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상] 몽고반점이 꽃이 될 때 – 한강의 ‘몽고반점’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10-14 11: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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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반점'은 한강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기묘한 얼룩을 지닌 소설이다. 독자는 그 원초적 이미지에 물들고 그 짜릿한 미학에 멍든다. '몽고반점'은 1부 '채식주의자'에 이어지는 중편으로서 3부 '나무 불꽃'과 함께 <채식주의자>라는 장편 소설집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폭력이 만들어내는 핏빛 착란을 그리고 있다면 '몽고반점'은 성애의 꽃밭에서 피어나는 심미적 경험의 탈주를 펼쳐내고 있다.

◇ 몽고반점, 예술과 성애의 발화점

영혜의 형부 J는 비디오 아티스트다. 그는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혀 2년째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아내로부터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창작 열의는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는 처제의 몽고반점을 상상하며 처제의 온 몸에 꽃그림을 그려 비디오에 담고자 하는 발상을 한다.

"그의 스케치북 속의 여자는 얼굴이 잘려져 있을 뿐 처제였다. 아니 처제여야 했다." 74쪽
"퇴화된, 모든 사람에게서 사라진, 오로지 어린아이들의 엉덩이와 등만을 덮고 있는 반점. …그녀의 한번도 보지 못한 엉덩이는 그의 내면에서 투명한 빛을 발산했다." 87쪽

영혜는 작품 모델이 되어달라는 형부의 제안에 가타부타 대답도 하지 않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J는 '몸에 꽃을 그린다'는 말에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아챈다. J는 친구의 작업실에서 처제의 알몸에 꽃그림을 그린다. 목덜미로부터 발목에 이르기까지 가지들과 반쯤 열린 듯한 꽃봉오리들로 가득 채운다. 젖가슴 가운데는 황금빛 꽃송이를 찬란하게 그린다. 특히 그는 몽고반점이 있는 왼쪽 엉덩이는 여백으로 남기고, 흐린 연둣빛을 큰 붓으로 깔아 연한 꽃잎 그림자 같은 반점이 도드라지게 그린다.

꽃그림을 다 그린 후 J는 그녀의 몸 전체를 비디오에 담는다. 특히 몽고반점이 드러난 엉덩이를 오래 클로즈업한다. 작업을 끝내고 J는 영혜에게 묻는다. "힘들지 않았어?" 그때 그녀는 그를 보며 웃는다. 영혜의 피부라는 살아있는 캔버스에 물감의 순도 높은 욕망과 J의 붓질이 정교한 미학적 애무가 되어 흐른다. 완성된 꽃그림의 몸은 찬란한 생기를 지닌 식물로 소생한다.

◇ 몽고반점과 꽃이 만날 때

J는 밤새 비디오를 편집하여 러닝타임 4분 55초의 작품으로 완성한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에 '몽고반점 1  ̄ 밤의 꽃과 낮의 꽃'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는 다음 날 몽고반점 2를 촬영하기 위해 처제에게 전화를 건다. '꽃그림을 지우지 말라'는 말을 듣고 영혜는 이렇게 대답한다. "…… 지우고 싶지 않아서 씻지 않았어요."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꿈을 꾸지 않아요. 나중에 지워지더라도 다시 그려주세요."

2차 작업은 남성 모델의 몸에 꽃그림 가득 그리고, 꽃무늬로 가득한 영혜와 교합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다. 형부 J는 후배 J의 몸 가득 꽃들을 그리고 특히 J의 성기를 중심으로 선혈 같은 진홍의 거대한 꽃을 그린다. 두 사람의 애정 연기를 비디오로 담는 작업에 뜻밖에도 영혜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때, 그녀가 천천히 뒤로 돌아 J를 향해 앉았다. 한손으로 J의 목을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J의 가슴에 그려진 붉은 꽃을 만지기 시작했다. … 새들이 애무하듯 J의 목에 자신의 목을 감았다." 126쪽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 그 사람 몸에 뒤덮인 꽃이요…… 그게 날 못 견디게 했던 거야. 그뿐이에요." 131쪽

J는 친구 P를 통해 후배 J의 몸에 그렸던 그림과 똑같은 꽃그림을 자신의 몸에 그리게 한 후, 한밤중에 처제의 자취방으로 찾아간다. 문은 열려 있다. 그는 촬영 장비를 현관에 내려놓고, 영혜가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솟구치는 충동만이 그를 삼키고 있고, 그는 으르렁거리며 그녀를 눕히고 그녀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영혜는 불을 켜고 그에게 다가와 J에게 그랬듯 손가락을 뻗어 그의 가슴의 꽃을 바라보며 어루만진다. 이후 J는 캠코더를 켜고 외부 모니터에 비치는 영상을 직접 확인하며 또 다시 교접한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려왔던 대로였다. 그녀의 몽고반점 위로 그의 붉은 꽃이 닫혔다 열리는 동작이 반복되었고 …… 그는 전율했다.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J는 검푸른 새벽빛 속에서 그녀의 엉덩이 위 몽고반점을 오래 핥는다. "이걸 내 혀로 옮겨 왔으면 좋겠어." 그의 혀는 질척거리는 농도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몽고반점, 바로 여기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


◇ 몽고반점이라는 원시적 기호

J는 왜 몽고반점이라는 오브제에 탐닉할까? 몽고반점이라는 은유(metaphor)는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알다시피 몽고반점(Mongolian spot)은 신생아의 피부에 나타나는 푸르스름한 반점이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 소설 서사에서는 그 반점이 지니는 혈통적 문화적 요소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몽고반점'에서 유아성 즉 어린 아이의 차원이나 원시성 같은 이미지가 울음소리처럼 들려온다.

"반점은 과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왼쪽 엉덩이 윗부분에 찍혀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저곳에 남아있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101쪽

독자의 읽기 경험은 제각각이고 해석은 자유다. 하지만 이 소설을 포르노 – 예술, 금기와 터부, 도덕과 비도덕, 예술과 성애라는 해묵은 도식으로 해석하면 소설 서사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울림을 듣지 못할 것이다. 몽고반점은 꽃을 원하고 꽃이 되기를 기다린다. 아이가 사랑을 받고 돌봄을 받듯이, 몸을 어루만지며 서로의 삶에 꽃을 피우는 관계를 갈망하는 걸까? 이 소설에서 꽃은 타자에 의해 피어난다. 부드러운 손길에 의해 열려지고 사랑에 의해 만개한다. 심장에 그려진 꽃은 타자적 주이상스를, 남근을 감싸고 있는 꽃은 팔루스적 주이상스를 암시하기도 한다.

소설 '몽고반점'은 매우 시각적이고 촉각적이다. 그 도발적인 이미지와 전율의 감각이 영혜의 담담한 언어와 대조를 일으키며 그 강도는 최대화된다. 아울러 이 소설은 매우 분열적이다. 미학 혹은 철학적인 의미에서 분열성은 기존 질서에의 부적응, 다수성으로부터의 도주, 기존의 상식과 문법으로부터 벗어나는 변형과 변주를 의미한다. 그렇게 본다면 영혜의 행동과 말은 인간 본래의 백치 상태로의 회귀를 담아낸다고도 볼 수도 있다. 몽고반점과 꽃이 만나고, 몽고반점이 꽃 그림자가 되고, 우리 신체가 만발한 꽃나무가 되는 삶을 꿈꾼다는 듯이.

이 소설을 읽으면 여러 시선들이 다층적으로 얽히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소설 속 화자의 관찰자 시선, 아티스트 J의 시선. 작가의 시선, 그리고 독자의 시선이 서로 만나고 교차한다. 즉, 여성 작가 한강은 소설 속 J라는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탐닉하며 예술적 충동과 성적 욕망이 엉긴 남성적 정념을 드러내는 식으로 쓰기의 변주를 시도했다. 여성의 마음은 표정이나 몸짓, 침묵, J의 짐작이나 추론 등으로 우회적으로만 그려진다. 영혜는 말이 적거나 없고, 몸으로 말한다. 한편 독자들은 소설 속 J의 시선과 함께 이를 그려내고 있는 작가의 시선과 감각을 동시에 읽어내며 J의 감정과 작가의 정서를 동시에 감지한다. 그 결과 성애나 여체를 묘사하는 여느 소설에서 맛볼 수 없는 특이한 읽기 경험이 생성된다.

얼핏 보면 영혜는 거세된 식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고, 몽고반점을 지닌 영혜는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문명과 가부장제 질서 안에서 잃어버린 몽고반점을 되찾는 일, 마치 거기에 낙원이 있다는 듯이.

'마치 정상적인 여자 같았다. 아니, 실제로 정상적인 여자야. 그는 생각했다. 미친 건 내 쪽이지.'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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