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동물윤리 문제 해결할 미래 먹거리"
동물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들어내는 인공고기 '배양육'. 중국과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시판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매우 생소하게 여겼다. 그러나 공장형 축산업이 일으키는 환경오염과 동물윤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미래 먹거리로 '배양육'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관련 스타트업들도 하나둘씩 생겨나 이제 5~6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세계 최초로 돼지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해 특허를 받은 '스페이스에프'가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4월 설립해 올해로 설립 2년차를 맞는 이 회사는 얼마전 대상과 롯데, CJ 등 국내 내로라하는 식품 대기업들로부터 70억원을 투자유치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뉴스트리는 경기도 동탄에 위치한 스페이스에프를 직접 찾아가봤다. 이 회사의 김병훈(45) 대표는 배양육 시장은 앞으로 성장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확신하며 "축산업은 전염병이 한번씩 돌면 대량 살처분해야 하는 문제나 수급문제 등이 생긴다"면서 "배양육은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안보 확보 측면에서도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3년 후 배양육 시장 본격 열린다"
AT커니는 2040년에 이르면 전체 식육시장의 60%를 대체육이 차지하고, 이 중 35%가 배양육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식육 시장 자체는 매년 3%씩 성장하지만 가축을 도축해야 하는 신선육보다 배양육을 포함한 대체육 소비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김병훈 대표는 "넓게 보면 배양육은 대체육의 한 분야"라며 "배양육은 식품의 형태로 단백질을 공급하는 대체단백질이다"고 말했다. 식물성 고기인 '대체육'은 신선육의 식감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동물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드는 '배양육'은 맛과 식감이 신선육과 매우 유사해 앞으로 배양육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국내 배양육 시장은 걸음마 단계지만 해외는 이미 전문식당이 생겨날 정도로 시장이 열린 상태다.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 싱가포르가 배양육 상용화를 허가했고, 이스라엘도 정부 주관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면서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도 상용화를 위한 규정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머지않아 대체육처럼 배양육도 판매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배양육 상용화에 대비해 현재 산학연협의체를 구성해 논의중이다. 우리나라는 배양육 제품에 대한 규정뿐 아니라 배양육을 만드는 과정도 사람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독성물질이나 안전성 문제 등을 제도화한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3년 후면 전세계 배양육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스페이스에프와 배양육을 공동개발하기로 한 대상에서는 2025년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축산업 탄소감축 위해 배양육은 필수"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육류소비량은 해마다 4%씩 증가하고 있고, 지난해는 54.3kg에 달했다. 지금 추세로 가면 몇년후 육류소비량이 쌀소비량을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육류소비량이 늘어나면서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비중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체 탄소배출량의 약 16.5%가 축산분야에서 발생했다. 이에 대해 김병훈 대표는 "배양육이 상용화된다면 공장형으로 농가를 운영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탄소배출량을 대폭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양육은 자원을 절약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면적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2018년 약 76억명이던 세계 인구는 2050년에 이르면 100억명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세계 곡식 수확량의 절반이 가축들의 사료로 소비될 것이라고 한다. 배양육 시장이 열리면 가축의 먹이로 소비되는 곡식의 양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동물윤리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김 대표는 "중국에서 2019년에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수많은 돼지들을 살처분했다"면서 "돼지고기가 하루아침에 몇 배가 뛰자 배양육을 먹겠다는 비율이 50% 올라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처럼 축산업은 한번씩 전염병이 돌면 대량으로 살처분하는데 이로 인해 수급문제도 생기지만 살아있는 가축을 그대로 파묻어버리는 반윤리적인 문제가 생긴다"면서 "배양육은 이같은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 먹거리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도축없이 배양육 생산기술 보유"
스페이스에프는 세계 최초로 확립한 돼지배아줄기세포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영국 회사와 공동연구를 진행중이고,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연구소들과도 협업하는 중이다. 국내에서는 식품 대기업과 협업뿐 아니라 한국연구재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지원도 받고 있다.
김병훈 대표는 "서울대에서 돼지 줄기세포를 오랫동안 연구하셨고 세계 최초로 돼지에 대한 배아줄기 세포를 확립하신 교수님 2명과 스페이스에프를 함께 창업한 것"이라며 "나는 경영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고, 교수님들이 기술개발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배양육 기술은 크게 세포배양과 배양액, 지지체(힘줄), 대량 배양기술 등 4부분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세포배양과 배양액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기술수준이 차이가 나는데, 스페이스에프의 중점기술은 세포배양과 배양액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줄기세포도 '골든셀 라인'이라고 해서 근육줄기세포 분리부터 분화까지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을 갖고 있고, 혈청을 대체하는 무혈청 배양액도 개발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이스에프는 도축없이 배양육을 만들 수 있다. 김 대표는 "고기의 힘줄 역할을 하는 '가식성 지지체'도 개발했기 때문에 도축없이 배양육을 생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가축이 줄기세포를 추출한 이후에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근육과 지방을 함께 배합한 시제품도 개발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대표는 "시제품 제작은 돼지고기 배양육 위주로 하고 있지만 소고기 등으로 축종을 확대하기 위해 현재 팀을 꾸려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또 대체육을 연구하시는 세종대 교수님도 합류해 배양육과 대체육을 하이브리드한 제품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미래가치 연구하는 지속가능 기업 되겠다"
걱정도 없지 않다. 미국의 각 주마다 축산농가들과 배양육업체들이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배양육 시장이 열리면 축산농가들의 집단 반발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배양육 시장의 성장으로 축산농가가 위협받지 않도록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며 "우리도 환경보호와 공존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선육과 배양육 시장은 결국 공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만 안전한 식량안보와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현재 공장식 축사운영으로 빚어지는 문제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스페이스에프는 '세포농업기술'을 활용해 배양육과 같이 실험실에서 생산할 수 있는 축산물에 대한 연구를 집중할 계획이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신선육을 대체하는 배양육을 생산하는 단계를 넘어, 부위별 줄기세포를 배양해 우유나, 가죽과 같은 가축 부산물까지 만들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환경친화적이고 동물윤리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까지 우리는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복원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스페이스에프를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식품회사가 아닌 미래를 위한 가치를 연구하고 대표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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