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단순화시켜야 재활용 비중 높아져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1950년대부터 생산이 본격화된 플라스틱은 현재까지 63억톤가량의 폐기물을 발생시켰다. 이는 대형 여객기 5500만대를 가득 채우고 남을 양이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 처리된다. 매립된 플라스틱에서는 온갖 독성 첨가물이 새어나오고, 소각하면 유독가스들이 대기중으로 배출된다. 모두 발암물질들이다. 전세계가 '플라스틱의 습격'을 당하고 있다.
현재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들다. 생활용품, 건축자재, 전자기기, 자동차 등 석유기반 플라스틱은 모든 소재의 복합재로 사용되다보니, 플라스틱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연구단체인 백투블루(Back to Blue)가 올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2019년 2억6100만톤이던 주요 20개국(G20)의 플라스틱 소비량은 2050년에 이르면 4억5100만톤으로 1.73배 증가한다. 여기에 최근 증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소비량까지 감안하면 플라스틱 소비량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생산된 플라스틱은 전세계적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이 9% 수준이다. 폐기물의 14%는 소각되고 76%가 매립된다. 해양환경으로 버려지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은 매년 1100만톤에 이른다. 그 결과 태평양 한가운데 한반도 7배만한 플라스틱 쓰레기섬이 생겨났다. 그런데 2040년까지 매년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지금의 3배인 3700만톤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 재활용 비중 높이는 것이 '급선무'
'플라스틱 문제'는 이제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산감축 △재활용 △대체소재 개발을 꼽고 있다. 특히 신재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기 위해서 현재 지나치게 낮은 재활용 비중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2020년 기준 55.8%다. 유럽연합(EU) 34.5%, 전세계 9%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 통계는 함정이 있다. 환경부가 집계하는 재활용률은 '수거율' 기준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재활용되는 비중을 집계하지 않는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플라스틱을 소각하는 '열회수' 방식을 재활용률에 포함한다. 하지만 EU는 열회수 방식이 결국 새로운 원료를 생산하는데 이용되므로 이를 재활용률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열회수 비중만 빼도 우리나라 재활용률은 27%로 떨어진다.
투명 페트병만 봐도 그렇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페트병 수거율은 85%에 이른다. 하지만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분리수거를 해도 폐기물 수집 차량들이 다른 폐기물과 한꺼번에 운반하기 때문에 선별장에 도착하면 투명 페트병은 사실상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순도 99.9%를 유지해야 하는데 다른 폐기물과 섞이면서 오염돼 버리기 때문이다. 선별업체들은 이런 이유로 투명 페트병도 소각한다고 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현재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 물리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
현재 플라스틱 재활용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잘게 분쇄해 다시 원료로 재가공하는 '물리적 재활용'과 열을 가하거나 화화적 반응을 이용해 원료 단계로 되돌리는 '화학적 재활용'이 그것이다.
물리적 재활용을 하기 위해서는 수거한 플라스틱을 선별하고 세척해야 한다. 세척 과정에서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고온의 양잿물를 사용하는데 이로 인해 수질오염 문제가 야기된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데 또다른 환경오염을 발생시키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플라스틱은 재활용 공정을 거칠 때마다 분자의 연결구조가 짧아져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재활용 가능 횟수는 서너번 정도다.
이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화학적 재활용'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열이나 화학물질을 가해 플라스틱을 원료 단계로 되돌려놓고, 이물질을 걸러내 새로운 소재로 재생산해내는 방식이다. 첨가제, 색상, 음식물도 분리해낼 수 있어 분리수거가 불가능한 혼합·복합 플라스틱도 처리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재생원료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SK지오센트릭,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국내 화학업계도 이 사업에 '정조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화학적 재활용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열분해 공정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유해물질인 다이옥신이 나올 수도 있다. 또 화학적 재활용으로 탄생한 재생원료는 가격이 높아 신재 플라스틱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재생원료를 기껏 생산했는데 높은 가격 때문에 판매되지 않아 소각처리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결국 재생원료가 소각되면서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근원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플라스틱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소재 단일화가 필수"라며 "뚜껑과 몸통, 라벨 등 소재가 달라 분리배출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고, 재활용 비중을 높이려면 소재를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재질의 종류가 단순해야 선별수거 비용도 줄이고 물리적 재활용 비중도 높일 수 있다"면서 "물리적 재활용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소재를 화학적 재활용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물리적 재활용이든 화학적 재활용이든 플라스틱 재활용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동일 소재의 플라스틱이 일정하게 조달되지 못하면 재생원료를 생산하는데 한계가 있고, 상용화의 기반이 되는 가격경쟁력도 갖출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소재 단일화를 비롯해 재활용 분류체계 개선 등 제도적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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