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학습력 시대...삶의 지문이 스토리가 된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1-12-22 10: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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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콘텐츠 공유할 수 있지만
스토리텔링과 스토리두잉 간과해선 안돼


지금은 누구나 자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누구든 자기 스토리로 콘텐츠를 만들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모든 개인이 실시간 연결되는 초연결 시대이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소셜서비스(SNS)에 자기 글을 포스팅하고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한다. 모든 사람이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콘텐츠가 소비되는 시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창작의 세계다. 실제 삶의 체험을 담은 이야기든 가상의 픽션(fiction)이든 스토리를 만들어 들려주면 이는 듣는 이에게 파장이 미친다. 독자 혹은 소비자들은 그 스토리에 공명하고 반응하면서 무언가를 체험한다.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스토리만이 콘텐츠가 되는 것이 아니다. 유명작가의 명문 달필의 글만 독자에게 읽히는 것도 아니다. 전문 콘텐츠 제작자와 회사가 만든 전문적인 영상만이 유통되거나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만든 평범한 이야기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가 널리 유통되고 있다. 대중들은 오히려 그러한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에 열광한다. 유튜브 채널을 보면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들과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요리나 운동이나 건강 관련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들이 직접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홍수처럼 범람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토리'는 거의 모든 문화콘텐츠의 근원이 되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이 도도한 기류는 문학이나 출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영화, 방송, 공연,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이벤트와 축제, 아트, 전시, 마케팅, 교육, 신문 기사에서도 이제 스토리텔링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생생한 스토리, 공감을 이끌어내는 스토리, 유용한 스토리, 재미있는 스토리, 울림을 주는 스토리가 콘텐츠의 성패를 좌우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영웅서사가 대부분이었다.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권에서 영웅과 왕과 귀족과 현자들의 서사와 신화가 주류적인 이야기로 들려졌다. 민중들의 서사는 뒤로 밀려나거나 대개 보조적인 것으로 각색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기까지 권력자들과 재벌과 스타들의 이야기들만이 넘쳐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대중 서사가 좀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중서사 시대를 먼저 열어젖힌 이들은 작가들이다. 작가들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 공개하고 대중들은 이를 즐기고 소비했다. 대중들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대중들이 직접 서사를 창작하고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SNS의 발달과 간편해진 출판 유통구조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영상을 만들고 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신의 일상과 노동과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조금만 편집하면 누구든 저자가 될 수 있다. 블로그나 유튜브도 용이한 매체가 되고 있다. 스토리는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 상상력과 아이디어, 기술과 예능 등 모든 것들을 담아 전할 수 있다.

전문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은 봇물처럼 쏟아지는 대중적 콘텐츠들이 통속적이고 예술성이 결핍돼 있다고 우려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보통 사람들의 스토리가 오히려 학자나 전문가들의 콘텐츠보다 훨씬 양질의 콘텐츠인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대중들이 이에 더 친근하게 호응한다. 시장은 이미 바뀌었다. 이미 판세는 전혀 다른 판이 되었다. 대중이 직접 콘텐츠 창작과 스토리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주체는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가 스토리텔링을 시작하게 된다.

◇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두잉으로

문제는 스토리텔링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화자(話者, 생산자)–스토리(콘텐츠)-청자(聽者, 소비자)'의 구조를 지닌다. 다분히 일방적이다. 그리고 미디어나 SNS나 책 등 그 스토리를 전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문화적 유행과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스토리두잉(Story Doing)이 강조된다. 스토리두잉은 스토리텔링의 일방성을 넘어서는 스토리 양식이다. 스토리두잉은 체험과 쌍방향 소통을 중시한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듣고 소비하기만을 바라기보다 직접 스토리를 경험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먼저 발빠르게 이를 응용했다. 기업과 제품과 관련된 스토리를 일방적으로 광고하기보다 소비자들을 직접 참여시키는 참여형 마케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회사나 브랜드의 숨은 스토리를 들려준다거나,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하면 빈민층 아이들에게 한 켤레를 기증하는 글로벌 기업 탐스(Toms)의 나눔식 판매도 대표적인 스토리두잉 마케팅이다.

교육현장에서도 일방적 강의보다 현장 방문(field trip)과 쌍방향 토론식 수업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학습에서의 '스토리두잉'을 강조하며 "사람들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쌍방향 소통을 지향한다. 대중은 직접 참가해서 체험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책을 한 권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보다 그 주제와 관련된 실제 영상을 보면 보다 생생하게 학습하게 된다. 나아가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체험적 활동을 하면 비교할 바 없이 효율적인 학습이 된다. 학교 교육, 각종 문화 예술활동, 지역활동 등에서도 쌍방향 소통과 체험형 학습은 더없이 중요하다. 기후환경에 대한 영상을 보는 것보다 직접 도시와 마을의 오염된 지역이나 탄소배출 상황을 조사하는 활동이 보다 실제적이다. 이런 참여형 학습과 체험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참여자들을 그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스토리리빙'이 스토리의 진정한 뿌리

스토리텔링과 스토리두잉은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할 때 진정한 스토리가 된다. 우리 각자의 삶이 하나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흘러나오지 않은 스토리는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주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공명하지 못하는 텅 빈 이야기, 빈 소리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귀신처럼 스토리의 진정성과 숙련도를 알아챈다. 그러므로 먼저 스토리리빙(Story Living)이 요구된다.

우리는 흔히 '콘텐츠'라는 시장의 언어에 빠져 스토리의 인문학적 뿌리를 망각하곤 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스토리는 저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으며, 각자의 삶은 유일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자기 자신의 삶에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손가락 지문(finger print)이 있듯이 자기만의 삶의 지문(soul print)이 있다. 손가락 지문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지만, 자기 삶이라는 영혼의 지문은 지금도 만들어져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삶에 가장 충실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학습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삶의 콘텐츠로 융합하는 사람은 자기 스토리를 창조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스토리를 쓰고 있다. 내 삶이라는 스토리를.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작가인 셈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언제나 배우고 학습하는 사람은 자기 스토리를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이다. 또한 자신의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타인의 스토리에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이 스토리두잉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콘텐츠, 나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다운 삶, 나만의 삶을 살아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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