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도심 속에도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한 마을이 하나 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돈의문(敦義門, 한양도성 서문)을 중심으로 한양 성곽을 둘러싼 마을 교남동이다. 인왕산자락 자연은 물론, 숨겨진 역사 이야기까지 품은 이 조용한 마을을 뉴스;트리가 산책하듯 걸어보았다.
돈의문 터를 등지고 강북삼성병원 방향 언덕을 올라가면 얼마 전 조성된 '오래된 마을' 하나가 나온다. '돈화문 뉴타문'이 조성되면서 교남동 주변 골목이 사라지게 되자, 서울시는 근린공원이 들어설 자리에 일부 건물과 골목을 살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조성했다. 조선 후기 한옥부터 현대식 가옥까지 살린 이 공간은 일종의 야외 박물관으로 계절을 느끼며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길을 따라 더 걸어가면 새로 생긴 아파트 주변으로 길게 이어진 산책로가 나온다.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보면 오른편 언덕에 위치한 한 건물을 볼 수 있다. 1932년 건립돼 1998년까지 기상청 청사로 사용된 기상청 서울관측소다. 100년 가까이 서울 기온의 기준이 되어온 이 관측소는 얼마전 옛 기상청사 리모델링을 거쳐 국립기상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기상 관측업무를 유지하는 동시에 한국 기상 역사를 알리는 중요한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교남동의 숨은 이야기는 언덕을 올라가며 계속 이어진다. 일부 복원해놓은 한양도성 성곽 주변을 오르며 가을 햇살을 느끼다보면 언덕 끝에 자리한 한 공간에 이르게 된다. 대한제국 시기 을사늑약을 반대하며 항일활동을 지원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다. 지금은 공원 일부에 표지석만 남았지만, 암울했던 근대사의 기억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런가하면 옛 모습 그대로 남은 서양식 가옥도 만날 수 있다. 베델의 집터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봉선화', '고향의 봄'을 작곡한 음악가 홍난파의 집이 나온다. 그가 말년에 살았던 이집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옛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가옥 내부엔 그의 작곡 기록과 함께 '사상전향서' 등 친일기록도 함께 전시하여 당시 역사를 그대로 알 수 있게 했다.
언덕을 더 올라서면 인왕산자락 한양도성 성곽으로 이어진다. 숲으로 둘러싸인 성곽과 그 곁에 자리한 마을 풍경은 휴식과 여유를 느끼게 한다. 성곽을 따라 오르면 인왕산 등산로로 이어져 서울 도심 전체 풍경까지 즐길 수 있다.
성곽을 다시 따라 내려오면 한 골목 끝에서 또 하나의 박물관을 만난다. 1919년 3.1운동 당시 대한독립선언서를 입수해 세계에 알린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다. 힌디어로 '이상향, 기쁨'을 뜻하는 이 가옥은 테일러가 아내를 위해 지은 집으로 이곳에 사는 동안 대한 독립을 위한 활동을 지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그 역사성이 인정돼 복원공사를 거쳐 역사공간으로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 모습은 사라졌지만 이름만은 남은 돈의문처럼 주변마을 교남동은 곳곳에 다양한 사연을 조용히 품어오고 있다. 문화생활이 제한되는 코로나 시대, 이 조용한 '박물관 마을'을 찬찬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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