득 실현 국회 토론회'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앨 수 없는 이유와 기본소득이 공상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가 되기 위한 세제개혁의 필요성 등이 제기됐다.
경기연구원, 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 기본소득당,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단법인 기본소득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 토론회에서 용혜인 의원은 축사를 통해 "기후변화와 기술혁명 그리고 팬데믹의 충격에 따른 불평등과 불안정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며 "책임있는 정치세력이라면 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과감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시간30분 가까이 이어진 토론회에서 2023년부터 국민 1인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2033년에 기본소득 지급액을 월 91만원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30만원은 한국 국내총생산(GDP)과 재정적 실현가능성을 고려해 임의로 정한 선이고, 91만원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빈곤선'인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한다. 또 전국민 5182만명에게 매월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세제개혁이 이뤄져야 하는지, 개선해야 할 제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짚었다.
◇ 기본소득 재원마련 어떻게?
발제를 맡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안효상 상임이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월 30만원 기본소득 필요 재원은 186조6000억원, 확보가능 재원은 192조8000억원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토지보유세(28.9조원) △시민소득세(79.5조원) △세제개혁안(46.8조원) △탄소세(27.6조원) △복지지출조정(10조원)이다.
토지보유세는 공유부 원칙에 기초해 민간보유 토지에 대해 0.5% 비례세율로 부과하고,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눈다. 이로 인해 토지가격이 하향안정화되고 무주택자는 주택보조금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순수혜 가구 비율은 85%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소득세는 모든 소득활동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지식이 활용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가계에 귀속되는 모든 소득에 5% 비례세율로 부과한다. 허버트 사이먼은 소득활동에 대한 인류 공유부 지식의 기여분이 90%라고 주장했다. 아이작 뉴턴은 "내가 멀리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고 말한 바 있다. 시민소득세율은 최종적으로 10%까지 늘릴 방침이다.
세제개혁안은 누진성·체계성·중립성·단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각종 공제개념을 일정하게 정비하는 안이다. 일례로 1999년 도입된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경우 신용카드 사용액이 팽창해 독려할 필요가 없고, 고소득자일수록 더 많은 소득공제를 받게 되어 세부담이 역진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세의 경우 이산화탄소 1톤당 3만8000원으로 시작한다. 탄소세는 기후변화를 야기한 생산·소비 방식에서 가장 많이 혜택을 본 대기업에 대한 징벌적 조세다. 따라서 탄소세가 기업의 에너지전환기금으로 쓰이는 건 정의롭지 못하고, 물가상승으로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기 때문에 탄소세로 거둬들인 세수를 기본소득으로 배당한다.
이외에도 기업보조금과 연구개발(R&D) 일부로 기업지분을 받아 국부펀드로 운용하는 안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례로 알래스카 영구기금,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이 있다. 공적인 세금으로 진행된 연구로 발생한 수익을 사적으로 누리거나 사적으로 손실을 본 것을 공적으로 메우는 일이 없도록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 가난을 스스로 증명하는 제도 '개선필요'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서정희 교수는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짚었다. 하나는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스스로 얼마나 가난한지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균일노동과 완전고용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표준적인 고용관계가 성립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 노동시장은 시간제, 기간제, 하청, 도급, 용역, 파견, 호출 등으로 비정규 근로가 생겨났다. 이에 더해 플랫폼 기업처럼 인간의 노동력에 기반한 부가 아닌 또다른 부의 축적 방식이 등장하면서 노동의 질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생겨나면서 복지 사각지대가 속출했다. 또 수급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부양의무자, 통장조사 등 '자격있는 빈자'가 되기 위한 증명을 해야 했다. 이같은 자산조사 수반제도는 86개에 달하고, 그에 따른 인권침해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다.
생계급여도 월 55만원 수준으로 빈곤선(월 91만원)을 한참 밑돈다. 다만 생계급여에 기본소득 월 30만원을 얹는다면 85만원으로 빈곤선에 근접하게 된다. 서정희 교수는 생계급여를 자산조사나 근로조사 없이 노동관련 소득이 있는 경우 받을 수 있는 '소득보험'으로 전환하고, 점진적으로 기본소득을 늘려나가면서 생계급여를 줄이는 '슬라이딩 방식'을 제시했다.
또 소득만 이야기하고 서비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양질의 공공 사회서비스가 확대되어야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서정희 교수는 주거, 의료, 돌봄, 교육 등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종사자의 급여와 관련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출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는 과세, 일부는 비과세인 사회보장제도 모두를 과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자산보유 세제 강화해 신계급사회 대응해야"
토론자로 나선 김세준 기본소득국민운동부 상임대표는 "사회 인프라를 설치하려고 국가가 세금을 쓰듯이, 개인 인프라를 위해서도 세금을 써야 한다"면서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의 삶을 지켜주는 개인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 연구단장은 "10년 뒤라면 월 91만원 제안보다 월 100만원 제안이 낫겠다"라며 발제 취지에 공감했다. 하지만 2023년부터 월 30만원 기본소득 지급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단적으로 기존 소득세에 추가로 5%를 부과하는 시민소득세 합의가 쉽지 않다고 봤다. 그러면서 유 단장은 "공유지분 기금을 통한 재원마련은 차기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할 주제"라고 덧붙였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기본소득 재원조달 방식이 가진 정치적 의미를 강조했다. 재원조달 방식 자체가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조금씩 감소했지만 부동산을 축으로 자산불평등이 심해졌다"며 "자산계층 중심의 권력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이런 지형에서 토지과세를 통해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방향은 타당하다"라면서 "조건없는 기본소득과 보편적 사회서비스 확대, 자산보유 관련 세제를 강화해 '신계급사회' 형성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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