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원의 ESG인사이드] 보여주기식 'ESG공시' 벗어나려면?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5-06-20 0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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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공시는 더이상 선택이 아니다. 지속가능성 정보가 자본과 규제의 흐름을 결정짓는 시대,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수준을 점검하고 공시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명확해지고 있다. 유럽은 이미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 기반 공시체계를 본격 도입했고, 600여개 기업이 2024년 연차보고서 내 지속가능성제표(Sustainability Statement)를 공시하고 있다. 이는 회계법인의 외부 인증대상이며, 그 수준은 단순정보 제공을 넘어서 전략, 공시, 성과간의 고도화된 연계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ESG 측면에서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ESG 평가체계 구축'과 'ESG 평가 우수 기업 인센티브 부여', '공공기관 ESG 평가 강화'가 포함됐다. ESG 평가가 행정과 금융지원에 본격적으로 연결되는 시점이 도래했다. 실제로 새 정부 공약에 따라 ESG 평가결과에 따라 자금지원, 세제혜택, 인증우대 등 실질적 차별화가 이뤄질 예정이다.

조만간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공시기준에 기반한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공시기준과 의무공시 로드맵이 확정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뉴노멀 ESG 공시기준에 따라 공시를 해야 하는 상황이며, 그것은 곧 '평가받을 준비'를 해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뜻한다. ESG 공시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공시–평가–금융 연계 구조가 제도화되는 흐름으로, 공시 역량이 없는 기업에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의 지속가능 금융패키지(EU Taxonomy, SFDR, CSRD)에서 이미 구현중이다. EU는 ESG 공시, ESG 평가, 지속가능 금융이라는 세 축을 긴밀히 연결하고 있다. CSRD는 ESRS 기준에 따라 작성된 공시정보를 요구하며, 이 정보는 ESG 평가와 금융기관의 투자 판단에 직접 연결된다. 핵심은 전략과 공시, 실행, 성과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다. 단순한 선언이나 활동 나열로는 더이상 높은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ESRS 공시는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전략, 리스크, 목표의 정합성과 이행력을 검증하는 구조를 갖춘다. 기업의 전략–공시–실행–성과 간 연계 수준은 곧 ESG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전략–공시–실행–성과가 정합성을 갖춘 사례로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유럽 공시의무화 기업 중에서도 가장 선도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MSCI AAA 등급은 물론, 수년간 지속적으로 글로벌 평가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먼저 전략 측면을 보면, Novo Nordisk 전략은 단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넘어 '심각한 만성질환 극복을 위한 변화를 이끈다(drive change to defeat serious chronic diseases)'는 명확한 사명을 중심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포지셔닝은 '환자 중심 혁신을 통해 치료 결과를 개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당뇨병 극복(Defeat Diabetes)'에서 출발해 비만, 희귀질환 등 중증 만성질환 전반으로 확장되며, ESG 요소는 기업의 전사적 전략의 구성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영 전략은 4가지 축(① 목적과 지속가능성, ② 혁신 및 치료 집중, ③ 상업 실행, ④ 재무성과)으로 구성되며, 이 중 '지속가능성'은 전략의 출발점이자 궁극적 성과의 기준이 된다. 또 ESG는 재무성과와의 연계를 명시적으로 지향하며 '건강한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 핵심성과지표(KPI)와도 직결된다. 이로써 ESG는 기업 목적과 성과를 이어주는 실행 원리(operating principle)로 기능한다.

공시(Disclosure)는 2024년부터 CSRD의 요구에 따라 ESRS를 반영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행함에 따라 공시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기존의 GRI, SASB, TCFD 기준에 기반하던 공시체계에 ESRS 기반의 구조를 정렬함으로써, 보다 일관되고 통합된 데이터 제공이 가능해졌다.

ESRS 기준에 따라 보고된 항목은 기업의 전략 목표와 연계된 중요한 지속가능성 주제들을 다루며, 임팩트 관점(impact perspective)과 재무관점(financial perspective)이 균형있게 통합돼 있다. 각 주제별로 공정, 정책, 실행, 지표, 목표치가 망라되며, KPI와 서술형 정보가 병행 공시된다. 특히 소비자와 최종 사용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간결성과 연결성 중심의 공시 구조가 강조된다.

실행 수준도 구체적이다. 스코프3(Scope3) 감축을 포함한 과학 기반 배출 감축 목표 설정, 저소득 국가대상 의약품 접근성 확대, 공급망 인권 실사 등 다양한 주제가 실행가능한 구조로 전환돼 있다. 특히 EU 택소노미(EU Taxonomy) 기준에 따라 자본지출(CapEx)과 운영비(OpEx)의 환경 정렬 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공시 기반 투자 전략에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성과는 매년 수치화된다. 2024년 스코프1 및 2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10% 감소했고, 여성 부사장 비율은 41%를 달성했다. 공급망의 약 20%에 대해 인권 실사를 수행했고, 저소득 국가 아동 6만4000명에게 의약품을 제공했다. 이러한 ESG 성과는 ISAE 3000 기준에 따라 회계법인의 외부 인증을 거쳤으며, ESG 정보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함께 확보했다.

이처럼 전략–공시–실행–성과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기업만이 평가받을 수 있는 시대다. 국내 기업도 평가 대상이 되기 전에 먼저 공시와 전략의 정합성을 점검해야 한다. 결국 ESG 공시 수준은 기업의 경영 전략과 실행 수준을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며, 공시를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기업만이 변화하는 자본시장과 정책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단지 선진국 대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기업에게도 선택지는 명확하다. 전략 수립은 사후가 아니라 사전의 문제이며, 공시는 최종 단계가 아니라 시작점이다. 지금 당장 전략과 사업 구조를 ESG 관점에서 재조정하고, 그 결과를 일관되게 추적·공시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면, 조만간 맞닥뜨릴 '평가'의 파고를 피할 수 없다.

정책금융기관의 평가 반영, 공공기관의 공시 강화, 산업별 ESG 평가 기준 도입이 현실화될 경우, ESG 전략과 공시 체계가 미비한 기업은 자본시장에서조차 기회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산운용사나 연기금, 국제 공급망 기업들이 'ESG 성과 기반 선정'을 본격화할 경우, 단순 보고 수준의 ESG는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공시는 규제의 언어가 아닌 성과의 언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서도 기업의 전략–공시–성과를 연결하는 인센티브 기반의 평가 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즉 공시 역량이 실제 전략 실행과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ESG가 규제의 대상이 아닌 성과의 언어가 되도록 하는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공시는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전략없이 보여주기식에 그친 공시는 오히려 신뢰를 잃게 되고, 전략과 연계된 공시는 경쟁력이 된다. 이제는 공시의 수준이 곧 전략의 수준이며, ESG 공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평가받을 준비'를 시작하는 일이다. 이제 공시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증명하는' 것이다. 평가받을 준비, 그 자체가 곧 경쟁력이다.



 글/ 손기원
 대주회계법인 부대표 / ESG TF 리더
 공인회계사·철학박사 / kiwon.son@kr.g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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