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플라스틱 해결 안되면 반쪽짜리 해결책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식물로 만드는 플라스틱' '썩지 않아도 친환경'. 석유 대신 식물성 원료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산업계는 탄소저감 차원에서 석유계 플라스틱 대신 바이오플라스틱을 대체소재로 선호하는 추세지만,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팽배하다.
'바이오플라스틱'의 원료는 옥수수와 대두, 톱밥, 해조류와 같은 식물유래 성분이다. 엄밀히 말하면 미생물에 의해 빨리 분해되도록 만들어진 '생분해성 플라스틱'도 식물유래 성분을 포함하지만, 여기서는 바이오플라스틱 중에서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통칭해 다뤄보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대개 석유로 만든 기존 플라스틱 제품을 그대로 대체할 수 있는 플라스틱을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칭한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원료를 석유에서 추출하느냐, 식물성분에서 추출하느냐만 다를 뿐, 완성된 제품의 화학적 구조는 석유계 플라스틱과 똑같다. 그래서 바이오플라스틱도 '바이오PET, 바이오HDPE, 바이오PP, 바이오PS' 등으로 세분화된다. 물론 재활용도 가능하다.
바이오플라스틱의 가장 큰 장점은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소각하더라도 원료가 되는 식물이 자라는 동안 탄소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탄소상쇄도 가능하다. 재활용과 탄소저감을 한번에 거머쥘 수 있어 일각에서는 바이오플라스틱이 석유계를 대체할 '만능' 플라스틱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무엇보다 바이오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을 저감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에베레스트 정상부터 심해에 이르기까지 지구상 검출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퍼져있다.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주기를 규제하기 위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제정중이다. 이 협약은 탄소저감 목적도 있지만 출발점은 해양미세플라스틱 문제로, 바이오플라스틱은 플라스틱 무넺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2050년까지 생활계 플라스틱의 100%를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국책과제로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 역시 포장재와 용기 등을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하면서 '친환경'을 강조하고 있어, 자칫 소비자들에게 바이오플라스틱이 친환경 소재로 각인될 우려가 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만능 치트키'가 아닌만큼, 사용을 확대하기에 앞서 장단점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 탄소저감이 최대 장점···탄소상쇄도 가능
미국 시장조사업체 밴티지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84억달러였던 전세계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은 2030년에 이르면 192억달러로 연평균 11.1% 성장할 전망이다.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의 성장잠재력이 그만큼 크다. 이에 국내 업체들도 앞다퉈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건자재에 들어가는 PVC 가공업체 7곳과 최근 '바이오PVC' 상용화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CJ제일제당과 HD현대케미칼은 바이오플라스틱을 가정간편식 용기와 포장재로 활용하고 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석유계 플라스틱과 재질이 똑같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다. 바로 탄소저감 여부다. 석유계 플라스틱은 생산과정에서 엄청난 탄소를 내뿜지만 바이오플라스틱은 그렇지 않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은 2배 늘어나고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3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플라스틱 원료를 화석연료에서 바이오매스로 대체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탄소저감 차원에서 석유계 플라스틱을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석유계 페트(PET)를 바이오PET로 대체하면서 탄소배출량을 28% 줄였고, LG화학은 코팅제로 주로 쓰이는 NPG를 바이오 소재로 바꾸면서 탄소를 70% 이상 감축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친환경 원료로 생산됐다는 것을 인증받아야 한다. 이에 대다수 바이오플라스틱 제조사들은 ISCC(International Sustainability and Carbon Certification) 인증을 받는다. 롯데케미칼의 바이오PET나 LG화학의 바이오NPG도 모두 ISCC 인증을 받은 소재들이다.
ISCC 인증은 매우 까다롭다. 원료 수급부터 완제품 폐기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전생애주기(LCA)에 대해 '지속가능성'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 평가항목에 산림벌채로 수급된 원료인지의 여부, 토양이나 인권, 생물다양성을 보존여부, 온실가스를 추적하고 저감했는지의 여부 등을 꼼꼼히 살펴본다. 현재 유럽시장으로 제품을 수출하려면 ISCC 인증은 필수다.
바이오플라스틱 공급이 늘면서 가격도 많이 내려갔다. 현재 바이오플라스틱 가격은 석유계 플라스틱보다 1.2~1.3배 높게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성연 경희대학교 식물·환경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바이오플라스틱의 시작은 중국에서 동물사료가 공급과잉으로 남아돌기 시작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원료수급이 어렵지 않다"며 "옥수수와 같은 작물이 아닌 녹조류, 톱밥 등 원료가 비작물로 다양화되고 있어 앞으로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은 더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 불편한 진실···'미세플라스틱' 여전히 발생
바이오플라스틱은 탄소를 저감할 수 있고 원료수급도 쉽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바이오플라스틱을 '친환경'으로 분류하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석유계 플라스틱과 분자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완성된 바이오플라스틱 제품들도 석유계와 마찬가지로 잘 썩지 않는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빠른 시간내에 썩을 수 있도록 구조화돼 있지만 바이오플라스틱은 석유계 플라스틱처럼 썩는데 500년 이상 걸린다. 이 때문에 바이오플라스틱은 자연상태에서 분해될 때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 36개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인 제로웨이스트유럽(ZWE)은 "바이오플라스틱은 선형경제를 부추기는 헛된 해결책"이라고 비판했다.
기업들이 바이오플라스틱 폐기물 관리에 되레 소홀할 우려도 있다. 석유계 플라스틱을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한 기업들이 탄소저감에 대한 부담이 덜어내면서 바이오플라스틱에 대한 재활용이나 폐기물 관리가 부실해져 미세플라스틱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성연 교수는 "바이오플라스틱은 석유계 플라스틱과 구조가 똑같기 때문에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며 "따라서 선별과 회수 등 철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바이오플라스틱 원료 생산과정이 너무 자원집약적이라는 것이다. 물, 살충제, 비료를 다량 사용해야 하고, 농장과 농업용 기자재들을 사용하는데 드는 에너지 소모도 크다. 전망한대로 2050년까지 전세계 플라스틱 수요는 3배 이상 늘어난다면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전세계 경작지 5~7%를 바이오플라스틱 원료를 조달하기 위해 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산림훼손과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원순환을 위한 국제환경단체 가이아(GAIA)의 문도운 정책연구원은 "바이오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을 지속적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원료만 바꾼 눈속임에 불과하다"며 "재사용이나 리필이 가능하도록 수거체계를 확보해 플라스틱 자체의 원천감량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에 더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오플라스틱에 올인?···"대체소재 다각화해야"
바이오플라스틱은 이처럼 장단점이 뚜렷하다. 따라서 바이오플라스틱으로 100% 전환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현재 정부는 2030년까지 생활계 플라스틱을 100%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없이 탄소저감에만 방점을 찍어놓은 모습이다.
이에 바이오플라스틱에 올인하기보다 대체 소재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례로 음식물 오염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용기는 생분해 소재로 대체해 음식물쓰레기와 함께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빨대같은 일회용품도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대체한다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EU의 경우, 올 3월 티백, 커피파우치, 과일라벨, 커틀러리 등 음식물 오염이 심하거나 크기가 작아 분리배출이 어렵고 재사용이나 재활용도 불가능한 소재의 경우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포장재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을 강화했다.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EU는 이 후속조치로 생분해성 플라스틱 표준을 제정해 상세 요구사항과 기술사양을 규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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