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줄어든 '꿀' 굶주리는 '꿀벌'···벼랑끝 양봉농가 "이대로 가면..."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5-12 13: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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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100억마리 집단폐사...원인은 '기후변화'
과채농가 2차피해 확산 "꿀벌없이 수분 못해"


"양봉산업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대로 가면 꿀벌은 다 죽을 것이다."

12일 강원도 양구군에서 수십년째 양봉장을 운영하는 이영기(69)씨는 기자에게 텅빈 벌통을 걷어보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 1월 전라남도 해남 양봉농가에서 피해신고가 접수된 이래 전국적으로 꿀벌 집단실종 신고가 잇따랐다. 이 씨의 양봉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키우던 벌통 120개(군) 가운데 겨우 20개만 남아있다. 이 20개 벌통마저도 날지 못하고 죽어 널부러진 꿀벌이 대부분이었다.

농촌진흥청, 농림축산검역본부, 지방자치단체, 한국양봉협회가 전국 9개 도, 34개 시·군, 99호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민·관 합동조사에 의하면, 2021년 10월~2022년 3월 사이 전국적으로 41만6409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통상 벌통마다 약 2만5000마리의 꿀벌이 산다고 볼 때 총 100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셈이다.

1969년부터 50년 넘게 양봉업에 종사한 이 씨는 다년간의 양봉 경험과 독자적인 연구를 토대로 이번 꿀벌 집단폐사의 원인을 '기후위기'로 꼽았다. 병·해충, 살충제 등 많은 원인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 기후위기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2004년 충청도로 이동양봉을 갔을 때 아까시나무 꽃이 활짝 폈는데도 꿀벌이 굶어죽었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꽃에 맺힌 꿀이 팍 줄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아까시나무는 양봉농가의 60%가 의존하는 대표 밀원식물이다. 이 나무는 뿌리에 '질소 고정 박테리아'가 있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다. 질소를 흡수하는 이 박테리아는 아까시나무로부터 단백질을 공급받고, 아까시나무에게 질소를 제공하기 때문에 천연비료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강인한 아까시나무조차 지구온난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대지 온도에 비해 대기 온도가 빠르게 오르면서 생리장애가 왔고, 결국 생식보다 생존을 택하면서 꿀 분비를 멈춘 것이다.

이 씨는 "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제조된 설탕으로 만든 꿀벌사료가 개발됐지만, 자연산 꿀만큼의 면역력을 제공하지 못한다"며 "결국 수십년동안 영양부족과 스트레스를 겪었던 꿀벌들이 이번 이상기온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군집붕괴로 이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양봉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원도 양구군의 한 양봉장. 최근 1년 사이에 벌통 120개 가운데 20개만 남았다. 이마저도 날지 못하고 죽어 널부러진 꿀벌이 대부분이다. ©Newstree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 최용수 박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7~8월 남부지방은 이례적으로 기온이 높고 습도가 낮아 장마가 빨리 끝났다. 이 바람에 기생충인 꿀벌응애가 기승을 부렸다. 양봉농가에서는 꿀벌응애를 박멸하기 위해 평년보다 많은 살충제를 살포했다. 이 때문에 꿀벌들의 스트레스는 높아지고 체력은 약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아열대화되는 기후 탓에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이 세력을 넓히면서 꿀벌 피해를 가중시켰다.

또 2020년과 2021년 밀원식물의 개화기에 저온·강풍·강우를 동반한 이상기후가 발생하며 벌꿀 생산량이 감소했다. 꿀벌들의 영양상태가 부실한 상황에서 짧고 극단적인 기상이변으로 따뜻하지만 꽃이 없는 겨울, 꽃이 피지만 추운 봄이 이어졌다. 겨울이 따뜻해 계절을 착각한 벌들이 다 자라지도 못한 채 꿀을 따러 나와서 꽃을 찾지도 못하고, 막상 꽃이 핀 봄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귀소하지 못하고 객사한 것이다.

기후변화로 빈도와 강도가 높아진 산불도 문제였다. 특히 지난 3월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은 아까시나무가 많은 대표적 밀원지 합천·고령·울진 등에 피해를 입혔다. 올들어 지난 4월까지 발생한 산불은 39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96건에 비춰볼 때 2배에 달했다. 기온상승으로 북반구 봄비가 갈수록 뜸해져 2021년 겨울강수량은 예년의 14.7%에 그친 까닭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꿀벌이 사라지면서 과채류 꽃가루받이에 꿀벌을 이용하는 채소·과일 농가에 2차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양구군 농업인단체협의회 김영복 회장은 "수박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정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라며 "우리 작목반 3개 농가에서 수정되지 않아 버린 수박이 5000주 정도였는데, 금액으로 따지면 손실규모가 6000~70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이어 그는 "한낮의 하우스 온도는 40도까지 오르기 때문에 사람이 인공수정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뿐"이라며 "2만주에 이르는 수박을 제때 수정하려면 꿀벌을 대체할만한 인력은 없다"고 덧붙였다.

▲7000평 규모의 하우스에서 수박을 재배하는 양구군 농업인단체협의회 김영복 회장은 "2만주에 이르는 수박을 제때 수정하려면 꿀벌만한 인력이 없다"고 말했다. ©Newstree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수농가들은 꽃가루 수정시기에 꿀벌을 이용하기 위해 벌통을 빌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꿀벌들의 집단폐사가 도처에서 발생하면서 벌통을 빌리는 가격도 치솟고 있어 농가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 이경용 박사는 "과채류 생산농가 10곳 중 7곳은 꿀벌을 활용해 꽃가루 매개를 한다"면서 "벌통은 줄었는데 수요가 늘어나니 벌통 빌리는 값이 평균 15~20% 올랐다"고 말했다. 일부지역에서는 수박 하우스 하나당 5~6만원하던 벌통이 7~8만원으로 올랐고, 참외는 12~13만원에서 17~18만원으로 인상됐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인간이 손으로 수분하는 것보다 꿀벌을 통한 수분이 착과율이 높고, 기형과가 생겨날 확률이 낮아 생산성과 품질면에서 훨씬 뛰어나다"면서 "꿀벌 부족현상은 장차 농가소득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 작용을 돕기 때문에 꿀벌이 사라질 경우 작게는 우리 식탁, 크게는 생태계 전반에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양봉업자 이 씨는 "꽃이 생산하는 꿀도 줄고 꿀벌도 감소하는 현상을 보고 50년 이어오던 양봉업을 접었다"면서 "이제 꿀벌 없이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홀씨식물인 파프리카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꿀벌 실종으로 인한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이동양봉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꿀벌이 꿀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밀원식물이 부족해 더 먼거리를 이동하면서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이동양봉으로 병·해충이 다른 지역으로까지 퍼지면서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근본 원인인 지구온난화가 해결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꿀벌의 멸종을 늦춰서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밀원식물을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문기사] Korean Beekeeping on Brink of Collapse as 10 Billion Honeybees Disappear
*해당 기사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글로벌 언론인 협력체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Covering Climate Now·CCNow)의 미디어 파트너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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