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심해진 일교차가 원인으로 지목
전국 곳곳에서 꿀벌들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해남지역 양봉농가의 피해신고가 접수된 이후,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곳곳에서 꿀벌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끊이질 않고 이어지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꿀벌 집단 실종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성주, 영천, 의성, 포항, 영덕, 울진 등 광범위하다. 경상북도 양봉농가는 전국의 20%를 차지할만큼 많기 때문에 상황이 심각하다.
이에 경상북도가 지난 9일~12일까지 시·군을 통해 도내 피해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양봉농가의 15% 정도가 꿀벌 실종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농업과학연구원과 농림축산검역본부 등이 원인을 찾기 위한 지난 22일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통상 1개의 벌통에서 10~20%의 벌이 사라진다. 하지만 이번 피해는 1개 벌통에서 50% 이상의 벌이 사라진 것이 확인됐다. 1개의 벌통에는 보통 2만여 마리의 꿀벌이 있다.
경북의 피해 양봉농가는 930호에 달했다. 벌통 기준으로는 전체 58만개(군)의 12.9%인 7만4582개에서 꿀벌 50% 이상이 사라졌다. 벌통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은 성주였다. 성주는 1만613개의 벌통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영천은 8000여개, 의성과 영덕은 6000여개 정도로 파악됐다.
경남 창녕과 거창, 함양, 합천 등지에서도 비슷한 신고가 접수됐다. 창녕에서는 양봉농가 150여곳 가운데 40여곳에서 꿀벌이 집단 실종됐다. 피해농가들은 벌집 1만2400여개 가운데 75% 상당인 9300여개에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꿀벌이 집단실종됐던 해남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역학조사에서 감염병이 아닌 이상기후로 인한 집단폐사로 밝혀졌다.
꿀벌은 기온이 떨어지면 활동량을 줄이고 월동에 들어간다. 벌통에서 서로 뭉치면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꿀벌의 월동 시기는 기온이 떨어지는 11월~3월 사이다.
그런데 역학조사 결과, 지난해 11월~12월 해남지역 낮 최고기온은 평년보다 훨씬 높은 13.5도에 달했다. 기온이 높아지니 꿀벌들은 월동에 들어가지 않고 가장 따뜻한 오후 2~3시에 꿀채집에 나섰다. 여기에 일교차까지 심해지면서 오후 4시 이후 기온이 뚝 떨어졌고, 이때까지 미처 벌통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꿀벌들은 추워서 죽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꿀벌 개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급기야 꿀벌로 가득차 있어야 할 벌통은 텅 비어버린 것이다. 당시 조사를 맡았던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해남지역에서 꿀벌이 한꺼번에 사라진 원인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밝혔다.
해남을 포함해 각 지역마다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놓고 꿀벌응애(기생충), 약제의 잘못된 사용 등을 염두에 두고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큰 일교차를 꼽고 있다.
벌집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서 일벌들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벌집에 있던 애벌레와 여왕벌이 폐사하는 '군집붕괴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미국의 양봉장에서도 벌의 25∼40%가 자취를 감추는 '군집붕괴' 현상이 벌어졌다.
전국 곳곳에서 꿀벌들이 사라지면서 꿀벌에 의존해 열매를 맺는 농작물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가 꿀벌의 수분에 의해 생산된다. 따라서 꿀벌이 사라지면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 견과류 등의 생산이 크게 감소해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한다. 세계 생물다양성 정보시설(GBIF)은 꿀벌 개체수 감소가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035년쯤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최용수 박사는 "꿀벌은 사회적 곤충이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며 "일벌 개체수가 10%만 감소해도 군집붕괴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 박사는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위기뿐만 아니라 식물들이 번식을 못하면서 탄소흡수량도 줄어들어 기후위기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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