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지구] 곧 닥치는 탄소장벽...'화학적 재활용' 능사인가?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3-10-16 11: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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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5편] 국내 기업 '화학적 재활용' 각축전
순환성 떨어지고 탄소집약적...수출경제 '빨간불'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탈(脫)플라스틱'과 '도시유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화학적 재활용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국제 흐름상 화학적 재활용은 실질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해 175개국이 머리를 맞댄 '국제 플라스틱 협약' 초안이 나오면서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제품에 재생원료 투입 비중을 의무화하는 등 탈플라스틱 추세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국내 석유화학업계도 앞다퉈 재활용 플라스틱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지난 3월 중국 그린소재 전문기업 '슈에'와 양수도 계약을 체결해 2024년까지 중국 산터우시에 연간 화학적 재활용 원료 10만톤과 화학적 재활용 코폴리에스터를 20만톤 생산하는 공장을 짓는다. SK지오센트릭은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울산 '재활용종합클러스터'(ARC, Advanced Recycling Cluster) 연 32만톤 규모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공장을 건설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울산2공장에 화학적 재활용 PET 11만톤 규모 생산설비를 2024년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LG화학은 내년말 완공해 2025년초 가동을 목표로 충남 당진에 2만톤 규모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추출 공장을 짓고 있다. 한화 글로벌그룹은 폐기물 전문처리 기업 동양환경과 충남 서산에 4만톤 규모 열분해유 생산플랜트의 기본설계를 2024년 10월까지 끝마칠 예정이다.

▲국내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공장 신축현황 ©newstree 


이처럼 국내 화학업계는 폐플라스틱을 종류별로 분류해 세척·분쇄한 뒤 다시쓰는 '물리적 재활용'이 아닌 '화학적 재활용'에 방점을 찍고 있다. 화학적 재활용은 용매·촉매·열 등을 이용한 화학공정을 통해 폐플라스틱을 원료 상태로 되돌리기 때문에 이물질이 묻어있어도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어 범용성이 높고, 경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화학적 재활용의 경우 '순환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는 재질은 페트(PET), 폴리아미드(PA), 폴리우레탄(PU) 정도다. 나머지 재질의 플라스틱 폐기물들은 전부 '열분해' '가스화' 등 200~1500℃ 고열을 가해 불순물은 전부 태워버리고, 석유를 대체할 연료 형태의 유분만 남기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폐기물 처리에 있어서만 범용성이 높을 뿐 열분해유의 용처는 제한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화학연구원 그린탄소연구센터의 조정모 책임연구원은 "재질이 무엇이고, 불순물이 얼마나 섞여있든 분해는 되기 때문에 기술을 굉장히 단순하게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다"면서 "다만 고정된 화학구조가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료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촉매를 통해 다시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고부가의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지난 1월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가 미 연방정부 의뢰로 진행한 연구에서 '열분해'와 '가스화'에 대해 플라스틱-플라스틱의 자원순환 구조가 아닌 플라스틱-연료로의 일방향성, 화학적 첨가제와 고열로 인한 환경영향이 크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재활용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폐PET를 재생원료로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의 경우에도 200℃ 근처의 고열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고, 불순물을 제거한 뒤 촉매를 넣고 다시 필요한 재료를 중합시키는 추가공정 그리고 이에 따른 부산물이 발생하면서 화학물질과 탄소배출에 따른 또다른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조만간 시행될 EU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까지 고려하면 화학적 재활용은 그다지 경제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 1일부터 CBAM 계도기간이 시작돼 철강·알루미늄·비료·시멘트·전력·수소 등 6개 업종의 탄소배출량 보고가 의무화된 가운데 플라스틱 업종의 추가 여부가 검토중이고, 2026년 CBAM의 본격 시행과 함께 플라스틱이 추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EU는 디지털제품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 도입을 계획중이다. 디자인 설계 단계에서 이미 제품의 환경영향이 80% 결정되기 때문에 내구성, 재활용 원자재 비율 등 '에코디자인 규정'에 부합하는 정보를 담도록 하고, 이를 여권처럼 발급해 제품의 수출입시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발표된 에코디자인 우선순위 제품목록에는 플라스틱이 포함돼 향후 규제가 확실시되고 있다.

이 역시 '화학적 재활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세계자연기금(WWF), 가이아(GAIA) 등 국제환경단체에서는 화학적 재활용이 선별·수거 과정에서부터 제품의 전 순환주기가 아닌 폐기물 처리에만 방점을 찍고 있어 제품의 지속가능한 설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조정모 책임연구원은 "결국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은 생산 자체에 규제가 들어가고, 단일소재 위주의 제품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무엇이 플라스틱 폐기물을 '경제적으로' 잘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인지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어느 쪽이든 단일소재를 선별·수거하는 게 훨씬 재활용에 용이하고, 선별·수거 체계가 확립되면 상대적으로 물리적 재활용에 비해 화학적 재활용의 메리트가 떨어지기 때문에 화학적 재활용은 의류폐기물처럼 복합소재의 난처리성 폐플라스틱을 맡는 식으로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돼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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