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이동범위 줄면서 꽃가루 매개 급감
기후위기로 꿀벌 개체들의 몸집이 왜소해지고 있고, 이는 꽃들의 수분을 저해해 생태계 전반에 치명적인 연쇄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가브리엘라 파르디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이 지난 8년간 북아메리카 로키산맥의 아고산대 지역에서 158종류의 꿀벌 2만여마리를 조사한 결과, 기후변화에 따라 '몸집'과 '먹이' 등 꿀벌 집단의 행동양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팀에 따르면 기온이 상승하고,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몸집이 크고 다양한 종류의 먹이를 섭취하는 꿀벌보다 작고 적은 종류의 먹이를 섭취하는 꿀벌의 개체수가 더 늘어났다. 또 나무 구멍에 둥지를 짓는 꿀벌보다 직사광선을 피해 땅속에 집을 짓는 땅벌류가 생존률이 더 높았다.
특히 몸집이 상대적으로 큰 호박벌의 경우 피해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났다. 호박벌은 생태계에서 가장 주요한 꽃가루 매개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온 상승에 대한 내성이 약한 호박벌들은 기온이 낮은 더 높은 고도로 서식지를 옮겨갔다.
문제는 단순히 꿀벌 집단에서 그치지 않는다. 몸집이 크고 많은 종류의 먹이를 찾는 꿀벌일수록, 더 먼 거리와 더 많은 종류의 꽃을 오가며 활발한 꽃가루 매개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같은 꿀벌의 개체수가 줄어들면 식물들도 번성하지 못하게 되고, 식물을 먹이로 삼는 동물들도 먹이활동에 문제가 생기면서 생태계 전반에 연쇄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과도 무관하지 않다. 식물들의 수분은 충매화(蟲媒花)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 유엔(UN)에 따르면 코코아, 커피, 아몬드, 체리 등을 포함해 전세계 수확량이 가장 높은 식물종 115개 가운데 75%가 동물 매개 수분에 의존한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곧 식량안보와 경제위기로 직결되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진행됐던 아고산대 지역은 봄철 기온 상승폭이 높고, 눈이 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기후변화에 특별히 취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인한 꿀벌들의 행동양상의 변화를 앞당겨 볼 수 있었지만, 조만간 이같은 현상이 전세계로 확대될 전망이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미 전세계 곤충종의 절반가량이 개체수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이번 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전체 곤충의 3분의 1이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연구진은 꿀벌 개체수 감소 원인을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 및 살충제 사용으로 꼽으며, 꿀벌들의 서식지를 복구시켜주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논문의 주요 저자 파르디 연구원은 "해당 지역의 자생식물 가운데 기온상승과 가뭄에 강한 종들을 심어 식량과 둥지로 쓸 자원을 마련해주고, 꿀벌들이 원한다면 더 적합한 환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서식지를 연결해 줄 필요가 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꿀벌의 생물다양성이 지켜지고, 지구 기온이 상승하더라도 계속해서 화분 매개자로서 꿀벌의 역할이 극대화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논문은 2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에 게재됐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