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받는 차별금지법..."더이상 목숨끊는 사람 없도록 해달라"

이준성 기자 / 기사승인 : 2021-11-13 20: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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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명 동의받은 법안, 국회가 또 유예
분노한 사람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행진하는 시민들(사진=이준성 기자)


"우리는 누구나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합당한 이유없이 여성이나 성소수자, 장애인이라고 해서 고용이나 재화의 이용, 교육, 행정에서 분리·구별·제한·배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은 14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서다. 법안은 이미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또다시 3년 유예된 것이다. 

'유예된 평등'을 기다리다 못한 사람들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들었다. 무지개 깃발을 치켜든 사람들은 "더이상 미룰 수 없다"며 "조속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외쳤다.  2명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500km 도보행진을 시작한지 한달째되는 날이었다. 시작은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거대한 무지개 물결을 만들어냈다.

"차별금지법은 생존과 존엄의 최저선"이라고 외치는 이 사람들을 뉴스트리가 현장에서 만나봤다. 


◇"더이상 차별로 목숨끊는 사람 없어야"

▲인터뷰하고 있는 성소수자 김현석씨 (사진=이준성기자)

정당활동가 김현석씨는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 직장을 구하지 못할까봐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들이 편견과 차별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잖게 일어나고 있다. 고 변희수 하사의 경우도 커밍아웃을 했다는 이유로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했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기홍씨도 올 2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교사면접에서 계속 낙방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서도 트랜스젠더의 57%가 성정체성 문제로 구직을 포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심각한 수준이다. 시위현장에서 만난 A씨는 "전화상담원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다리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며 "그런데 전화상담원은 한자리에서 일하는 직종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철균씨는 "혐오와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라지는 모습을 주변에서 자주 봤다"며 "더이상 내 동료들이, 친구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철균씨 (사진=이준성기자)


성소수자들은 교육에서도 차별받고 있다. 지병수씨는 "타인을 향한 혐오가 나에게 다시 되돌아올 수 있다"면서 "혐오와 차별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차별금지법은 이들이 최소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될 수 있다"며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생 B씨는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라며 "어렵사리 강의실에 있는 층에 올라가도 휠체어를 타고 강의실에 입장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학생 C씨는 "동아리들은 교내에 자유롭게 현수막을 걸 수 있지만 성소수자 모임 현수막만 '건학이념에 어긋난다'며 설치를 못하게 한다"며 "대학에서 이런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스스로 혐오대상이 되고 싶겠어요?"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 비비안 (사진=이준성기자)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이자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인 비비안은 "스스로 혐오대상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면서 "차별금지법이 있으면 사람들이 최소한 차별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인식은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기전까지 나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지 잘 몰랐다"면서 "아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슴이 미어졌다"면서 "만약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아들이 이렇게까지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 (사진=이준성기자)

이날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국회는 차별금지법같은 법안을 제정하라고 존재한다"면서 "그런데 국회에서 공론화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금지법은 부당한 차별로부터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법이기 때문에 시민들께서도 마음을 모아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올 6월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지난 10일 국회 법사위는 "차별금지법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도있게 심사할 필요가 있다"며 심사기간을 2024년 5월 29일까지로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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