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원료 기준과 재활용 위한 분류체계 없어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구가 플라스틱으로 뒤덮이고 있다.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가장 멀리 떨어진 남극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섞인 눈이 내린다.
그렇다면 플라스틱 폐기물이 얼마나 많길래 지구가 온통 플라스틱 쓰레기장이 되고 있는 것일까? 매년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3억5000만톤에 이른다. 트럭 1000만대를 가득 채우고 남을 양이다. 폐기되는 플라스틱 가운데 달랑 9%만 재활용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소각하는 과정에서 각종 유해물질이 배출돼 대기를 오염시킨다. 매립하면 토양은 미세플라스틱 조각으로 오염된다. 길거리에 함부러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태평양 한가운데 한반도의 크기의 7배에 이르는 쓰레기섬이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은 미세한 조각으로 풍화되면서 바닷물뿐만 아니라 모든 해양생물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대로면 2060년 플라스틱 폐기물은 현재보다 3배 늘어나, 인류는 더이상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인류는 이미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대기와 토양 그리고 바다로 인해 역습을 당하고 있다. 인간의 생식기와 혈액 심지어 태아에게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된 농작물과 수산물 등을 인간이 섭취하면서 체내에 축적되는 것이다.
◇ 플라스틱 국제규제 '초읽기'···韓경제 '직격타'
이에 국제사회는 더 늦기전에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키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전세계 175개국이 모여 추진중인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예정대로 2024년 확정되면 사상 처음으로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규제가 마련된다. 이 국제규약을 놓고 각국은 대립각을 세웠지만 큰틀에서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부터 규제를 시작할 것인지, 생산량 감축에 대한 로드맵 그리고 재활용 방안 등 세부내용은 오는 11월 케냐에서 열리는 회의를 통해 초안에 담길 예정이다.
이변이 없는 이상, 플라스틱에 대한 국제규제는 마련될 것이기 때문에 이미 국가별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들이 수립되고 있다.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는 2024년부터 일회용 비닐봉투의 수입·생산·유통을 금지하고, 2026년에는 플라스틱 컵·접시·식기류를 금지한다는 계획이다. 케냐는 비닐봉투 사용 적발시 3만8000달러(약 4900만원)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 개발도 활발하다. 각국 정부는 바이오플라스틱 사업 육성을 위한 지원도 늘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역내 연구개발전략인 '호라이즌 유럽'을 통해 민관합작 투자를 바탕으로 '바이오기반 산업연합'을 설치했고, 미국 농무성은 '바이오프리퍼드'(Biopreferred) 프로그램을 실시해 바이오 기반 제품을 우선 구매, 라벨링을 통해 소비자 인식제고 및 구매 촉진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1년 12조원 규모였던 전세계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은 2027년 42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적인 탈플라스틱 움직임에 따라 미래먹거리 산업인 플라스틱 대체제 시장 선점을 위한 각축전이 한창인 가운데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에 비해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너무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제적인 플라스틱 생산감축 및 규제가 시행됐을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크다. 우리나라는 중국, 미국, 독일, 인도에 이어 '플라스틱 생산 5위국'으로, 전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2022년 수출실적을 보면 국내 중소기업 수출품목 1위는 6조6500억원을 기록한 플라스틱 제품이다.
◇ 탄소세와 재활용 비중 규제까지 이어져
게다가 플라스틱은 2026년 시행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포함될 가능성도 커졌다. 3년뒤 CBAM 규제 대상에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 제품이 추가될 경우 지난 2022년 우리나라 대(對)EU 수출의 20.1%를 차지한 국내 화학공업과 플라스틱, 고무관련 제품들은 해당 국가로 수출할 때 관세를 추가로 물어야 한다.
여기에 플라스틱 포장재에 대한 각국의 규제도 잇따르고 있다. 독일은 2022년부터 포장재의 재활용 의무화 비중을 63%로 상향조정했다. 영국은 재생 플라스틱 비중이 30% 미만인 포장재에 대해 1톤당 200파운드의 세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2022년 기준 롯데케미칼 재사용·재활용 소재 투입 비율은 0.21%, LG화학의 경우 1.68%에 그쳤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플라스틱 국제협약 협상동향 조사·연구' 보고서에서 "플라스틱 재활용의 가장 큰 문제는 재생원료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므로 대기업-중소기업 협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한해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인 1000만∼1100만톤 가운데 44%가량이 재활용되고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이는 재활용업체의 '수거율'에 불과하다. 실제로 기업이 이를 자원화하려 해도 분류체계와 유통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활용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플라스틱 재생원료 가운데 페트(PET) 재질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별도 수거를 하고 있고, 최근 투명 폐페트병을 물리적으로 재생한 원료를 식품용기 제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그러나 여전히 PP, PE 등 다른 플라스틱 재질에 대해서는 식품용기 재생원료 기준이 없다.
원료수급도 부족하고, 제도도 뒷받침되지 못하니, 업계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생겨난다. 한 식품업체는 재활용 PP 기술을 개발했지만, 식품이 실제 닿는 부분은 재활용 재질이 아닌 신재 플라스틱을 사용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업체들은 재생원료 수급이 일정하지 않아 재생원료 비중을 10%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연합(EU)의 순환경제 정책과 CBAM, 미국발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 공급망 탈탄소를 위해 폐자원 및 재생원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석유기반의 원료를 사용하는 플라스틱 업체들에는 위기이자 기회이지만, 정부가 늑장을 부리면 기업의 ESG경영과 글로벌 규제 대응을 저해할 수 있다"며 "재생원료의 종류와 품질 등을 구분할 수 있도록 가장 먼저 통계기반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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