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승자독식 '오징어게임' 이제 '상생'으로 바꾸자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1-12 08: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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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는 개인과 기업 살아남을 수 없어
상생의 구호 이전에 상생의 작은 실천부터
▲ '오징어게임'에 오일남으로 출연했던 배우 오영수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오징어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았던 배우 오영수(78)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도 받았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 연기를 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오징어게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징어게임을 지배하는 룰은 '승자독식'이다. 이 게임에서 승자 아니,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한경쟁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양보나 인간적인 감정은 절대 금물이다. 그러다간 자기가 죽게 된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끝나야 한다. 우리 삶의 무대에서 전개되고 있는 냉혹한 드라마를 다르게 전개할 수는 없을까? 방법이 있다. 다른 게임에 참가하고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들면 된다.

◇ 경쟁에서 상호연결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게임은 상호연결의 게임이다. 그것은 관계의 배치를 새롭게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 중심의 관점을 접고 타자와 연결된 나를 발견해야 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타인이 없는 '나'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자연과 사회를 떠난 '나'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영국 과학평론가이자 작가인 케스틀러(Koestler)에 따르면 만물의 질서는 홀론(Holon) 구조로 돼 있다. 홀론이란 모든 것이 전체(whole)의 한 부분(part)으로서 전체의 구성에 관여하는 동시에 각각 하나의 전체적·자율적 통합성을 지닌 단위를 말한다. 즉 자연의 모든 질서는 다른 전체의 일부가 되는 전체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세포의 세계로부터 유기체 및 사회, 천체(天體)와 우주가 이런 방식으로 연결돼 있다. 예를 들면, 하나의 전체로서의 원자는 전체 분자의 일부가 되고, 전체로서의 분자는 전체 세포의 일부가 되고 전체로서의 세포는 전체 유기체의 일부가 되는 방식이다.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타인 및 공동체와 사회와 이런 방식으로 이어져 있다.

탐욕스런 자본의 질서는 오징어게임의 세계를 구축하려 들지만 우리는 본래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가치의 뒤집기가 필요하다. 이윤추구와 경쟁적 시장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코드를 벗어나 연결의 게임을 시작하는 일이 그것이다. 경쟁과 배제의 게임을 하면 모두가 고통스럽지만 연결의 게임을 하면 함께 행복하다. 오징어게임에서는 단 한 사람 혹은 극소수만 살아남지만 연결의 게임에서는 모두가 함께 살게 된다.

◇ 기생에서 상생으로

집단심리를 연구한 정신분석학자 비온(Bion)은 3가지 관계 혹은 조직의 방식에 대해 말했다. 바로 '기생, 공생, 상생'이다. 기생의 관계는 한 편이 다른 이에게 빌붙어 착취하는 관계다. 기생하는 사람은 거미처럼 온갖 형태의 은밀한 거미줄로 다른 사람들을 사로잡아 그 진액을 채취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취한다. 범죄집단이나 수직적 위계의 조직이나 타락한 관료들이 대표적인 기생집단이다. 근현대 서구열강들의 식민지 수탈이나 자본의 이윤추구 역시 그런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생은 식물이나 동물 등 자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인간들도 공생을 추구하며 사회를 형성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공화국(共和國, republic)이라는 국가 형태도 함께 화합(和合)하여 살자는 공생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공생은 대결과 타협을 오가는 거래방식으로 진행되곤 한다. 공생이 파탄나지 않기 위해서는 공론의 장이 건강하게 가동되어야 한다. 시민적 공론의 장이 부정되거나 마비되면 대개 소수가 이익을 전유하는 위장된 착취 구조로 전락하게 된다. 상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것은 적극적인 이타성과 공동체 정신을 그 특징으로 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을 빌리자면 기생은 거미로, 공생은 개미로, 상생은 꿀벌로 비유할 수 있다.

◇ 거래에서 선물로

오늘날 대안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은 예외없이 공동체 가치와 생태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지구촌 곳곳의 여러 생활공동체들과 몇몇 복지국가들에서 시행하는 공유적 경제정책들 역시 이들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한 때 우리 사회에서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플랫폼 사업은 온전한 의미의 공유경제라고 할 수 없다. 몇몇 플랫폼 기업들이 '공유'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독점적 이윤을 추구하고 수많은 소상공인들을 희생시키고 유저(user)들의 이익과 노동을 갈취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기업들이 공유를 외치고 있다. 그것은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유경제란 교환은 이뤄지지만 화폐는 쓰이지 않는 거래를 말한다. 예로부터 공유경제는 가까운 친구나 이웃 사이에 널리 행해지던 일이었다. 고대의 원시공동체 사회만이 아니라 근래까지 우리의 전통적 부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거래를 촉진시키는 힘은 '공동체 의식' '유대감' '나눔의 기쁨' 등과 같은 상호 만족의 감정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마을공동체나 지자체나 비영리단체에서 행하는 나눔의 행사나 선물의 경제는 그런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선물(gift)이란 주는 것(present)이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음으로써 이뤄지는 상생의 관계망이 바로 상생의 공동체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대안연구공동체라는 인문학 공동체에서 강의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대안연을 가까이서 접하면서 대안연의 가치에 점점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대안연은 2개월간 수업을 전면 중단했다. 이때 누군가 제안을 했다. 대안연이 임대비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을텐데 우리가 십시일반 조금씩 후원하면 어떻겠느냐고. 많은 이들이 몇 만원씩 혹은 10만원, 또는 그 이상 후원금을 냈다. 그렇게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돈으로 대안연은 당시 위기를 넘겼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이것이 공동체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내재한 나눔과 상생의 힘"이라고.

이후 대안연에서 강사들에게 강사비를 지급하는 방식을 알게 됐다. 뜻하지 않게 참가자가 적게 모집된 강사에게는 더 많은 비율의 강사비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강사의 생활이 어려운데 참가자가 적은 경우 입금된 수업료 총액에 대안연의 돈을 덧붙여서 드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김종락 대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적어도 생활은 가능해야 하잖아요!"

상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구촌의 경제구조는 당장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 정책이 공유적 가치에 기반해 전환되리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시민적 참여나 정치적 활동을 하는 일이 그래서 소중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먼저 실천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상생의 가치를 행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 작은 친절, 사회적 약자에 대한 환대, 광장에 참여하는 일, 내 곁에 있는 이웃에 대한 작은 나눔 등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다.

상생은 먼 미래의 일만이 아니다. 일상의 미시적 공간에서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발견하면 이미 상생은 시작됐다. 인류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늘상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이상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거대담론을 논할 수는 있지만 나의 작은 이익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상생의 공동체를 외치는 일에 앞서 움켜쥔 나의 손을 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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