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엘리트와 뉴 엘리트' 절묘한 대비
대통령 선거를 60여일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선대위가 사실상 해체됐다. 궁여지책으로 조직을 개편해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무언가 변화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버스의 외형을 바꾸고 다른 색칠을 한다고 해서 주행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 버스의 안정적인 운행을 좌우하는 것은 엔진의 성능과 운전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윤석열 후보는 전형적인 올드 엘리트로서 새로움을 담아낼 그릇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뉴 엘리트>의 저자 표트르 펠릭스 그지바치는 '올드 엘리트'와 '뉴 엘리트'를 흥미롭게 대비한다. 그는 올드 엘리트(old elite)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올드 엘리트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공무원이나 대기업 사원이 되면 인생이 탄탄대로가 된다고 믿는다. 어디서나 가장 유능한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칙과 계획을 착실하게 이행하는 성실함을 중요시 한다. 규칙을 잘 따르고 규율을 중시한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닫힌 소통구조를 지니고 있다. 올드 엘리트는 전통사회에서나 통할 낡은 리더십 스타일을 고수한다.
반면 뉴 엘리트(new elite)는 학력이라는 허울을 넘어선다. 오히려 기술적 전문지식으로 성과를 창조해낸다. 뉴 엘리트는 성공이나 개인적 이익보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최고의 보람을 느낀다. 특히 항상 새로운 것을 익히고 학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몰두한다. 문화적으로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추구한다. 규율과 원칙을 고수하기보다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해 유연한 소통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을 지닌 뉴 엘리트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형성된 초연결사회에 적합한 리더십이라는 것이 표트르 펠릭스 그지바치의 결론이다.
공교롭게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오버랩된다. 윤석열 후보는 명문대 출신이고 이재명 후보는 빈민 출신에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친 사람이다. 둘다 고시출신으로 법조계에 입문했지만 윤석열은 검사가 됐고, 이재명은 변호사가 됐다. 윤석열은 검찰이라는 조직의 비호를 받으며 잔뼈가 굵었고, 이재명은 자영업자나 다름없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역량을 쌓았다.
윤석열은 법과 원칙을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고 위계질서와 규율을 바탕으로 모든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이재명은 소통과 합의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 정치적 감각에 익숙하다. 윤석열은 주로 주어진 틀 안에서 활동해 권력을 키웠고, 이재명은 변화속도가 빠른 상황에 대응하며 정책을 개발하고 실력을 길렀다. 윤석열은 우직하고 성실한 원칙적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재명은 민첩하고 유연한 스타일로 보인다. 이 두 사람을 '올드 엘리트 vs 뉴 엘리트'로 도식화하는 것은 단순화의 위험이 있지만 제법 유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두 사람에게서 학력사회와 학습력사회의 대결을 보게 된다. 아직 우리 사회는 학력사회의 낡은 질서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학력은 여전히 최고의 가치로 추구되고 있으며 출신 대학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구조와 산업의 양상은 급변하고 있다. 머지않아 아무리 학력이 좋다고 해도 학습력없이는 남에게 영향력을 미치기는커녕 스스로 생존하기도 힘든 세상이 올 것이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부와 명예와 권력으로 대표되는 성공이라는 신화, 탁월한 지도자라는 가치는 점점 소멸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든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스스로 학습해 생존하는 역량,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익혀 이를 실력과 성과로 연결시키는 감각이 요구되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
시민들은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는데 우리의 정치는 여전히 아날로그형이다. 시민들은 집단지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총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는데 정치인들이나 캠프는 여전히 사탕과 표심공략으로 대중을 조작하려 든다. 심지어 대통령 후보가 선대위가 써준대로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도 있다. 이런 정치적 집단에게 '올드하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물론 윤석열은 올드 엘리트이고 이재명은 뉴 엘리트의 모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낡음과 새로움의 요소가 동시에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드 엘리트와 뉴 엘리트의 대결은 비단 정치나 선거판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는 아직도 각양각색의 올드 엘리트들이 곰팡이 냄새 풍기는 낡은 방식의 리더십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 경제, 기업, 단체, 문화예술 및 종교영역, 비영리 조직 등 모든 영역이 그렇다.
2030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는 이런 낡은 문화적 정치적 영토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공정과 정의 그리고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분노는 올드 엘리트들이 도로를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자신들에게는 차를 몰 기회조차 주지 않다는 데 기인한다. 그뿐만 아니다. 기성세대와 자칭 엘리트라고 하는 사회의 지도자들이 기득권에 만취해 난폭운전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올드 엘리트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들이 그 운전대를 빼앗아 버릴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스스로 배우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지 않는 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낡은 사람으로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학력사회에 속한 인간이란 다름 아니라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바로 '뉴 엘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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