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수거체계 없고 비싸..."일회용품 규제해야"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사용 후 퇴비나 바이오가스 등으로 자원화할 수 있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일회용 플라스틱 대체재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 규제협약, 탄소국경제조정제도, 에코디지아니 규정 등 국제사회의 환경규제가 가시화되면서 일회용품 대체재뿐만 아니라 어망, 접착제, 부직포, 화장품 용기 등 다양한 플라스틱 소재의 대체용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전세계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은 2021년 12조원 규모에서 연평균 22.7%씩 성장해 2026년 34조원 규모에 이른다. 바이오플라스틱 생산능력은 759만톤으로 2021년 대비 254.7% 성장할 전망이다. 여기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비중은 69.8%로 가장 많다. 한국무역협회도 전세계 생분해성 플라스틱 시장이 연평균 24.8%씩 성장해 2026년에 이르면 231억8230만달러(약 30조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5년 사이에 3배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은 말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이에 발맞춰 세계 각국에서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심지어 전자제품 소재로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 산업디자인 기업 모라마와 3D프린팅 전문업체 배치워크스는 전자폐기물 저감을 위해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헤드폰을 제작했다. 이 제품은 인쇄회로기판(PCB)도 생분해 소재를 사용했다.
선진국들은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선점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정부 주도하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기반시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제도적 뒷받침이 되지 않아 기껏 열린 시장이 오히려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관련업계는 "정부가 하루빨리 제도를 마련해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품 다양해지고 대기업도 뛰어들었지만···
국내에서도 다양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지난 2023년 11월 기준 환경부의 생분해성 플라스틱 인증인 'EL724'를 받은 제품은 1646종에 이른다. 이 인증을 획득한 업체수는 170개. 반려동물 배변봉투, 쇼핑백, 장갑, 식탁보, 칫솔, 완충재, 식기류, 문규류, 호텔용품, 수목장 분골함 등 종류도 다양하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뛰어들었다. LG화학은 글로벌 4대 곡물 가공기업 ADM과 손잡고 2025년까지 미국 일리노이주에 옥수수를 기반으로 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원료 PLA를 연간 7만5000톤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짓는다. CJ제일제당은 인도네시아 바이오공장 전용 생산라인에서 연간 5000톤 규모의 미생물 발효공정 기반 원료 PHA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2025년에는 생산량을 연간 6만5000톤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SKC와 에코밴스는 베트남 하이퐁시에 연산 7만톤 규모 PBAT 생산시설을 건설중이다. 2025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이 시설은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SKC의 라이멕스(LIMEX) 소재 사업 투자사인 SK티비엠지오스톤의 생산시설도 이곳에 함께 들어선다. LIMEX는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석회석을 배합해 종이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다. SK티비엠지오스톤은 2025년까지 연산 3만6000톤 규모 생산시설 건설을 추진한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생산시설을 대부분 해외에 두고 있다. 국내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는데 비해, 국내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은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225곳까지 늘어났던 'EL724' 인증업체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170곳으로 줄어들었다. 최근 1년 사이에 인증업체의 25% 달하는 55곳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한 것이다.
◇ "자원화 가능하도록 수거체계부터 마련해야"
관련업체들은 국내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이 퇴보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수거체계 미흡'을 꼽았다.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빨대를 만드는 '디앙'의 김지현 대표는 "국내 생분해성 플라스틱 폐기물은 별도 선별과정 없이 일반쓰레기와 함께 소각·매립되고 있다"며 "결국 재생이 안되는 기존 일회용품과 다를 바 없이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굳이 돈을 더 주고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을 구입할 이유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폐기물은 일정시간 지나면 분해되는 소재다. 따라서 일반쓰레기를 버리는 종량제 봉투로 배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량제 봉투는 매립하거나 소각하기 때문에 분해되는 소재를 굳이 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호주의 경우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폐기물을 음식물과 애완동물 배설물, 나뭇가지 등 유기성페기물과 함께 '퇴비화 가능 소재'로 분류해 별도 처리시설로 보내고 있다. 즉 생분해 플라스틱은 별도로 수거하는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분해시킬 별도의 퇴비화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 2022년 1월 'EL724' 인증을 중단해버렸다. 환경부의 이같은 조치에 업체들이 반발하자, 환경부는 개선된 환경표지인증을 2025년부터 새로 도입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2025년부터 시행되는 신규 환경표지인증은 퇴비화 시설이 아닌 상온의 일반토양에서 24개월 이내에 분해되는 경우에 부여된다. 하지만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수거체계없이 '환경표지인증'만 부과한다면 이전과 같은 오류가 되풀이될 우려가 있다.
이에 김지현 대표는 "음식물쓰레기와 함께 수거되게끔 분리배출 코드를 부여하면 해결될 일"이라며 "생분해성 빨대의 경우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산업퇴비화 시설에 투입하면 이틀이면 사라진다"고 말했다.
퇴비화가 아니더라도 바이오가스화 시설에서 메탄을 발생시키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처리방식도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까지 인천시에 '플라스틱 대체물질 소부장 지원센터'를 마련해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바이오가스화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실증사업을 추진중이다.
김지현 대표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자원화하려면 우선 제대로 수거돼야 한다"며 "재활용품 아니면 일회용품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위한 수거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해야 시장활성화 가능"
현재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은 석유화학계 플라스틱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관련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생분해성 수지 전문업체 제주그린그림의 이시아 대표는 "생분해 제품의 단가가 낮아지려면 그만큼 많이 팔려야 하는데 현재 자발적으로 생분해성 제품을 사용하는 카페는 5% 내외"라며 "정부의 규제없이는 수요가 촉발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도 낮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부터 식당과 카페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었는데 환경부가 이 규제를 돌연 철회해버렸다. 이 여파로 생분해 플라스틱 업체들은 고사위기에 처했다. 공급하기로 했던 제품들이 줄줄이 계약이 취소되면서 재고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판로가 막히면서 인건비를 주지 못한 업체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수년간의 논의끝에 도입하기로 했던 규제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철회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이랬다 저랬다'하는 우리나라 정부와 달리, 해외 각국은 생분해성 플라스틱 활성화를 위해 제도를 체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지침'(PPWD)을 마련해, 티백과 커피파우치, 과일라벨 등 퇴비화가 가능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원료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세계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도 2025년까지 '분해되지 않는' 일회용품 플라스틱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 1위인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가 2032년까지 모든 일회용 포장재 및 식기류가 '재활용 혹은 생분해' 되도록 의무화했다.
이시아 대표는 "앞으로 탄소세, 원유가격 상승 등으로 석유화학계 일회용품 플라스틱이 언제까지 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길어야 몇 초, 몇 시간 사용하고 버릴 일회용품에 엄청난 자원이 낭비되면 이 부담은 결국 소비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며 하루빨리 소비자들이 대체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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